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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전환배치는 노조가 앞장서라
 
예외석   기사입력  2005/03/15 [19:53]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일부 라인이 내수 부진과 함께 작업 전환배치 문제로 노사간에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노조측은 회사측이 지난해에 지속적인 물량 확보를 약속해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아 라인가동이 중단되어 임시 휴무에 들어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에 수출 물량이 늘어난 라인 쪽에서는 주간.야간조 모두 휴무 없이 잔업에다 특근을 계속하는 등 같은 공장 내에서도 작업물량의 배분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일거리가 없어서 일감을 달라고 난리를 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력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수출이 늘고 있는 라인에서는 주.야간 계속해서 가동해도 물량이 달리고 수주가 급격히 감소한 라인에서는 주간 8시간만 가동해도 생산 재고가 누적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효율적인 인원관리를 못한 생산관리자의 책임일까, 아니면 수주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영업팀의 책임일까. 그것도 아니면 작업 전환배치에 동의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작업장에서만 물량 내 놓으라며 “우리도 잔업, 특근 좀 해보자”고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의 책임일까.

왜, 노동자들은 걸핏하면 작업물량이 감소된 이유를 오로지 경영자들에게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일까. 물론 경영을 부실하게 잘못한 책임도 있을 수가 있다. 하지만, 수주물량이란 것이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경영자들과 영업팀 구성원들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뛴다고 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의 이윤창출을 위해서 노동자들도 함께 호흡을 맞추어 주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노동문화도 좀 더 합리적으로 탈바꿈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몇 해전에 필자가 근무하던 공장에서 장기간 파업을 할 때 공장이 어려워진 책임을 모두 경영자들에게만 추궁했던 기억이 떠 오른다.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함께 동고동락 했던 동료 노동자들이 모두 뿔뿔이 계열공장으로 흩어지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다. 밥 처먹고 할 일 없이 봉급만 타먹는 악질 공장장은 퇴진하라”고 연일 성토하며 농성을 했었다. 그 때 회사에서 우리 모두가 살 길은 이것 밖에 없다고 관리자들이 애타게 호소하였던 것이 바로 작업 전환 배치였다.

그 때에도 역시 상황은 어느 공장이나 다를 바 없이 한 쪽 작업장에서는 일감이 없어서 놀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일손이 달려 동료들이 파김치가 되도록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오로지 자신들의 작업장과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있는 장비들만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었고, 이 작업장을 벗어나면 또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다.

결국엔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누구는 탱탱 놀면서 월급 받아가고 누구는 죽도록 일하면서 겨우 생활임금 건져간다”는 푸념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일감이 없어서 놀고 있던 동료들은 “ 누구는 일이 없어서 잔업도 특근도 못하고 겨우 기본임금만 받아 가는데 누구는 철야에다 특근까지 하면서 월급 빡세게 받아간다”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교통정리를 해 주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노조와 회사와는 이미 장기간의 파업으로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강성 노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지도부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전환배치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노조에서 전환배치에 대한 말을 먼저 꺼낼 때 조합원들로부터 어용이라는 불신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주고 무엇이 어용이란 말인가.

결국 공장은 폐쇄되고 수주물량은 다른 계열공장으로 낙찰되고 말았다. 동료 노동자들은 정든 일터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계열 공장으로 흡수되고 끝까지 자신이 하던 노동만을 고집하던 동료들은 입에 맞는 보직이 없어 회사를 떠나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용접을 하던 사람은 끝까지 용접홀더를 쥐어야만 하고, 밀링을 돌리던 노동자는 끝까지 윤활유와 절삭유 냄새를 맡아야만 행복한 것일까. “나는 다른 것은 모르고 오로지 페인트 도장만 하던 사람이라서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소. 도장 작업장에 보내주소…”

투쟁과 투정을 구분하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회사도 모두가 살아 남지 못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일손이 남아도는 작업장에서 바쁜 작업장으로 이동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생존 논리인 것이다. 먹이가 떨어지면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만 한다. 돼지고기 밖에 먹지 못한다고 바로 옆에 있는 소고기를 외면하고 배고픔을 견디면서 돼지고기 타령만 늘어 놓으면서 세월 보낼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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