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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진보, 폐품좌파, 금간 불판을 넘어
[신년 제안] 행복을 두려워말자, ‘언저리국민’과 공짜점심의 수수께끼(3)
 
김영국   기사입력  2005/02/04 [19:11]
2005년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사회 ‘양극화’와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언저리 국민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란 타이틀로 (1)참혹한 ‘양극화 분단’의 현실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 (2)참여정부의 경제관과 ‘만원의 행복’, (3)노동.진보진영의 대응,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3회에 걸쳐 기고합니다. 독자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랍니다-필자 주

- ‘완행열차에서 고속전철로 갈아탄’ 위기의 노동.진보진영, 진지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상(象) 세워야 –

“시간 없는데 싸우기도 전에 그로기 상태라니…”

“헐벗고 소외된 서민대중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해주자”

대한민국 노동운동계, 진보적 시민사회, 그리고 진보정당이 이룩해야 할 최대 목표이자 희망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생태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진보의 가치란 궁극적으로 서민대중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란 뜻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의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서민대중이 겪고 있는 삶의 황폐화에 직접적 이해당사자나 다름없는 노동, 진보진영의 대응은 권력과 자본의 쌍포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안팎으로 시련과 난관에 봉착해 있다.

노동.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자못 심각해 보이는 조짐들이 묵은 메주에 곰팡이 피듯 번져 나왔다. 노동.진보진영의 위기는 더 이상 외부탓(?)으로 항변하기 불가능한 지점까지 도달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아차 사태의 경우 민주노총이 수년 전부터 그토록 목청을 높여 왔던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철폐와는 정반대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등친’ 매우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경우 지도부가 바랐던 노사정위 복귀를 포함한 ‘사회적 교섭’ 재개 안건이 두 번에 걸쳐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무산된 데다 급기야 시너와 소화기까지 동원한 난장판으로 얼룩지면서 민주노총에 회복하기 힘든 깊은 ‘내상(內傷)’을 입히고 말았다.

더욱이 사회적 교섭 참여를 정부와 사측에 대한 투항이며, 정부측 비정규직법안 반대를 위한 2 월 총파업투쟁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반대파의 반발도 기실 민주노총에 대한 비정규직 노조 등의 불신이 강하게 깔려있다는 점에서 작금의 민주노총의 심각한 내부분열은 전체 조직력 약화는 물론 대기업 정규직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에 더 이상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왔으며, 향후 노동운동의 재편을 예고하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고 있다.

이처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는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무력 시위를 벌인게 아니라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중심이 된 쪽에서 정부와 여당이 2월에 강행 통과시키려는 비정규직 법안이 자신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의 저지를 위해서는 대책없이 정부의 로드맵에 말려들게 아니라 강력한 투쟁전선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벌인 시위란 점이 핵심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당장 총파업에 대한 동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틀을 통해 노동계의 요구와 의제를 이슈화하면서 사회적 명분 획득과 준비기간을 갖고, 대화 거부시 예상되는 정부나 재계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일방적 강행기조를 일단 차단할 필요성에서 사회적 교섭 참여에 대한 결론을 내려 했던 것이며, 이런 양측간의 정세판단의 차이는 상호 절박한 사정만큼 협상의 여지도 협소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함과 그간 참여정부의 반노동적 정책에 대한 이들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촉발된 시위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노동계의 참여여부와 상관없이 뭐든 예정대로 밀어부치겠다는, 마치 군사정권시절 관료의 안경을 쓰고 있는 듯한 노동부 장관의 엄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댔다.

그럼에도 이런 본질적 사안들은 깡그리 무시된 채 수구언론은 물론 진보적이라는 신문까지 종이언론과 방송의 보도행태는 천편일률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소수 강경파의 난동'라는 타켓을 미리 설정해 놓고 일시에 노조 전체를 폭격해대는 놀라운 동맹이 형성된 것을 보면서 종이언론과 방송의 표피적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기아차 인사비리를 계기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하고, 이를 빌미로 정부와 자본의 공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앞에 파국적 내분 양상을 노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최악의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 또한 지난 국보법폐지를 위한 당의 대응전략을 놓고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까지 등장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당내 논쟁이 최근 당 기관지 편집장 교체, 여성당직자 폭행사건 징계완화, 부유세에 대한 당의 의지부족을 비판한 윤종훈 정책연구원의 사퇴 등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중첩되면서 전통적 최대 정파인 ‘민족자주파(혹은 주사파)’와 ‘민주생존파(혹은 평등파)’로 나뉘어 당원간 갈등 차원을 넘어 사실상 ‘내전중’인 것으로 보인다.

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잇따른 불미스런 사태는 민주노동당에게 엎친데 덮친 격이다.

노동운동,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에서 ‘급행열차’로 갈아탔나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노 대통령의 비판적 발언, 이에 ‘올커니’하며 고무된 수구언론과 정부 그리고 재계는 한 목소리로 노동운동진영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그 근거는 노동쟁의의 확산이었고, 요지는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의 확산도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몰았다.

이들은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을 노조의 힘을 빼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마치 물만난 고기마냥 날뛰고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의 ‘생산.유통.확산’을 부추기며 자신들이 맞을 화살을 노동자들 끼리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수구언론들은 한술 더 떠 우리사회의 재계에 대한 반기업 정서를 질타하며 애국자인 재계에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들을 훈계해왔다. 물론 대통령도 거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회만되면 노조를 매도하면서 반노조 정서를 부추겨왔다.

정작 서민대중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위대 옆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하는 말에서, 뉴스 사이트와 정치웹진에 실린 노동자의 파업 소식에 달리는 답글에서 ‘또 데모냐?’, ‘노동귀족’, ‘폭력노총’이란 비아냥은 익숙하게 접하는 용어들이다. 이처럼 서민대중이 노동자,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비판은 노동운동 주변에서도 제기되었다.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전투적 조합주의를 고집하는 대기업 정규직중심의 노동운동을 향해 ‘왕자병’에 걸렸다며 힐난했고,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있다’고 쥐어박았다.

어쩌면 작금의 노동운동은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도 모자라 ‘고속전철’로 갈아타버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팽배해 있다.

이런 모든 비판과 우려가 매우 정당함에도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조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한국 노동시장 구조에서 대기업 노조의 위축은 곧바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한쪽 당사자의 궤멸로 이어진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또한 정부나 수구세력이 비난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기실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의 측면이 강하다. 참여정부라면 노조와 파트너십으로 해결하는 게 맞는데, 거꾸로 배제적으로 몰아붙이니 갈등이 되레 증폭되는 측면도 있었다.

노동계가 정규직 중심의 집단이기주의적 투쟁만 일관한 것도 온전한 사실은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산업별 통일투쟁에 의한 산별교섭의 기본틀을 마련하고 산별협약을 성사키키거나, 금호타이어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여 불법파견 노동자 27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전형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또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연대회의를 출범시킴으로써 투쟁의 전선을 넓히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하반기엔 비정규직관련법 개악 반대, 공무원노조의 노동기본권 완전보장, 국가보안법 철폐, FTA반대,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 진출 반대 등 제도개선투쟁으로 이어졌다.

노동조합이 연대의 원칙을 요구에서 제시하고, 고용안정, 사회공헌기금 등 사회공공성 확대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사회개혁 요구는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한국적 노동운동의 예견된 참사(?)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가지 커다란 환경변화에 직면하였다.

첫째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와 개방화, 세계화의 흐름속에 중소기업 노조들은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반면, 그나마 규모가 크고 조직과 동원능력이 있는 대기업 노조들만이 생존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더욱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고착화 되면서 노동운동 자체도 양극화 됐다는 점이다.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을 비롯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노동시장이 대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실업자,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까지 가세 분화, 다극화되면서 내적인 이질성이 점증되었고 노동운동은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둘째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진 민주정부의 연속 집권으로 ‘적어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는 다른’ 노동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반면, 곧바로 공권력을 동원한 노동운동 강압정책으로의 변신으로 인해 민주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무너지면서 정부와 노동계의 대립과 갈등이 재연되는 등 노동조합이 일관된 대정부 정책적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노동계의 정치적 선택이 한결 용이해지면서 정당과 노조와의 관계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정치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셋째는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급성장으로 시민운동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운동, 노동운동은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운동이 노조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면서 개혁담론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이 하나의 사회변혁 내지 사회개혁 세력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는 새로운 운동노선과 시민운동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받게 되었다.

넷째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통일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노선 대립과 갈등이 여전히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통일문제’를 우선시하며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 노선과 ‘계급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의 노선 대립은 대선이나 총선 공간에서까지 ‘수구세력의 집권 저지’와 여야 모두 보수정당이라는 관점에서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중 어느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느냐로 이어지면서 공유와 연대 형성이 시급한 노동계 내부에 깊은 갈등의 골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통일을 둘러싼 갈등은 보수.수구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더구나 분단의 극복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내부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은 채 곳곳에서 민족자주파(혹은 주사파)와 민주생존파(혹은 평등파)의 갈등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도 노동운동의 환경이 더 나아지리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내수는 물론 수출경기마저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기업들이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아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거세게 밀어부칠 위험성도 높다. 고용불안과 함께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울 뿐이다.

여기다 비정규직관련법, 노사관계 로드맵, 복수노조문제나 전임자임금지급문제, 한일자유무역협정을 비롯 각종 FTA 협상 등 제도와 정책과 관련된 미결의 과제들이 큰 충격과 파장이 예고된 채 시한폭탄처럼 가로놓여 있다. 모처럼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다수당의 담합과 횡포를 뛰어넘어 노동자 요구를 관철시킬 여지도 가까운 시일 안에 커질 것 같지는 않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전망은 노동운동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은 자명하다. 그에 대한 대응 또한 노동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태도 역시 노동운동의 자체 역량과 노사간의 힘의 관계로 저울질될 수밖에 없다면 온전히 노동의 할 나름이다.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 출발을 위하여

지금 가장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현재의 파견법만으로도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비정규노동의 열악한 임금조건과 대기업과의 극심한 격차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중요한 빌미가 되어 교섭력의 급격한 저하를 불러오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자녀 둘 중 하나는, 어쩌면 둘 모두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심각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800만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현재 2% 수준밖에 안되며, 한 사업장에서의 단기고용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노사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으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원칙을 확보하기는 지금으로선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인식을 노동계 전체가 공유하고, 정책에 초점을 두면서 비정규노동 정책이 현장의 내부 조합원들의 이해와 결합될 수 있는 노동자계급 연대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명운을 걸고 투쟁을 전개해야 할 일이다.

이는 유인물 몇 장, 공문을 통한 항의와 시정요구, 그리고 성명서로 해결될 일이 아니며, 사회적 노동 보호기준을 만들기 위한 법률 도입과 단체협약을 위해 민주노동당, 진보적 시민단체의 의제화 노력과 노동조합의 교섭구조를 초기업적(사회적) 단위로 개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을 이룬다. 그것만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조직원이 되는 길이고, 노동조합 자신의 진정한 문제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기업 정규직은 자본에 의해 압박받는 측면과, 비정규직보다 우대받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정부와 재계는 후자만, 노동계는 전자만 강조한다. 두 당사자의 양보 필요성은 자명하다. 예컨대 노조가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대주주와 경영진은 배당금 일정액 기부와 연봉 삭감 등을 통해 그 돈으로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위한 훈련기금이나 복지기금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정부는 공공 의료와 교육, 공공임대주택 등을 늘려 교육비, 주거비 등 비정규직의 간접임금을 증대시키면 격차는 크게 해소될 것이다.

로빈슨(Robinson, J.)의 지적처럼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은 '고용창출' 혹은 '일자리창출'도 단순히 사회보장적 성격 및 경기안정화 역할로서 취약 계층의 공적 부문으로 흡수뿐만 아니라 혁신형 중소기업, 고급지식부문 등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조정’까지 포함하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운동이 지금의 위기와 침체를 벗어나 안팎으로부터 지지와 신뢰 그리고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하고, 수세적 입장에서 적극적 공세의 위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노조원의 이기적 관점을 탈피하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통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담아내는 대중적 관점을 확고히 정립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비롯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방안 등이 그 예이거니와, 자신의 적극적인 대안과 양보를 포함한 연대임금정책과 사회개혁 요구는 임단투의 중요한 전략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경로로 노동 의제들을 쟁점화하고 해결을 촉진할 수 있는 장과 기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사회적 교섭’은 노동운동의 주요영역인 정책참가의 한 방편이며 노동의 피폐화를 막기 위한 제도.정책 개선투쟁이란 전술적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면 무작정 포섭을 우려한 기피의 대상으로만 치부해서도 곤란하지 않을까.

더욱이 사회공동화 문제, 빈곤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같은 노사나 노정만으로 해소하기 힘든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는 노사정 대화를 포함 중층적으로 여러 분야와 대화를 활성화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도 유효한 방편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사회적 교섭 반대파들의 우려와 불신을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런 노력과 대책없이 사회적 요구에만 매몰되다가는 98년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법, 파견법 도입과 같이 노동계가 경제 살리기 동참이란 명분하에 결단한 희생적 양보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 폐혜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이라는 반대파의 주장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와 재계의 노동정책 기조가 한통속이 되어 유연화, 그것도 수량적 유연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설사 사회적 협약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진보진영은 기능적 유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아젠다가 분명히 설정되도록 사회적 연대의 틀을 통해 정부와 자본을 압박하면서 참여해야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현 노동의 위기 극복를 위해서는 중심세력인 ‘노동조합 자체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그동안 제기만 되고 당면 투쟁에 매몰돼 지체되고 있는 전면적인 조직진단과 조직운영의 개혁, 산별노조의 건설, 이념 및 기조의 정립 등 많은 혁신과제들을 충실히 전개해야만 각급 조직에 나타나고 있는 동맥경화증, 피로증후군에 의한 현장조직력의 현저한 저하와 패퇴를 극복하고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의 노동운동이 과거 어느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실과 환경 속에서 기업의 울타리에 매몰되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울타리 밖의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개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21세기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범을 보여주고 세계 노동운동의 방향 설정에도 공헌할 수 있을 지는 온전히 노동운동진영의 몫으로 남겨진 과제이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입성과 한계 그리고 자리매김

2004년 총선에서 10석의 원내진입을 통해 제 3당으로 각광받던 민주노동당은 7개월이 지난 지금 영광의 빛은 희매해지고, 한계와 과제가 뚜렷하게 노정되고 있다.

10석의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자신들의 의제를 가지고 80명의 반대표를 조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상한선이자 과반수가 안되기 때문에 관철이 안된다는 점에서 절대적 한계이기도 했다.

소수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정치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는 결국 국정감사 과정 등을 통해 정책을 가지고 다른 당보다 국민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아내는 것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는 협상 테이블과 원내에서의 각종 불이익 및 배제적 소외를 딛고 어떻게 운신의 폭을 넓히고 국회내 연단을 확보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인가가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게 방법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국회 밖에서 노동자, 서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큰 목소리로 쟁점화한 사항을 원내에서 그들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입지를 넓히는 ‘거대한 소수’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민주노동당이 보다 더 깊이 민중속으로 들어가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과 더 넓게 여성, 환경, 인권과 같은 시민사회적 가치를 진보적 가치로 통합해 내고, 시민사회단체와 네트워크 강화 및 원내외 조직 결합력을 높이면서 보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서민 정책들을 생산해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를 분명히 해준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노 정권의 ‘한나라당 중시, 민주노동당 무력화’라는 기회주의적 노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과 공조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어설픈 정세파악으로 민주노동당의 얼굴을 열-한 공조속에 파묻어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경종이기도 하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제 정당과 관계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과제란 열린우리당의 기만적인 태도와 반민생정책의 실체를 대대적으로 폭로해 내면서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기득권 중심의 보수정당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민생법안과 대책들을 제대로 알려내는 것으로 제약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부유세 도입을 통한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의 확대, 복지 확대 문제를 더욱 구체화 하는데 주력해야 할것이다.

또한 기업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병원, 학교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에서의 사회적 소유를 확대하기 위해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고,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안적 사회 체제의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노동당 정책의 도덕적 타당성을 넘어서 부유세와 같은 분배 강화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가 아닌 플러스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심층적 연구와 정책의 과학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어떤 입장을 내면 열린우리당과 가깝냐, 한나라당과 가깝냐를 먼저 따지고, 둘다 안 가까우면 양비론으로 몰아가는 보수 양당 중심의 현 정치구도를 실제 국민중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냐는 정책과 노선의 관점으로 돌려 놓고,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자리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열린우리당+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의 대립으로 규정되도록 힘을 쏟아야 할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일 때 ‘여론에 민감한 기회주의 정당’ 열린우리당의 우경화에 제동을 걸고, 보다 개혁적 노선으로 견인하는 개혁.진보의 선순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 당내에 고조되고 있는 NL, PD로 대표되는 뿌리깊은 논쟁과 인맥적 대립과 갈등을 여하이 발전적으로 재정립하느냐도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이다.

비록 이 논쟁이 다른 당처럼 잡탕에 가까운 스펙트럼에서 동시다발로 발산하는 권력쟁투적인 성격보다 어떤 노선과 방향이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과 서민대중의 요구에 부합하고, 본질적인 것이냐 하는 차원에서 진일보한 정책적 외양을 갖추고는 있으나 상호간에 노선과 연결된 특정인맥 배제적인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결국 차이가 적당히 봉합되기 보다는 문제의식의 차이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당원들의 치열하되 질서있는 토론과정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민주노동당의 실천적 노선으로 형성된 정파들로 재편되도록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고, 시대적 요구에 맞게 주도권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신사적으로 교환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통합보다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연장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된다면 차라리 신사적인 분화를 통해 각자 행복해지는 진로를 가면서 최종적으로 서민대중의 판단에 맡기는 게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서민대중과 당원들조차 꺼려하는 ‘민주노(No)동당’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부자는 꺼려하되 서민에게는 환영받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실상은 이와 다르다.

여론조사때마다 민주노동당에게는 뼈아픈 지지계층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한결같이 20~30대와 고학력, 고소득층에게는 그런대로 지지가 높은데 반해, 나이가 많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낮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지지이유도 당의 정치노선이나 이념보다는 ‘다른 기성정당들이 싫어서’가 많고, 상황이 바뀌면 철회할 수도 있다는 사람들이 다수여서 지지층의 강도도 약하다. 이는 민주노동당에 샴페인과 축배는 곧바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주변에서는 ‘당장 힘 있는 세력이 아니이서’, ‘저소득층의 사회 안정 희구 성향 때문’ , ‘지역정서에 좌우되는 정치풍토’, ‘고학력 화이트칼라층과 조직노동자와 달리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의 정책과 지향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데서 오는 낯설음’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보다 본질적인 데서부터 출발한다. 바로 정파연합당이라는 정체성에서 보듯이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하며 경쟁해온 민족자주계열과 민주생존계열(평등파)과의 노선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당의 대응전략과 방향의 차이가 늘상 갈등의 뿌리를 이루어 왔다는 사실이며,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로 높아진 위상만큼 갈등 수위도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의 장점보단 비효율, 비생산적인 곳에 동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경향이 노출빈도가 높아지면서 당원들의 자심감 상실로 이어지고 또다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대기업 조직 노동자와 운동권 지식인이 선도적으로 만들어온 이력에서 비롯된 민주노동당의 경직된 사업 방식과 조직상태, 우월적 선민의식 등이 사회적 약자들과 만날 수 있는 채널을 스스로 막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비정규직으로, 실직자로,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행동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따라서 불만은 높지만 참여수준은 낮다. 그들의 생계와 직업교육, 취업 알선 등에 책임 있는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들의 불안을 안정으로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채널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실직자, 신용불량자가 정부정책의 희생자들이 아닌 ‘열패자’, ‘게으른 자’ ‘배짱부리는 파렴치범’으로 몰리도록 방치하는 이상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늘상 ‘말은 고맙지만’, ‘되면 좋겠지만’을 넘어설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반대, 데모만 하는 정당을 넘어서 서민대중의 희망, 대안정당으로

무언가에 반대하고 저항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라는 깃발 하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통일된 힘에 기초하여 무언가를 새로이 건설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없이는 저항 자체도 갈수록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서 통일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논쟁 무엇보다 서민대중의 삶에 대한 천착이 필요할 것이다. 때론 추상적이지만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정책과 사회 발전상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수단들은 창조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많은 논자들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즉 ‘평등주의적 성장’의 가능성에 매달리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대안 모색의 어려움은 예외가 아니다. 현재가 문제라면 단순한 반대를 넘어서 과연 어떤 다른 길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실행가능한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생산적인 토론이 진정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진보정당이 어떻게 서민대중과 함께 호흡해 갈 것인가?”
이 질문에 딱 부러지는 정답은 없으며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서민 생활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하는 것에 민주노동당 지역조직의 활동 방식을 맞춰가야 할 것이다. 슬로건 중심의 운동보단 신용구제 상담, 임대차 문제 해결,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살피기 등 서민들의 피부에 와닿은 노력을 통해 신뢰를 쌓을 때 보다 많은 서민대중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서민대중의 ‘화풀이’를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권 내에서 풀어낼 공간을 마련해 주고 가난한 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대변자를 자처할 때 그들의 속시원한 분출이 결국은 민주노동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이 맨날 데모만 하는 정당을 넘어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며 싸우는 정당’이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진보적 담론을 서민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예컨데 양극화 해소의 구체적인 방법과 전망과 관련하여 ‘수치로’ 뒷받침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관료들의 보고에는 그것이 설령 성장 위주로 가는 패러다임이라 할지라도 그안에는 숫자가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주장은 흥분된 목소리만 있지 숫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현실감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또한 살벌한 용어와 골방에 숨겨진 이념서적에나 등장하는 생경한 단어들로 점철된, ‘칼로 긁어도 글자 하나 안 벗겨질 것 같은’ 그들만의 딱딱한 언어도 내용적 원칙과 주조는 그대로 가져가되 최대한 서민들의 귀에 쏙쏙 박히는 언어로 담금질해야 한다.

분배와 복지 통한 시민사회 연대의 제도화

오늘날 시민사회를 묶어내는 데 있어서 소득 불평등과 복지의 부재로 인한 서민대중의 삶의 질 악화가 역설적이게도 성장을 위한 개발 논리를 강화시켜 정권과 자본의 환경파괴적 개발에 동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한 건설경기 부양을 이야기 할 때마다 주요한 이론적 배경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분배와 복지의 강화를 요구하는 ‘민중운동’과 무분별한 개발 중단과 생태환경 보호를 요구하는 ‘환경운동’이 연대해야 할 중요한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양극화와 더불어 ‘희망없는 빈곤’이 만연되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연대의식도 점차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 이동을 돕는 재교육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평등한 교육, 의료기회 보장 등과 같은 적극적인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연대가 제도화되어야 모두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깨어있는 노동.진보진영의 의제설정력 강화

노동.진보진영의 최대 과제이자 난제는 다름이 아닌 의제설정력의 빈약과 차별이다.

대통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그리고 거대 언론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의제설정력에 비해 초라하기까지 한 노동.진보진영의 의제설정력을 여하히 확보하고 현안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이슈화 해내느냐는 진보진영의 성패와 직결되는 핵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엔 ‘거대한 소수’를 조직하는 방법외엔 달리 묘수가 없다. 진보적인 정당, 시민사회단체, 지식인 그룹, 언론매체 그리고 진보적 네티즌과 인터넷 정치사이트가 상호 유기적이고 신속하게 진보적 아젠다를 이슈화하는 대응능력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공유와 연대의 폭을 최대한 넓혀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밖에 없다. 지금처럼 파편화돼서 ‘각자 최선의 길을 찾아서 가는’ 방식만 고집해선 희망이 없다.

특히 인터넷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진보적 네티즌과 정치사이트의 연대와 신속한 대응능력 제고는 진보적 이슈선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원적인 사회와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한 언론의 소임•구실 재정립도 시급한 과제다. 언론이 최근 들어 권력 감시견보다 기득권 수호견 노릇을 하는 것도 사회개혁 차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이처럼 1994년 11월 세계화 선언 이후 겪어왔던 지난한 서민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노동, 진보진영의 힘이 하나의 강력한 정치권력으로서 얼마나 빠르게 제도화되느냐에 온전히 달려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시장일방향적인 흐름이 사회전체에 야기한 균열적 결과는 공동체적 운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실정치적 바탕은 결국 노동, 진보진영의 경제사회적 의제에 대한 총체적 대응능력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최근 민주노동당 지지자와 네티즌 일각에서 비정규직 문제등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진보적 대중노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면서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의 진보적 사회발전에 소중한 자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당 지도부나 다른 의견그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비정규직, 신용불량자, 실직자, 신빈곤층 등 우리 사회 어려운, 그러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에 천착, 한 묶음으로 특화해서 이슈화와 대안제시를 위한 노력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시민사회와 지식인 그룹을 엮어내는 ‘진보적 민생연대’를 구축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제3의 독립적인 정치그룹으로 발전해 간다면 한국의 개혁.진보진영은 본격적으로 ‘서민대중과 함께 하방(下邦)에서 호흡해가는’ 진보세력이 전면에 나서는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당장은 부족하고 여려운 점도 있겠지만 참을 수 있는 ‘희망있는 배고픔’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진보적 언론매체의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진보가 서민대중에게 무능하다는 낙인을 피하고 보조를 맞춰갈 수 있는 길이며, 20대 청년세대와도 연결이 되어 이들의 ‘진보우파’라는 기형적 흐름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고, 작금의 노동.진보진영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물은 누가 대신 파주지 않는다. 목마르고 급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팔을 걷어 부칠 때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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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2/04 [19: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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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보팬 2005/02/05 [16:51] 수정 | 삭제
  • 레인맨님/ 부족한 2% 채워주신다더니 레인맨님이 되레 갈증 나게 만드시네요.^^.

    레인맨님의 위에 답글을 보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운동할때와 달리 초심을 잃고 관료화 되었다. 그래서 비판이외에 대안이 없고, 시야가 좁고, 그들만의 사고에 갇혀있다. 이렇게 요약되는데요.

    결국 레인맨님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꼬집기만 했지 대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네요.

    윗 칼럼에도 그런 지적은 충분히 반영되어 있고 각 주제별로 대안과 방법론까지 자세하게 나와있는 반면 정작 부족한 2%를 채워주시겠다는 레인맨님의 주장엔 아무런 건설적인 대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갈증납니다.

    2%를 채워주시려면 본 칼럼에 적시되지 않은, 님이 생각하시기에 빠져있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단순한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대안으로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 레인맨 2005/02/05 [16:09] 수정 | 삭제
  • 대자보팬님에게.... 레인맨 05/02/05 [15:59]


    저는 진보와/보수 좌파/우파의 각종집단들이 이땅의 모든이가 열심히 노동한 만큼의 댓사를 깨끗하게 배분하여 잘먹고 잘살게 하는 정책을 입안하여 실시하면/ 한나라당도 좋고/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집권한들 무슨 상관 있냐라고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만의 꿈꾸는 가설에 불과할것입니다/진보돠 보수 과연 뭐가 문제일까..? 진보와 보수 정치집단이 우리 노동자 계급에게 과연필요할까..? 역사를 살펴 보건데 좌우파들 민초와 민중을 위한답시고 각종운동을 하면서 운동할때에는 진실이었지만 권력이 되면 거짓으로 떨러진다는 메를로 퐁티의 통찰처럼 이들 좌우파들의 공통점하나 집권하면 그렇게 신봉하던 민초와 민중인 노동자 농민을 배신 때려 버린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시 정치결사체를 의심합니다/ 민주노총당..요즘 문제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 노회찬씨가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자성을 하던데 저는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작년 7월경 민주노동당은 아침해장술에 취해(4/15총선의원10석) 애비도(노동자) 몰라보는 호로상놈의 새끼들처럼 헤롱대지 않느냐고 거침없이 육두문을 날리며 질타를 했지만 거개의 정치집단이 그렇듯히 민주노총당 역시 소리없는 메아리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일테면 탐관오리들처럼 귀와 눈이 썩어버린 관료화가 되어 있다는것을 발견하고..수차에 걸쳐..질타의 펀치를 날렸습니다 이번 민주노총의 위기 또한 작년 공무원파업 이전부터 저렇게 정세분석 능력이 없다간 깨진다 그리고 2005년부턴 자본과 정부의 대공세에 민주노총 좆되버릴수 있다 내가 걱정하는것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다 왜냐면 민주노총이 깨져버리면 한국의 노동자들이 가장 피해를 당하기 때문이다 라고 몇가지 주문사항과 구조적인 민주노총의 한계를 적시하여 구조적인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절대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한마디로 콧방뀌 뺑 뀌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업이나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만의 생각과 좁은 시각에 사로잡혀 세상을 재단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누가봐도 안될것같다라고 문제점을 지적 아무리 고치라고 해도 절대 안고친다는것입니다...자위와 변명 또한 무쟈게 잘하지요..저는 이런 실패한 인간들의 초상을 민주노총당에서 발견했습니다..

    민주노총의 구조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요..?왜 한국의 자본가와 정부당국자는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탄압아닌 탄압을 해댈까요..?민주노촏당의 2012년 집권을 위한 대안은 제대로 세워져 있을까요...?
    ㅎㅎ 없다는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토론들은 잘하지만 마득한 현상의 문제를 타개할 대안과 주도면밀한 전략전술과 선택과 집중의 실천은 단한개 없다는것입니다..세상을 바꾸겠다는 민주노총당 이들의 구호 좋습니다 세상이 약간 삐딱하니까 바꾸겠다는것 하지만 정작 문제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민주노총당 지들은 단한개도 바뀌지 않았다는것입니다..

    이에대한 구체적인 민주노총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구체적인 민주노총당의 리페어를 열거하자면 상당분량의 스크롤 압박이 생겨 네티즌들을 짱나게 할까봐 그만 줄이기로 하겠습니다...민주노총당은 어떠한 외부의 조언과 충고도 마이동풍이자 지극히 당동벌이다는 것입니다/지나치게 싶을정도로 심하게 격정의 질타를 하면 자본과 정부의 알바 회색주의 개량주의로 매도를 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잘하겠습니다/ 등등의 사과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것 또한 얼마나 잘하는지 감격할 따름이고 갸륵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천을 안한다는것입니다 입으로는 실천을 잘하면서요 ㅎㅎ

    이만 적겠습니다 자보팬님의 답글 부탁드립니다/레인맨




  • 자보팬 2005/02/05 [15:11] 수정 | 삭제
  • 레인맨/ 부족한 2% 조목조목 풀어보시지요.^^.

    윗 칼럼에 98% 동의한다 하니 님이 나머지 2% 마저 채워서 화룡점정 찍으세요.

    기자가 토론에 응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님의 그 2%가 무언지가 중요하지요.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님의 주장에 토론할 만한 매력이 있다면 다른 대자보 논객이나 독자들이 나설 것입니다.
  • 레인맨 2005/02/05 [14:22] 수정 | 삭제
  • 김영국님에게........... 레인맨 05/02/05 [14:18]


    전반적인 논조 98%동의 2% 동의할수 없습니다 제가 동의하지 못한 2%는 민주노총과 민주노총의 구조적인 한계를 두리뭉실 처리 했다는것 입니다..위 기사를 쓴 김영국씨 노동자 계급에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겠습니다..어쩌면 노동자계급을 위한 먹물? 흰손으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분 아닌가 싶습니다/ 운동을 위한 노동? 글을 쓰기 위한 노동을? 하신것 같지만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신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또는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고 계시더라도(글을 쓰는것도 노동이기 떄문에) 노동문제는 노사간의 생각과 차이를 알아야만 풀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전제를 깔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김영국님은 자본가들의 생각을 모르지 않나 싶습니다..김영국님의 글은 휼륭한 분석과 대안 제시 이었지만 근원의 문제를 치유 및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즉 화륭점정이지 않냐는 것입니다 ..김영국님의 글을 휼륭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점이 대단히 아쉽다 하겠습니다...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목조목 반박은 김영국님이 원하시면 토론하고자 합니다(제가 배우는 기회 이고자 합니다 /끝 레인맨

  • 홍기빈 2005/02/05 [02:49] 수정 | 삭제
  • 세 번에 걸친 연재, 잘 보았습니다. 지금같이 우리 진영의 앞길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정치 세력들의 사기술에 놀아나지 않고 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