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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양동휴, 칼아닌 ‘사실’ 입증하라
정신대 ‘자발적 참여’ 주장은 생존자들의 '진실', 국제적 인식과 배치돼
 
홍기빈   기사입력  2004/09/04 [16:25]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일제 시대 정신대에 대해 정신대가 사실상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고, 정신대를 조선 총독부가 강제 동원했다는 것은 근거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양동휴 교수는 이에 반론을 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사 교육을 다시 받을 필요가 있다. 공부를 하든지 칼을 들고 와서 나와 이영훈 교수를 찔러라고 말하면서 그 입장을 옹호하였다.
 
한편, 이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126명 그리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러한 주장은 강제로 끌려갔던 정신대 생존자들의 삶의 경험과 반대되는 것이며, 또 객관적으로도 1992년에 와서야 일본정부로부터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일본군이 개입했음을 인정받았고, 93년에서야 강제성이 있었다는 인정을 받아냈다. 또한 2000년 세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 낸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에서는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국제법학자들, 판사들이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를 유죄로 판결하였다”고 반론하였다.
 
[관련기사]
이영훈 교수, "정신대, 자발적 참여" 망언 (프레시안, 2004년 9월 3일)
"역사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나를 칼로 찔러라"(오마이뉴스, 2004년 9월 3일).
"서울대는 이영훈 교수 즉각 파직하고 사과하라"(오마이뉴스 2004년 9월 3일) 

즉, 두 경제사학자의 정신대에 대한 성격 규정과 관련 생존자들의 주장은 정면으로 모순되고 있다.

▲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가 평생을 고통속에 살으신 故 강덕경 할머니 1주기 추모비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무릇 경제사학자는 가장 1차적으로 사실 관계의 확인을 그 기본적 임무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밝혀진 사실이 설령 대중들의 정서나 정치적인 이념과 모순이 된다고 해도 그 사실 관계에 근거하여 목소리를 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 서울대학교의 두 경제사학자들은 따라서 자신들이 확인한 학문적 진실과 양심에 따르는 주장을 내세울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데 역사가들이 그러한 사실 관계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자료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가지가지의 자료의 종류에 따라 그 장단점과 사실 관계 확인에서 감안해야 할 점들을 비판적으로 고려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영훈 교수가 자신의 주장과 관련하여 언급한 사실 관계의 근거는 일본의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임에 반하여, 당시의 상황을 몸소 경험한 경험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반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순된 두 가지의 판단 자료를 앞에 두었을 때에, 양동휴 교수의 주장대로 사실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 지식을 얻고서 그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두 경제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한 사실 관계의 확인에 근거했음을 논증하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 혹은 모두를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질적인 방법이다.
이영훈 교수와 양동휴 교수는, 그 생존자들 개개인들이 사실상 '공창의 창녀'들이었음을 명백히 논증하고, 그를 통해 자신들이 정신대가 강제 동원에 의한 성노예였다는 그 생존자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폭로해야 한다. 아울러, 92년, 93년, 2000년에 각각 있었던 일본과 여타 외국의 학자 및 법 관계자들의 판단이 그릇된 것임을 함께 논증하여야 한다.
 
둘째, 양적인 방법이다.
그 123명의 생존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실제의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신대 사건의 본질과 성격을 규정하기에는 전체 양적인 규모에서 무시할 수 있는 소수의 경우였음을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체 정신대의 숫자 규모를 밝히고, 그 중 그 123명이 주장하는대로 강제 동원된 노예제적 성격을 가진 부분이 어느 정도였고, 공창 성격의 부문이 어느 정도의 양적 비중을 가졌는지를 보인 후 합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정신대 전체의 성격의 규정에 있어서 전자의 측면을 무시할만큼 후자의 측면이 양적으로 압도적이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수량적 방법을 도입하여 기존 경제사 방법론에 혁신을 기한 신경제사(New Economic History)의 개발자 에즈라 포겔(Ezra Vogel) 교수 지도하에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양동휴 교수의 활약이 기대된다.

셋째, 이 이외에도 두 경제사학자들이 제시할 수 있는 다른 사실 관계 확인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두 학자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한다.
 
사실 관계의 확인을 생명으로 하는 두 역사학자에게는, 지금의 들끓는 세론이 큰 시련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평소 소신과 학설을 풍부하게 증명해 보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양동휴 교수의 말대로, 제대로 된 역사 지식에 근거하여 사유하고픈 지식인들은 두 학자의 가르침을 학수고대 기다리며 주시하고 있다. / 논설위원
 
* 필자는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로서 '권력자본론'(삼인, 2004)의 역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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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04 [16: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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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리티즌에서 2004/09/04 [21:15] 수정 | 삭제

  • 자유주의자님이 정치포탈웹진 politizen.org 에 올린 글입니다.
    이영훈 교수 입장에서 차분하게 정리한 것이 좋네요^^

    우선 글을 퍼오신 상록수 님과 폴레믹 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영훈 교수 주장의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기는 하지만,
    제게 자료가 없는 까닭에.....

    거기에 대해서는 정대협 등 자료를 가진 분들이 반박하시는 것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자료는 없지만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논리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영훈 교수 논리의 문제는
    논쟁의 핵심을 다른 데로 틀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랜만에 머리를 굴리려니 좀 힘들군요...... 진짜로)

    이영훈 교수는
    거시적인 구조, 즉 제국주의 침략에서 나타난 식민지에 대한 수탈이라는 거시적인 구조와 관련된 문제를
    성매매 문제라는 미시적인 문제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아마 노회찬 의원이 하고싶던 말은 이것이었던 것 같은데요)

    정신대 문제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보면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고,
    남성 중심의 문화 및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정신대 문제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이영훈 교수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억압하는 남성중심의 사회문화,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접근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문제인데
    왜 여기에 편협하게 민족이라는 잣대로 선악을 구분하느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고백록을 2000점 남겼다는 이야기나
    미군 기지촌 문제,
    청량리나 미아리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반성적 성찰'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토론자리는
    '여성의 인권유린 및 성상품화' 일반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라,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과 연관된 '정신대 문제'라는 구체적인 문제가 거론된 자리였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인권유린 문제가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냐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몇천 년간 일본과 다른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던 한반도의 국가를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하여 불법적으로 합병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하기 위해서 이 나라를 병참기지화하고
    그 국민들을 강제로 징발해서 침략전쟁에 밀어넣었고,
    정신대는 그 가운데 하나의 부분입니다.

    정신대 문제는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 여성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문제이다'에서 그치는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략과 태평양 전쟁 도발로 여성들이 전쟁터에 성노예로 나가게 만든, 그리고 그들을 끌고 간 민간인 혹은 군인이 나오게 만든 일본 제국주의자들 자체에 대해, 그리고 그 부역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가 아니라
    정신대 문제를 유발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구조를 만든
    일본 제국주의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서울에 청량리 문제가 어떻냐 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을 승계한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면서 그 여성들, 즉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을 강압적으로 혹은 기만적으로 전쟁터에 성노예로 끌고간 일본에 대해
    정당하게 외교적 사과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외교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국토를 강제로 점유한 외부 세력에게 협력하며
    국토 수복을 위한 노력을 저해한 반역자들에게 법적 혹은 역사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느냐에 대해 이영훈 교수가 또 물었다고 합니다만,
    이것 또한 국가간 문제를 개인의 인식으로 치환한, 즉 거시적인 문제를 미시적으로 바꾼 일종의 '물타기'라고 생각할 수 있구요.

    또 한 가지는
    미시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능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이 민간에게까지 퍼져있었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건 제가 잘 모르니까요. 저는 나름대로는 신중하게 쓰고 있습니다)
    수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과 나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고 있었겠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한민족'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으로 묶는, '같다'라는 개념의 적극적인 민족개념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자료가 없어서요......)
    스스로를 일본인과는 다르다는, '다르다'는 개념의 소극적인 구별의 의식은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기본적으로 언어와 문화가 달랐으며,
    둘째, 적어도 천 오백 년 이상 서로 떨어진 영토에서 다른 나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영토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서로 달랐기 때문에, 적어도 스스로를 일본인과는 ('민족'이라는 구체적인 개념틀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라고 인식했을 것입니다.

    넓게 이야기한다면,
    이영훈 교수는 정신대 문제에서 여성인권의 면을 가지고
    제국주의의 면을 가려버린 것입니다.

    더 신중하게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하는데
    머리가 또 복잡해져서 글을 쓰기가 어렵군요.

    지금 쓴 글은
    제가 자료가 없는 관계로 해서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자료들을 일단 사실로 간주하고 쓴 글입니다.
    이 자료들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점(일본의 자료를 채택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택하지 않은 점)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반박 자료를 가진 것도 없구요.

    그래서
    이영훈 교수의 논리 자체에 대해서 한 번 나름대로 생각을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