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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눈에 쌓인 고모리 호수 둘레길의 풍경
삶을 성찰하며 둘레길을 걷다
 
김철관   기사입력  2023/01/07 [20:53]

▲ 고모리 저수지 호수공원 내 김종삼 시인의 시비이다  ©


작년 12월말 직장을 퇴직하고, 차일피일 미뤄왔던 새해 여행을 지난 6일 오후 4시 정각 떠났다. 경기 남양주 진접 집에서 가까이 있어 평소에도 자주 찾는 곳인데도, 이날은 왠지 멀리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오직 겨울에만 오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지, 주변 환경이 생소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얀 눈으로 쌓인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처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경기 포천 고모리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집’의 1만원 짜리 시레기 밥이었다.

 

채식주의자인 나에게는 제법 좋은 식사였다. 시레기는 물론 청국장, 콩비지, 콩, 미역줄기나물, 열무김치에 누룽지탕까지 곁들인 석식이 배를 든든하게 했다.

 

‘욕쟁이 할머니집’은 남루하고 허름한 곳이지만 아주 오래된 유명 식당이었다. 식사 외에도 된장, 청국장, 간장 등을 직접 담아 팔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거처로 들어왔다. 저녁 9시경 창문을 열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겨울의 멋진 풍경을 놓칠 수가 없어 연신 휴대폰 셔터를 눌렀고, 동영상으로도 남겼다. 나만이 간직할 수 없어 이 모습을 sns를 통해 독일에 있는 딸에게도 보냈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연말에 미루어 왔던 글을 썼다. 하지만 창문가에 연신 펑펑 내린 눈을 보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바람에 휘날린 눈은 금세 수북이 쌓였고, 눈 내리는 이곳 고모리 호숫가를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를 데리고 걷는 한 젊은 부부의 모습이 동화처럼 보였다.

 

잠을 청했다. 5시간쯤이 지나 7일 아침 8시 30분 쯤 거처 지하 식당에서 조식을 했다. 어제 저녁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거처에서 하루 더 머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하루 더 숙박비를 정산했다. 이렇게 2박 3일의 여정이 자연스레 시작됐다.

 

7일 오전 숙박을 한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했다. 뉴스를 보니 편치 않은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10.29 참사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국정조사 뉴스를 보면서, 국조에 발언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너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귀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해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한데, 아직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근 식당에서 털래기 수제비로 간단히 점심을 끝내고 고모리 호숫가의 하얀 눈을 밟으면서 데크를 따라 걸었다. 과거에 이곳을 와 호숫가를 한번 돌면 대략 40분 정도 걸었던 기억이 났다. 호수 가장자리 얼음 위에 쌓인 하얀 눈을 보면서 어린시절 고향 저수지에서 동네 친구들과 썰매를 탔던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태어난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용당리 '구룡' 부락의 구룡은 마을 앞 저수지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이면 마을 앞 저수지 얼음 위에서 나무 의자 밑 두 갈래 다리에 우산 대를 붙여 썰매를 만들어 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모리 호수의 꽁꽁 언 여름 위의 하얀 눈을 보니, 고향 산천의 겨울이 잠시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곳 고모 호수와 어우러진 산천의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이 휴대폰 셔터로 향했을 정도였다.

 

▲ 고모리 호수 둘레길에서의 기자(김철관)이다.  ©


34년이라는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 ‘뭐든지 내 생각이 옳았다’는 생각으로 살진 않았을까라는 나의 부족함을 성찰을 하며 호숫가를 걸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고모리 호수 둘레길을 제법 많이 찾았다. 연인, 부부, 친구, 동창생,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아가씨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하얀 풍경에 도취돼 걷고 있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포천시와 재산권 침해에 대해 분쟁을 하고 있는 안동권씨 문중 소유의 동산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이곳 둘레길의 가장 높은 가장자리로서, 이곳 꼭대기는 눈이 수북이 쌓여 하얀 싱그러운 멋을 뽐냈다.

 

동산을 내려오면 저수지 뚝방이 나온다. 이곳에 걸린 현수막은 저수지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었다. ‘수온이 낮고 수심이 깊어 위험하오니 썰매타기, 스케이트, 얼음낚시를 하지 말라’는 한국농어촌공사의 경고문이었다.

 

이곳을 지나 한참을 가니, 무당벌레 모형이 우뚝서 있었다. 초봄에서 늦가을까지 노란 꽃을 피우는 산수유동산과 호수전원마을을 지나자, 곳곳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보였다. 눈사람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오리 보트장을 지나자 대표적 고모리 카페 명소인 ‘고모리 691’이 나오고, 이곳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조금 더 걸으니, 고모리 저수지를 상징하는 '비상'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나왔다. 고모3리 주민들과 인근 작가들이 합심해 제작한 조형물이었다. 고모3리 문화마을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지막 종착지 고모 호수공원은 공연무대시설과 지역 특산물 등을 파는 주말 마켓으로도 운영되고 있었다. 고모저수지는 해발 600미터인 죽엽산 중심부에 있는 1300천톤 저수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 둘레길은 총 2.6km로, 걸어서 40여분이 소요된다. 특히 호수공원에는 두 개의 타원형으로 이뤄진 특이한 모양의 고 김종삼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는데, 아랫돌에는 <민간인>이, 윗돌에는 <북치는 소년>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비는 1993년부터 광릉수목원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사정에 따라 2011년 12월 21일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고모리 명칭 유래는 어떤 사람이 늙은 고모님(姑, 할미)을 모시고 그 산 밑에서 살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할미가 외로이 세상을 떠났는데, 할미를 매장한 묘앞에 개설된 마을이라고 해 고뫼앞, 고묘, 고모라 했다. 고모저수지 주변에는 둘레길, 분수, 쉼터, 아트윌, 의자게이트, 소리체험난간, 붕어 게이트, 붕어 풍향계, 장미넝쿨, 포토존, 자물쇠 펜스 등이 잘 조성돼 있고,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보트장 등도 있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 고모리 호수의 겨울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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