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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새책 소개]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김영조   기사입력  2011/07/30 [12:16]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이 어미 밤새 / 네 수의 지으며 / 결코 울지 않았다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 비굴치 말고 / 당당히 /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위 시는 지난 3ㆍ1절에 친일문학인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을 펴내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이윤옥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에 실린 “목숨이 경각인 아들 안중근에게”라는 시 일부이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 202명 가운데 20명을 골라 가슴 찡한 시로 그들의 삶을 그려 내고, 조국 광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살아온 모습을 소개한 책이다.

위 시를 읽으며 가슴이 메어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도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사형수 아들의 수의를 지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로 우리의 맘을 울컥하게 한 시인은 다시 조마리아 애국지사를 담담히 설명해 내려간다.

“아들의 죽음을 앞둔 어미의 심정이 어찌 흔들리지 않았으랴! 그러나 조마리아 여사는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중근은 그런 어머니의 꺾이지 않는 정신을 배웠던 것이다. 평소 백범 김
구 어머니인 곽낙원 여사와 우애 좋게 지내던 조마리아 여사는 곽 여사가 김구에게 엄하게 대했던데 견주어 아들 안중근에게 자애로운 어머니로 알려졌다. 그러한 어머니가 자식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는 매우 단호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윤옥 시인은 시집 머리말에서 대학생들에게 여성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써보라고 했더니 유관순 말고는 거의 백지로 냈더라고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 시인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온 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수많은 자료를 찾아 이 시집을 내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인은 빛도 없이 명예도 없이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묵묵히 조국광복에 헌신한 여성들이 어디 202명뿐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남성에 견주어 널리 알려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 수의를 짓는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시집에서) ⓒ 이무성
이 시집에서 시인은 춘천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임신부의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쓴 남자현, 안동의 독립운동가 3대를 지키고 그 자신 만세운동으로 잡혀가 두 눈을 잃었던 김락 애국지사를 비롯한 스무 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시와 삶의 여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윤옥 시인은 이 시집을 내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중국땅 상하이를 시작으로 27년간의 피난지였던 꽝쩌우, 류쩌우, 창사, 충칭 등은 물론이고 부산, 나주, 안동, 춘천, 대전 등지의 생가나 무덤을 직접 발로 뛰었으며 부평, 수원 등에 생존해 계시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가 나눈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았다.

중국 유주(柳州)에서 14살 어린 나이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여 활약한 오희옥 지사(현 86살)는 아직 정정한 편이며 옥사한 이육사 애국지사의 시신을 거둔 이병희 지사(현 95살)는 요양원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 하고 계신다고 이 시인은 생존 애국지사들의 근황을 전했다.

“꽃반지 끼고 가야금 줄에 논다 해도 말할 이 없는/노래하는 꽃 스무 살 순이 아씨/ 읍내에 불꽃처럼 번진 만세의 물결/눈 감지 아니하고 앞장선 여인이여/춤추고 술 따르던 동료 기생 불러 모아/ 떨치고 일어난 기백/ 썩지 않은 돌 비석에 줄줄이 /이름 석 자 새겨주는 이 없어도 /수원 기생 서른세 명/ 만고에 자랑스러운 만세운동 앞장섰네”  

위 시는 책 속에 있는 <수원의 꽃 33인의 논개 ‘김향화’>의 일부이다.

▲ 요양원에 계신 이병희 애국지사와 함께
 

▲ 무명지 잘라 조선독립원을 쓰는 남자현 여사의 굳은 의지 ⓒ 이무성

올해로 66돌을 맞는 8·15 광복절을 앞둔 우리에게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나라사랑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시집이다. 시집 속에는 사진과 함께 백범 김구 어머니인 곽낙원 여사의 그림을 비롯하여 여러 장의 인물 삽화가 들어 있는데 이 그림들은 모두 한국화가 이무성 화백의 솜씨이다. 이 화백은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인기 있는 작가다.

며칠 전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을 보면서 과거 우리 겨레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데에 대한 반성 없는 무뢰한 행동에 불쾌감을 토로하는 국민이 많다. 이러한 때에 여성의 몸으로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항거하며 온몸으로 독립을 쟁취하던 독립지사들의 삶을 그린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흐트러진 우리 마음을 다잡는 작은 불씨가 될 것으로 믿는다.



 애국지사들의 목숨 건 ‘나라사랑’ 이야기를 대중화하자
[대담] ≪서간도에 들꽃 피다≫ 지은이 이윤옥 시인

▲ 대담하는 지은이 이윤옥 시인     ©김영조
- 지난 3·1절에는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을 펴낸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번엔 ≪서간도에 들꽃 피다≫이다. 시집치고는 아주 독특한 데 이렇게 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불나방처럼 부와 명예를 위해 일제에 아부했던 사람들을 다룬 시집이 ≪사쿠라 불나방≫이라면 이번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살을 에는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분 가운데서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3·1절과 8·15는 우리 겨레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지난번에는 일제에 빌붙어 겨레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들을 다뤘으니 이번에는 항일애국지사를 다뤄야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에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시집으로 엮은 것이다.”  

 
- 여성독립운동가는 현재 생존해 계시는 분이 몇 안 되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 책을 내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나?
 

“어떤 인물에 대한 시를 쓰려면 풍부한 자료가 필수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 수십 성상 조국을 떠나 살신성인으로 항일독립운동한 사람들의 자료가 겨우 서너 줄밖에 없는 분들도 많았다. 부족한 자료는 애국지사의 고향마을이나 후손들의 이야기로 보충했다.

친일부역한 사람들은 사진도 많지만 항일애국자들은 변변한 사진 한 장 없는 게 현실이다. 무명지 잘라 혈서 쓴 남자현 애국지사가 그렇고 춘천의 의병대장 윤희순 애국지사는 물론이고 안동의 김락 애국지사,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 역시 사진 한 장 전하는 게 없다. 그나마도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구한 사진은 해상도가 낮아 쓸 수 없어 고인이 된 분의 무덤이나 고향집 사진으로 대체 한 것이 아쉬웠다.”  

▲ 김구 어머니 곽낙원 지사     ©이무성
- 책을 쓰려고 어디까지 답사를 하고 누구를 만났었나?

“이번 시집을 쓰려고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활약했던 중국땅을 찾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부터 시작하여 항쩌우, 쟈싱, 창사, 꽝쩌우, 류쩌우, 뀌양, 치쟝, 충칭 등을 돌아보면서 당시 임시정부의 어려운 안살림을 맡았던 정정화 여사를 떠올렸으며 남목청 사건으로 부상을 당한 백범 김구선생이 입원했던 상아병원을 둘러볼 때는 지극한 간호를 맡았던 연미당 애국지사를 떠올렸다. 또한, 류쩌우를 찾았을 때는 열네 살 독립군 소녀 오희옥 애국지사의 다부진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곡기를 끊고 24일 단식으로 일제에 항거한 이만도 애국지사 집안의 며느리이자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사위를 일본군의 총칼 앞에 앞세우고 자신도 만세운동으로 고문을 당해 두 눈을 잃으면서도 독립의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안동의 김락 애국지사 유적지와 무덤도 찾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 의병장 윤희순 애국지사의 숨결을 느끼고자 춘천 관천리 마을을 돌아보고 홍천강이 내려다보이는 무덤을 찾은 것을 비롯하여 부산, 나주, 인천, 수원, 부평 등을 돌아다녔다. 또한, 대전과 서울의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분들을 찾아뵈었으며 생존자이신 수원의 오희옥 애국지사와 부평에 계시는 이병희 애국지사는 직접 만나 손을 잡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효정 애국지사의 아드님이신 박진수 화백은 비가 억수처럼 내리는 날 어머니 사진이 실린 시집을 가슴에 품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는 뭉클한 사연도 있었다.”
 
- 이번에 시를 쓴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 까닭은? 

“모두 하나같이 존경스러운 인물이라 누굴 꼭 짚을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을 든다면 수원의 기생 출신으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잡혀 모진 고문을 겪은 김향화의 삶이다. 노천명이나 모윤숙처럼 많이 배우고 잘난 여자들이 일제에 빌붙어 천황폐하 만세의 시를 짓고 징용을 독려하는 강연장에서 핏대를 세울 때 스무 살 김향화는 일제의 부당한 억압과 착취에 온몸을 던져 저항한 인물이다.”

    
▲ 기생의 몸으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향화     © 이동근

- 책을 쓰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올해 95살인 이병희 애국지사를 찾아가 실핏줄이 드러난 가냘픈 손을 꼭 쥐자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을 잊지 말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집을 만들어 다시 찾아뵙겠다고 하니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시던 모습을 보면서 요양원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작은 위안을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 이 책의 펴냄과 관련하여 앞으로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은?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202명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는 20명밖에 다룰 수 없었다. 이 시집에서 다루지 못한 분들도 모두 시로 그려내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가능하다. 혼자 힘으로는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얼마 전 간도특설대 출신인 백선엽을 영웅시하는 기념물이 분단의 현장 파주시 임진각에 세워져 뜻있는 많은 분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악랄한 식민 역사’를 겪은 우리가 중심을 잃고 제 겨레에게 무자비한 총부리를 겨눈 사람을 영웅시 한다면 민족의 원흉 이완용이 영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작금 거꾸로 가는 역사의 이상기류에 의식 있는 국민이 적국 대응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몸으로 빛도 없이 명예도 없이 묵묵히 조국광복을 위해 뛰어온 분들의 삶은 그래서 이 어두운 시대에 횃불과 같은 것이다. 이분들의 ‘나라사랑’ 이야기는 하루속히 재조명되어야 하고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한 권의 시집이 ‘그때는 누구나 친일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불식시키고 훌륭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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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30 [12: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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