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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무동(舞童) 장면 현대에 재현되다
[공연] 국립국악원 우면당서 삼현육각보존회 정기공연, 진가 확인 기회
 
김영조   기사입력  2011/02/13 [17:55]
조선시대 풍속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진도 없고, 더더구나 동영상도 없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짐작할 길은 있다. 바로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같은 이가 그려놓은 풍속도에 당시의 풍속이 묘사된 것이다.

▲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삼현육각보존회의 정기연주회 모습     © 김경덕
그 가운데 단원의 풍속도첩 속에 <무동(舞童)>이라는 그림이 있다. 거기엔 무동이 춤을 추는데 위 맨 왼쪽에 좌고(앉은북)를 치며, 그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구와 두 대의 향피리(중국에서 들어온 당피리에 견준 우리 고유 피리), 대금·해금이 연주를 한다. 이런 악기 편성을 삼현육각(三絃六角)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궁중무용과 행진 음악, 지방 관청의 잔치, 높은 관리의 행차, 향교 제향 그리고 각 지방에서 신에게 제사 지낼 때 두루 쓰이던 민간의 주류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는 언제 어디서나 삼현육각 형태의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조선시대 민간음악의 주류를 이루던 삼현육각은 해방 뒤 맥을 이어오던 해금산조와 시나위 명인이었던 지영희(池瑛熙, 1909~1979) 선생이 세상을 뜬 뒤 그 맥이 끊길 뻔했다.

그러던 것을 3년 전부터 삼현육각보존회(회장 최경만, 부여충남국악단 음악감독)를 만들고 정기연주회를 시작하면서 다행스럽게 그 맥을 이어놓았다. 물론 그 시작은 1969년 창립된 “민속악회 시나위”였지만 대영산 등을 본격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한 것은 삼현육각보존회가 처음이다.


삼현육각은 <무동>에서처럼 6명으로 구성되지만 경기·호남·해서·영남 등 지역에 따라 악기 종류, 편성인원, 음악적 특징, 악곡구성에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삼현(三絃)이라 해서 3대의 현악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삼현육각이 주로 연주하는 음악이 <삼현영산회상>이어서 그를 딴 것이라고도 하고, ‘육각(六角)은 피리를 불고 북을 치는 6명의 연주자를 말한다.’라고도 한다. 
  

▲ 단원 김홍도 무동(舞童, 왼쪽), 지영희 선생 해금 연주 모습     © 최경만
그 삼현육각을 보존하려는 삼현육각보존회 몸부림인 정기연주회가 지난 2월 8일 저녁 7시 30분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사)한국국악회 이사장인 한양대 권오성 교수의 해설로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이 시대 최고 국악이론가인 권오성 교수의 맛깔스러운 삼현육각에 대한 해설이 시작되었다. “우리소리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마음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그저 눈 감고 편하게 느낄 자세가 되어 있으면 됩니다. 삼현육각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삼현육각을 정확히 모르는 청중들을 위해 권오성 교수는 편안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해설로 이 날의 공연에 빛을 더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피리 최경만·김효도, 대금 이철주, 해금 김무경, 장구 윤승병, 좌고 김성엽이 자리를 잡았고 첫 번째로 민간 <대영산(영산회상)>을 연주했다. 언뜻 지루하게도 느껴질 대영산, 그러나 그 속에 뭔가 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으로 청중들은 숨을 죽였다. 조선시대 민간음악의 주류였던 삼현육각을 제대로 느끼는 듯 서서히 청중과 연주자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이어서 연주자들이 잠깐 쉬는 동안 서울시문형문화재 제21호 휘몰이잡가 예능보유자 박상옥 명인이 “변강쇠타령”을 소리했다. 명인은 무대를 휘어잡아 변강쇠타령에 이어 팔도 민요를 구성지고 흥겹게 불러 청중들의 힘찬 호응을 이끌어 냈다. 청중 모두는 저절로 손뼉을 치고 민요를 따라 불렀다.

▲ 피리 연주를 하는 최경만 명인     © 김영조
박상옥 명인의 시간이 끝나자 삼현육각보존회 회원들이 다시 “경기시나위”를 합주했다. “경기시나위”는 육자배기 토리로 된 허튼가락의 기악곡을 말한다. 원래 이 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지영희 선생이 보유자였으나 지금은 그 맥이 끊길 뻔 했던 것을 지 선생의 제자들이 찾아 연주한다는데 큰 뜻이 담겨 있다. 연주자들의 현장 호흡으로 맞추는 즉흥음악을 시나위라 하지만 그 음악의 완결성은 절묘했다.

이어서 최경만 명인의 호적풍류가 경쾌하고 시원스럽게 퍼져나갔다. 장구 장단위에서 흥겹게 노니는 호적소리는 청중들을 들뜨게 했다. 다른 이름으로 태평소, 날라리, 쇄납, 새납이라고도 부르는 호적은 예부터 세상이 두루 편안해지는 소리로 알려졌으며 그 소리는 <세상의 한가운데-흙-황제(노랑)>를 뜻한다고 한다.

호적풍류가 끝나자 염불풍류, 취타풍류로 이어진다. 염불풍류 한 바탕은 긴염불부터 시작하여 반염불, 삼현타령, 느린허튼타령, 중허튼타령, 자진허튼타령, 경기굿거리, 자진굿거리, 당악 등 모두 9곡으로 짜여 있다. 이어지는 취타풍류는 취타로 시작하여 별곡까지 완만한 빠르기로 연주하다가 느려졌다가 다시 보통 빠르기로 변화를 주는 상큼한 소리로 마무리 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학생 풍물동아리를 지도한다는 마완근(마석고 교사) 씨는 “삼현육각 공연은 처음 보았다.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우리 음악 가운데 풍물굿과 판소리, 민요 등에만 익숙해있던 내겐 큰 충격이었고, 이는 꼭 계승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삼현육각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러한 귀한 공연을 이웃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겠다.”고 공연 소감을 말했다.

“삼현육각”을 처음 대하는 청중들에게는 이 연주가 생소하고 다소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서양 클래식도 처음부터 알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듣고 또 들으면서 자신만의 해석이 뒤따를 때 음악의 진가는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즐기고 그 음악을 삶에 끌어들였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음악 감상의 한 방법이다. 신묘년 새해 벽두를 장식한 ‘삼현육각’의 깊고도 오묘한 소리는 올 한해 내내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라고 공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은 입을 모았다.

▲ 정기연주회를 한 삼현육각보존회 회원들, 왼쪽부터 윗줄 최경만/김무경/이철주, 아랫줄 김효도/윤순병/김성엽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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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13 [17: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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