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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 조선인들의 기억, 단바망간기념관 살리자!
서울에서 일본 교토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발족식 가져
 
김영조   기사입력  2010/11/25 [18:19]
지난 11월 24일 이른 10시 서울 흥사단에서는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발족식과 기자회견이 있었다. 행사 시작 전 먼저 단바망간기념관 관련 일본 간사이TV 보도물과 사진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개회사와 경과보고가 있었고, 반재철 위원회 공동대표가 “우리가 외면했던 단바망간기념관 이제라도 모두 나서서 지켜내자.”는 인사말을 했다.

이어서 민족문제연구소 이윤옥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일본엔 5천여 개의 각종 박물관, 기념관이 있지만 가해자 시각으로 만들어놓은 곳은 나가사키의 <오카마사하루자료관>과 이곳 <단바망간기념관>뿐이다. 일본은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뜻에서라도 단바망간기념관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손으로라도 단바망간기념관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 관장     © 김영조

이후 연단에 오른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 관장은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쓸 장례비용을 기념관을 만드는데 쓰자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의 뜻을 살려 기념관을 만들고 지켜왔지만 경영난으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국의 여러분이 나서서 힘을 보태주기에 용기를 얻어 내년 재개관을 위해 뛰고 있다. 일본은 한 맺힌 가해의 역사에 눈 감은 채 세계평화를 외칠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대학생 송유니게 실행위원의 발족선언문 낭독이 있었고, 황의중 실행위원장의 활동계획 발표가 있었다. 활동계획은 모금을 통해 재개관시에 필요한 월 유지비 가운데 관람료 수입을 뺀 나머지를 보충한다는 계획이었다.


▲ 인사말을 하는 반재철 공동대표(왼쪽), 이윤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 부위원장     © 김영조
▲ 발족선언문을 낭독하는 송유니게 실행위원(왼쪽),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발표하는 황의중 실행위원장     © 김영조
  
위원회의 공동대표는 강창일·남경필·박선영 국회의원, 김종철 지구촌동포연대 공동대표, 김창곤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반재철 흥사단 이사장,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정승천 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넷 대표 등이 맡고 있다.

여기서 잠시 “단바망간기념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면, 망간은 강철을 만드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망간은 철대포를 만드는데 꼭 들어가야 하는 물질로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오를 때 교토 단바지역에는 200여 곳이 넘는 망간탄광이 있었다. 망간탄광 확보에 혈안이 되어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자 조선인을 강제연행으로 끌어와 갱도에서 혹사시킨 곳이 이곳 단바망간 탄광지역이다. 그래서 그 아픈 기억을 지우지 말자고 당시 강제연행자의 한 사람인 고 이정호 씨와 그 가족이 사재를 털어 만든 곳이 오늘의 단바망간 기념관인 것이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고 이정호 씨는 1932년생으로 2살 때인 1934년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고 어릴 때부터 망간탄광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오랜 탄광 생활 탓에 진폐증에 걸려 고생하다 1995년 6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죽기 6년 전인 57살 되던 해에 가혹한 탄광 노동을 몸소 겪으며 젊은 나이로 끌려와 중노동 끝에 죽거나 해방 후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동포를 위해 그들을 기억하는 장소로 삼고자 기념관을 세우기로 작심한다.

기념관을 만든다고는 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기에 지금 기념관 자리가 들어선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땅을 팔고 살림살이를 판돈과 병든 자신이 죽으면 쓸 장례비용을 털어 첫 삽을 뜬 것이 1986년 일이었다. 부족한 자금 때문에 가족들이 직접 견학 갱도를 뚫었으며 자료관에 전시할 망간 광석과 사진 자료들을 모아 1989년 5월 개관에 이르렀다.

▲ 흥사단에서 열린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발족식 모습     © 김영조

하지만, 주변 마을과 일본 정부의 냉대는 이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학습시설로 분류돼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견주어 망간기념관은 “동네 이미지가 실추되니 망간기념관을 우리 마을에 세우지 마라!”고 훼방을 놀았다. 개관 초엔 연 2만 명 정도이던 관람객이 최근 수년 동안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약 500만 엔 정도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2009년 5월부터 폐관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한일 양국의 양심적 지식인과 단체들이 발벗고 나섰다. 기념관이 고사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며 지난 6월 27일 교토에서 모임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정희순, 도상태, 다카무라쇼지, 다나카히로시 이상 4명 공동대표)’를 발족시켜 망간기념관의 재개관을 위한 적극적인 도움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으며 오는 11월 27일엔 도쿄에서 윤도현 밴드 공연을 비롯한 많은 뜻있는 분들의 모금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 지난 2010년 8월 11일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때 단바망간기념관에서 만났던 이용식 관장과 이윤옥 민족문제연구소 부위원장이 반갑게 이야기하고 있다.     © 김영조

이제 본격적으로 단바망관기념관을 살릴 구체적인 한국시민들의 모임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 모임의 발족을 바탕으로 기념관이 어서 다시 문을 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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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25 [18: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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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물인 2010/11/28 [03:33] 수정 | 삭제
  • 나는 이런 양반들이 이런 일을 하는 속셈을 잘 안다고 보는 측면이다..정부지원금을 잘 만들어주는 역할을 잘 한다..하지만 그 때 뿐이다. 새로운 독립운동유공자를 발견해서 포상하고 하는 일..중요하지만,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모순도 목격된다. 하지만 결국은 그런 유공자를 발견하고 하는 일들이 결국은 기념사업으로만 머문다. 정말 그 유공자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정부지원금 타내는 페이퍼워크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게 전부고, 그외 할 것이 사실 없다.
  • 다물인 2010/11/28 [03:20] 수정 | 삭제
  • 요즘도 정치인은 대접받지만 노동자는 대접받지 못하는것과 같다. 오로지 정치인만 애국자고 노동자는 그저 노사분쟁만 하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공직자사회..얼마전에 성추행법을 노동자풍이라고 해서 논란이 되었듯이..그 차별의 의식은 민주주의가 들어선 이땅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있다. 노동자를 천시하는 경향의 교육도 문제고, 요즘 조금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특히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런 뉘앙스를 많이 느낀다. 노동자문화가 없는 한국이다. 그 노동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사실 모든 역사는 계급차별의 역사인 고로, 계급해방론은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다. 하지만 해방에 앞서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되야 하는데,,나는 이런 기념사업은 상당히 좋은 것이라고 본다.
    강제노동자들의 복권과 이미지개선 사업은 앞으로의 노동문화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분명 강제노동자들도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