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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뱅이로 자리매김 해가는 서도명창 박준영
[현장] 박준영 “배뱅이굿 그리고 서도소리”, 스승 이은관씨와 함께 공연
 
김영조   기사입력  2010/11/15 [17:10]
“왔구나 왔소이다 왔소이다 불쌍이 죽어 황천갔던 배뱅이 혼신 평양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날에 왔소이다 우리 오마니 어디갔나요 오마니 오마니- 살아생전 같으면 내가 어디를 갔다가 온다고 하면은 우리 오마니가 나를 보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어둔밤에 불 본 듯이 화닥닥 뛰어서 나오련 만은 죽어 지고서 길 갈라서니 쓸 곳이 없구려 오면 온 줄 알며 가면 간 줄 아나 오마니 흑흑흑흑”


▲ 혼신을 다해 배뱅이굿을 부르는 박준영 명창     © 김영조
   
이 같은 사설이 나오는 배뱅이굿은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역을 도맡아서 소리를 해 죽은 이의 혼을 불러오는 서도(西道) 지방의 연극적인 굿놀이를 말한다. 특히 나이 지긋한 사람이면 이 배뱅이굿과 이은관 명창을 모르는 이는 없다. 평양의 젊은 건달 부랑자가 무당 행세를 하여 넋을 불러들여 준 것처럼 속이고, 최정승에게 재산의 절반을 받았다는 내용의 이 배뱅이굿은 이은관 명창의 명성을 한껏 높여준 소리이다. 아니 이은관 명창 덕분에 배뱅이굿을 온 국민이 즐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세출의 소리꾼으로 일컬어지는 이은관 명창은 올해 벌써 94살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정하여 어떤 젊은 소리꾼보다도 우렁차게 “왔구나! 배뱅이가 왔구나!”를 외친다. 문제는 그렇게 이은관 명창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아직 무대를 화려하게 장악할 때 그 뒤를 이을 후계자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 고수 김오택의 장구 반주로 배뱅이굿을 부르는 박준영 명창     © 김영조
    
▲ 한오백년과 강원도아리랑을 부르는 유혜숙(왼쪽), 유지숙 명창     © 김영조
    
그런데 여기 이은관 명창의 그늘에서 숨어있지만 못하겠다는 소리꾼이 야심 차게 떨쳐 일어나 공연을 한다. 그가 바로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서 “박준영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 음반을 낸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배뱅이굿 전수교육조교인 박준영 명창이다. 박 명창은 어제 11월 14일 늦은 2시부터 인천 계양문화회관에서 그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을 여는 무대로 유상호 외 10여 명의 출연자가 “영변가”를 부르고 이어서 김오택 고수의 반주로 박준영 명창의 1부 배뱅이굿이 시작되었다. 이날 공연은 완창은 아니었지만 혼신을 다해 배뱅이를 부르는 모습에서 저 세상에 갔던 배뱅이 혼백이 박준영의 소리에 놀라 다시 이곳 무대에 뛰어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준영이 부르는 배뱅이굿은 이은관의 배뱅이굿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준영의 소리와 색깔을 내라.”고 하신 스승의 뜻을 잘 받아들였을까? 그에게서는 익살스런 이은관 명창의 목소리와는 다른 무게 있으면서도 조금은 절제된 느낌의 배뱅이굿이 느껴진다.

이어서 한오백년과 강원도아리랑을 유지숙, 유혜숙 명창이 그 맛깔나는 목소리로 부르고, 이문주ㆍ 유상호ㆍ김난기ㆍ하인철이 부른 개성난봉가ㆍ양산도ㆍ잦은방아타령이 이어졌다. 그리고 박성수 외 5명의 강산유람, 김혜연 외 3명의 산염불ㆍ잦은염불이 불렸다.
 

▲ 특별출연한 이은관 명창이 색소폰을 맛깔나게 연주했다     ©김영조

공연 중간쯤엔 박준영 명창의 스승인 이은관 명창이 특별출연을 했다. 명창은 “왔구나! 배뱅이가 왔구나!”를 외치며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환호와 손뼉을 받았다. 그의 목소리와 정정한 모습은 94살의 나이를 의심할 만큼 쩌렁쩌렁했는데 이날 무대에서는 배뱅이굿이 아닌 색소폰 연주를 했다. ‘이은관이는 배뱅이굿 밖에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시작한 섹소폰 연주는 가히 수준급이어서 이은관 명창이 재주꾼이자 팔방미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관객들의 함성은 객석을 떠나갈 정도였다.

섹소폰 연주에 앞서 이은관 명창은 “나는 이제 늙어서 소리에는 한계가 있다. 배뱅이굿이 끊어지지 않고 나보다 더 멋진 한바탕의 배뱅이굿을 이어나갈 박준영 명창이 있어 무척 기쁘고 행복하다.’며 제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 “술비타령, 잦은술비타령”을 주고받는 박준영(왼쪽), 유지숙 명창     © 김영조

마지막 무대 장식은 명창 박준영과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 명창이 주고받는 “술비타령, 잦은술비타령”, 유지숙ㆍ박준영ㆍ유혜숙ㆍ이미리의 “잦은뱃노래”로 마무리되었다. 차세대 무형문화재로 손꼽히는 박준영ㆍ유지숙 두 명창은 서도소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제자의 공연을 지켜본 이은관 명창은 기자에게 “박준영 명창은 나와는 좀 다르게 소리를 한다. 서도 맛이 아닌 서울 맛이 섞인 박준영만의 배뱅이굿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좋다. 박준영이 이은관의 배뱅이굿을 하면 되겠는가? 그는 좀 우직할 만큼 ‘배뱅이굿’밖에 모른다. 제자들이 하나 둘 나를 떠나갔을 때 박준영은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어떤 이가 박준영을 ‘작은 배뱅이’라 했다. 이제 그 작은 배뱅이가 큰 배뱅이가 되어 내 뒤를 이어줄 것이라 믿는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늦가을 계양산의 단풍이 마지막 옷을 갈아입는 산자락 아래 자리한 공연장에서 배뱅이굿에 흠뻑 취한 계산동에서 온 이영미(43, 교사) 씨는 “나는 배뱅이굿의 익살스런 사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박 명창은 소리에 충실했던 것 같다. 이번 무대가 완창 무대가 아니라 박 명창의 배뱅이굿에 대한 소감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해살스러운 입심만 믿고 소리가 약한 것보다는 기교를 억제하면서도 서도소리의 깊이를 가미한 배뱅이굿은 처음이다. 아주 좋았다. 다음번 완창무대에 꼭 가보고 싶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 목동에서 온 한성철(52, 시인) 씨는 “오늘 공연은 음반과 함께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이은관 명창의 뒤를 분명히 잇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그에게서 나는 진정 배뱅이굿을 깊게 사랑하는 소리꾼을 보는 듯하다.”라는 소감을 들려주었다.

     
▲ 신나라에서 나온 “박준영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 음반 표지     © 김영조
    
이날 청중들에게 소개된 그의 음반 “박준영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를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교수는 “박준영 명창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음반을 통해서 사람들은 무엇이 서도소리의 정통성인지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은관의 배뱅이굿을 올곧게 계승하는 음반이란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배뱅이굿을 표현하는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며 확인해주었다.

이날 공연의 옥에 티라면 음향이 매끄럽지 않은 점이었는데 이는 공연장이 지닌 한계로 보인다. 또 2부 서도소리 공연에서 변화를 느낄 수 없도록 짜인 점이 청중에겐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이는 기교로 승부하지 않고 오로지 정통성을 고집하는 박준영 명창의 음악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기에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에 앞서 박 명창은 기자와 나눈 이야기 가운데 “나는 배뱅이굿을 부를 때 마음 가득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만 떠올린다. 그래야, 배뱅이굿다운 배뱅이굿이 나오기 때문이다. 배뱅이굿은 내게 삶 그 자체이다.” 짧은 얘기지만, 그가 배뱅이굿 명창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 공연 전 분장실에서 다정스런 모습을 보인 스승 이은관, 제자 박준영 명창     © 김영조

차가운 겨울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인천 계양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준영 명창의 ‘배뱅이굿 그리고 서도소리’ 공연은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단 한 대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뼉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 명창의 배뱅이굿이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리가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겨레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할 매력 넘치는 국악임을 실감했다. 작은 배뱅이 박영준 명창은 큰 배뱅이를 향해 이제 슬슬 껍질을 깨고 있었다. 그 박영준의 공연은 끝났지만 음반으로 그의 배뱅이굿은 곁에 두고 계속 즐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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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15 [17: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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