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명성황후' 능가 토종뮤지컬, '추풍감별곡'에 반하다
[공연감상기] 창작서도연희극 '추풍감별곡', 조선후기 無名 애정소설 각색
 
김영조   기사입력  2009/12/09 [16:10]
▲ “추풍감별곡” 중 채봉과 강필성이 그리움의 노래를 부른다.     © 김백광
 

“네 칠자나 내 팔자나 둥둥 떴는 부평초
물에 뜨긴 마찬가지 신세 초라한 개구리밥
7년 대한 가뭄 날에 피죽 끓여라 피사리풀
보릿고개 넘기라고 지천에 깔린 복사풀
장마 통에 손님 왔다 장닭 잡아라. 닭의장풀
갈 때까지 가보자고 억지 쓰는 갈대풀” 

위는 “잡풀타령”의 가사로 새롭게 창작된 배꼽 잡게 하는 서도민요이다.

뮤지컬(musical)은 음악, 노래, 춤, 그리고 대화를 접목시킨 극의 한 종류를 말한다. 종합예술 뮤지컬은 그래서인지 요즘 인기가 한창이다. 예전 영화로 유명했던 “사운드오브뮤직”을 비롯해서 에비타, 오페라의 유령,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캣츠 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한국에서 창작된 것으로는 “명성황후”가 인기를 얻었었다. 

명성황후는 한국에서 창작된 것이기에 토종뮤지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짜 토종뮤지컬은 따로 있었다. 지난 12월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서도연희극보존회(회장 유지숙)이 주최하고 Neo Creative가 주관, 서울문화재단·한국문화재보호재단·문화재청이 후원한 창작서도연희극 “추풍감별곡”이 그것이다.

▲ “추풍감별곡” 중 익살스러운 장면이 종종 나온다.     © 김백광

이날의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은 “채봉감별곡”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조선 후기 순조∼철종 연간의 작품일 것으로 보는, 지은이를 모르는 애정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로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고, 아버지를 효성을 받드는 한 여성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이다. 내용 중에 채봉이 지어 부르는 가사체(歌辭體)의 “추풍감별곡”이 있으며, 같은 이름의 서도소리도 있다. 

서도연희극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유지숙 명창은 이 추풍감별곡을 무대에 올리고 토종뮤지컬로 만들었다. 유 명창은 말한다. “서도소리는 그동안 경기소리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이 서도소리를 대중이 좋아하는 소리로 탈바꿈하려면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정서도 살리고 재미도 한껏 더한 뮤지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추풍감별곡은 먼저 관산융마(關山戎馬)로 시작한다. 원래 관산융마는 정가 가곡에서 자주 부르는 대목이지만 여기 무대에 올려진 관산융마는 가곡과 달리 장단이 없는 것으로 기품있는 서도잡가이다. 그러면서 이후 전통 서도소리와 창작 서도소리를 7:3 정도로 안배하여 풀어낸다. 이 소리극 중 10곡의 창작곡 곧 사랑가, 채봉가, 잡풀타령, 신추풍감별곡 등은 이상균 대불대 교수가 직접 작사작곡한 것으로 이날 청중들의 큰 호응과 사랑을 받았다. 

▲ “추풍감별곡” 중 채봉의 딱한 사정을 들은 평양감사가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 김백광

공연은 그냥 소리로 표현했을 때보다도 연극적인 요소와 춤을 한데 어우러져 재미를 한껏 더했다. 그리고 무대장치에도 신경을 써 무대의 뒤편에 반투명의 막(샤막)을 설치하여 특수효과를 나타낸 것도 볼만했다. 특히 중간에는 화려한 전통춤 검무를 보여주고, 끝 부분에는 풍물굿을 등장시켜 다양한 장르의 종합을 시도해 큰 손뼉을 받았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 서도소리를 모두 등장시켜 한바탕 마당을 만들어냄으로써 청중들이 흥겨운 느낌으로 돌아가도록 한 것도 칭찬받을 만했다.

이런 연희극은 참으로 어려운 시도이다. 서도연희극보존회는 2000년 초부터 연희극 창작을 시도하였고, 2002년부터 항두계놀이를 무대에 올려 상당한 호평을 받아왔었다. 또 그 항두계놀이는 올해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받았다. 그 노력이 이제 추풍감별곡으로 한층 성장하여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청중 가운데 온갖 뮤지컬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섭렵했다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그 어떤 뮤지컬보다도 더 재미있게 봤다. 이런 수준이라면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라며 극찬한다. 

또 인천 이정림 영종도서관장은 “서도소리극이 이 정도로 훌륭할 줄은 몰랐다. 이 추풍감별곡을 보고 어느 누구도 우리 전통이 고리타분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 “추풍감별곡” 중 청아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소리하는 유지숙 명창     © 김영조

이 자리엔 특별히 한국에 유학온 학생들이 있었다, 상명대 대학원 한국어교육과 석사과정의 왕아남, 만리 두 사람은 “사설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국 토종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재미있었다. 또 기회가 있으면 꼭 보고 싶다.”라고 즐거워했다. 

2009년 기축년이 저물어가는 한 겨울날, 우리 전통 공연에 모쪼록 청중이 몰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리고 토종뮤지컬 “추풍감별곡”에 반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12/09 [16:1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