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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정치개혁은 새로운 표준의 제시
격정의 시대에서 소통으로, 신당은 정치의 새로운 운영체제
 
늦깍이   기사입력  2003/10/13 [19:52]

본문은 현재 급변하고 있는 한국 정치지형에서 새로운 정당의 이념형을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앞으로 4부에 걸쳐 한국 정치의 역사적 특성과 현재적 의의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정당구조의 형성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

1. 한국정치, 영웅의 시대가 저물다(지난호)
2. 한국사회, 낭만의 시대가 지다(지난호)
3. 한국, 격정의 시대 가고 소통의 시대 열리다(지난호)
4. 신당은 WINDOWS 3.1이어야 한다(이번호)



신당은 WINDOWS 3.1 이어야 한다.

 
국민들의 오랜 바램에 드디어 정치권이 신당으로 응답했다. DOS기반이라는 제약에서 어설프게 맥킨토시의 그림운영체제를 모방한 WINDOWS 3.1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윈도즈 3.1은 툭하면 충돌일으키고 다운되곤 했다. 그래서 여전히 애플컴퓨터의 맥킨토시 사용자들로부터 조롱받았다. 하지만 도스에 덧붙이기만 하는 장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모든 피시에 깔려 나갔고 최종적으로 도스기반과 전혀 별개인 윈도즈 95시대를 여는 징검다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디지탈 시대에는 몇십년에 축적된 감각과 손기술이 무의미하다. 표준을 쥐는 쪽,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늦지 않게 쫓아갈 수 있는 쪽이 이긴다.

한국정치에 처음으로 충격파를 던진 신당, 그것은 새로운 운영체계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갖고 있다. 신당이 지금 다만 40 명 남짓의 국회의원 국회라는 정치 마켓의 15 % 정도의 쉐어를 갖고 있다. 시시한가? 아니다. 그정도면 양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출발이다. 양보다도 질에서 신당은 더욱 주목된다. 신당은 낡은 정치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제약없이 모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신당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다른 정치 세력도 흉내라도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구정치 세력들은 그들의 몸짓과 문화는 이미 너무 낡아서, 어떤 새로운 시도도 끊임없는 당내분란과 분파주의를 양산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할수록, 그들의 낡은 폐부를 드러내면서 국민들로부터 더더욱 혐오받을 수 밖에 없다.
 
정치에서의 격변은 이제 다시금 국민들의 저변으로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국민들이 이 충격파를 감내해주고 즐겁게 파워유저(power-user)가 되어야만 정치가 최종적으로 windows 95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초기단계의 소프트웨어는 파워유저에 성패가 달려있다. 국민들이 신당에 호응하는 키워드는 이미 지겹도록 언급한데로 '소통'이다. 당원으로서 아무런 소통도 없이 그저 정당을 친목회 쯤 여기다가 선거때면 한몫 잡는 기회를 노린다면, 정치 실험은 실패한다. 소통은 비단 정당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권전체와 국민들은 정말 냉랭한 관계이어야 한다. 정치인의 무능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지역구의 경조사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온정적 관계는 해체되어야 한다. 정치인의 부정비리를 비난하면서도 경조사에 돈안냈다고 또는 적게 냈다고 불평해서도 안된다.

정치는 그 사회의 총체적인 역량의 반영일 뿐이다.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성숙 없이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나라는 없었다. 민주화의 진척으로 이제 쿠데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도저히 낡은 정치구도를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나아가 이제 사회의 각곳에서도 반민주적인 행태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비로서 패거리들이 감춰놓은 모든 미시적 공간들이 투명해지기를 요구한다. 사회가 투명해야 우리는 소통에 필요한 기본 정보들을 얻는다. 과연 누가 얼마만큼 이익을 얻고 있고 그것이 얼마만큼 납득할 수 있는지를 따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과연 자신의 몫은 정당한지 아닌지 주장할 수 있다. 소통의 기본 전제가 갖추어 진다면, 끈질기고 집요하게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이 미덕이 된다.
 
신당이 어머어마한 소통의 기적을 당장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바보다. 신당은 32비트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DOS 16비트의 제약에서 어설프게 32비트를 에뮬레이션(emulation) 하는 것이다. 신당도 제대로 된 32bit OS (운영체제)는 아니다. 그들도 결국은 도스와 함께 성장한 사람들이다. 영웅들의 휘호하에 편하게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들도 32bit 운영체제는 생소하다. 얼떨결에 이게 살길인가 보다하고 생존감각을 앞세워 따라나선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다가 신당이 자기 밥그릇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악담을 늘어놓고 떠날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남들이 월급쟁이 하기 싫다고 프리랜서로 나서니까, 자기도 유행처럼 따라 나선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프리랜서, 보기는 좋지만 능력없으면 백수되는 것 한 순간이다.

기존의 패거리가 싫다고 새 길을 나섰지만 능력이 없다면 또는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평가해주는 국민을 만나는 운이 없으면, 그만 화려한 의정활동은 영영 이별이다. 그럴 때즘이면, 보스한테만 잘 보이면 되는 낡은 정치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존 정치의 조폭시스템이 싫다고 나섰지만, 신당에 참여한 그들이 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결정된 의사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배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의견이랑 수틀린다고 또 당을 만드니, 아니면 당내 당을 만드니 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당의 조직적 뿌리가 확실하지 못하고 국민들과의 결합도가 낮은 상태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리더그룹을 중심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까? 혹은 당원들의 존경을 받고 당을 포용할 리더그룹이 생기기는 할까? 수평적인 문화가 지나쳐 그저 나만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역으로 이런 온갖 고민과 불안함에서 출발하는 것, 그것이 신당의 가장 큰 자산이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교섭단체라도 만들 수 있는 한국정당들에서 이런 고민이 있기라도 했나? 대중적 카리스마나 엄청난 돈, 아니면 국가기구를 동원한 폭력을 갖고 있는 영웅만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태생이 조폭조직인데, 조폭조직 그 자체를 해체하지 않고 어떻게 바른 생활의 길로 갈 수 있나? 신당의 고민은 손을 씻은 조폭조직원들의 그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 생활로 또 빠진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정말 이를 앙다물어야 할 것이다. 조폭출신이 혹시라도 잘나갔던 과거를 그리워한다면 그래서 지금의 곤궁함을 원망한다면 더 희망은 없다.

신당의 구성원들이 혹시라도 국회의원직에 연연해 공천에 목숨을 거는 치졸함이 되풀이 된다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신당을 만든 순간, 국회의원임을 잊어야 한다. 자신이 심지어는 다음 총선에서 당 (정확하게는 당원)의 공천도 못받을 수 있다는 원칙적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 국회의원일지언정, 결국 당의 결정에 복종해야 하는 당원일 뿐이다. 당원들이 다른 사람을 후보로 내세우는 결정을 내린다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말할 것 없고 당도 위험하다. 너죽고 나죽자 하면서 달려들 요량이면 아예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신당을 살리는 정신은 <자랑스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당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공천과 선거는 당원 들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엄청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때 신당이 산다. 
 
신당의 국회의원들이나 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는 당원이 정치자금이나 중요한 도덕적 문제에서 하자가 없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워낙 한국정치가 개판이다보니, 너무나 당연한 자질들이 마치 대단한 성취인 것처럼 찬양됐다. 정작 국회의원 또는 신당의 리더들에게는 국제사회의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뛰어난 자질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저 지역구의 대소사나 쫓아다니면서 정책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다가, 카메라가 비치고 기자가 받아적는 곳에서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신당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더이상 내용없이 격정에 넘치는 국회의원들의 설자리는 없다. 말도 안되는 타당의 공격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인 내용으로 받아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삿대질하고 머리채 당기고 멱살 잡는 국회의원들은 우리에게도 가관이지만, 해외방송에 보도되면 나라 망신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내용이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만 높인다. 소위 민주정치의 역사가 오랜 나라들에서 그런 모습이 노출되나? 그런 나라일수록 국회의원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격무에 시달린다. 리더가 되는 만큼이나 그 막강한 책임을 감수한다. 그게 싫으면 아예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진정 열과 성을 다한다면, 정책개발을 위한 인적 또는 금전적 지원을 지금보다 늘려도 된다. 다만 지금은 밑빠진 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국민 누구도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글자그대로 신당의 의미에선  타당하고만 싸우거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당원 모두가 서로 선의의 경쟁상대이다. 공천을 받고 싶으면 먼저 당원들에게서 능력을 인정받아라. 보스에 줄서기 경쟁은 없다. 믿을 건 오직 자신의 능력과 헌신 뿐이다.  
 
▲한국은 신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www.eparty.or.kr
한국은 신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한국 정치, 대부분은 아직도 DOS다. 국회가 도스고, 정당의 상부구조와 하부조직 모두 도스다. 자기가 확보했다고 믿는 지역구도를 움켜지고 지역구도없이 출범한 신당을 따돌림하려는 것은 기본전략이고, 국회내에서 신당을 따돌리고 또 노무현을 고립시키기 위해 온갖 잔수를 쓴다. 그런 조폭적 패러다임에는 도사인 사람들이 많다. 오래된 노래, 내각제를 역시나 흘리고 수구세력들이 모여 전국정당을 하자는 제안도 여기저기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필요에 따라 뒷조사, 협박 뭐든지 주저안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당이 나서면 그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익숙한 DOS라는 기득권을 포기할 수도 없지만, DOS에 머물다가 망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되고 초조하기도 하다. 신당이 늠름하게 정책정당으로 면모를 갖춘다고 할 때, 그들도 사람인 이상 고성/멱살잡이가 창피하다는 것 안다. 이전에 너나나나 할 것 없이 그랬지만, 인제는 확실히 안그런 집단이 있으면 대조되기 마련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름대로는 적어도 카메라에 비치는 수준에서는 정책에 대해 고민하는 흉내라도 낼려고 애쓸 것이다. 신당이 자기돈 내고 필요하면 열성적으로 선거캠페인에 참가하는 당원들을 확보하면, 바람몰이는 둘째치고 도대체 원가 경쟁이 안된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신당과의 어떤 금전적 유착관계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설프게 돈모으고 돈쓸려고 했다가는 당선되도 얼마못가 하차한다. 자기들도 어느정도라도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신당이 정치에서 높은 원가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게임은 쉬울 수 있다. 이런 원가경쟁력에 맞붙기 위해서는 개혁하든가 퇴장하든가의 양자에 몰릴 수 있다. 앞선 기술 또는 앞선 원가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 다른 기업들은 뼈를 깎는 혁신을 하던가 아니면 퇴장해야한다. 비록 신당이 아직 소수일지라도 신당이 한국정치를 바꾸는 돌풍의 핵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국민, 아직은 형광등이다. 더 정확하게는 새 정치판을 두려워 한다. 그토록 정치판을 비판해왔지만, 그들도 집단적인 공범이다. 음흉하게 서로의 출신지역을 확인하고 이심전심의 공감대를 확인해왔던 사람들이다. 꼭 말로는 안하더라도 서로 뻔히 아는 투표를 하고 동질감을 느껴왔다. 이제 정말 고민될 수 밖에 없다. 옛날처럼 투표하자니 이미 낡은 것에 손을 더럽히는 것 같고, 새로운 당에 투표하자니 과연 그래서 어떤 보상이 있을지 미지수다. 자칫, 그동안 소중히 다져온 투표 공동체가 깨질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고작 몇 퍼센트 상승에 그쳤지만, 노무현을 놓고 영남사람들이 얼마나 고민되었나? 너희들이 뭉치니까 우리들도 뭉친다는 청소년기 패거리 수준의 투표의식도 이제는 목표를 상실해가고 흔들리지만, 그 대안이 신당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며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어떤 투표를 할 것인가도 미지수이지만, 보다 확실하게 신당의 경쟁력의 원천인 정당에의 참여도 아직은 미지수이다. 신당과 이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슷한 개혁당이 창당되어서 정당자체에서 확보한 정치자금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좋은 정치상품을 원하는 수요도 있지만, 또 직접 공급자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또한 긍정적인 조짐이다. 그러나 개혁당이 애당초 목표했던 10만명에는 많이 못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로부터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벗어나 깨끗한 정치를 하려면, 열성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정치에 당하고 실망만 했던 그래서 비관적이기만 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아직은 모른다. 과연 정치가 문제라서 참여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참여가 부족해서 정치판이 그꼴이었는지. 그래도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대선시기에 개혁당과 노사모를 통한 결집은 깨끗한 정치에 대한 염원이 존재하고, 제대로 된 정치상품만 있다면 충분히 참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작년 대선에서 뜨거운 정치 열기를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결코 현역 정치인들이 신당이라는 모험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가 신당의 존재이유이며 그 경쟁력의 요체이다. 
 
구정치 세력들에게 신당이 위협적인 것은 지금 신당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숫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새로운 표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당이 표준이 아니라면 지역구도가 표준인 현재 정치판에서 신당국회의원들이 아무리 많아야, 총선 거치면 쉽게 찌그러질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표준은 지금은 비록 적은 비중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 따라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신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참여자들을 믿어서, 또는 이념적으로 동일해서도 아니다. 몇 십년간 계속되온 한국정치의 표준이었던 소수영웅들과 그 친위대 체계와는 전혀 다른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은 미흡할지언정 도약의 가능성이 있는 표준이기 때문이다.

지금 4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시장을 제패한 windows 3.1도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지금정도의 세라면 새로운 표준이 시장에서 쉽게 밀리거나 무관심속에 방치되지 않을 정도는 된다. windows 3.1을 처음 쓸때 얼마나 신비로왔나? 사람들이 기웃거리다가 반한다. 급기야는 비싼 돈을 들여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아예 사버린다. windows 3.1 덕택에 386 이어 486 컴퓨터 정말 많이 팔렸다. 새 표준에 미치면, 돈은 차후 문제다. 노무현에 미친 작년 대선도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windows 3.1은 자신 뿐 아니라 전체의 컴퓨터 관련 하드웨어 산업에 새로운 혈액을 공급했다.

신당도 그럴 수 있다. 시작 조건이 너무 좋으면 좋았지, 초라하지 않다. 일찌기 한국 정치에서 어떤 정치적 보스도 확실한 자금줄도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집된 적은 없었다. 물론 거져되는 것은 없다. 도스 이후의 OS를 노린 많은 표준들이 경쟁했지만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OS 와 다른점은, windows 3.1이 도스와의 전적인 단절이 아니라 업그레이드였기 때문이다. 신당도 전혀 새로운 인물들은 아니다. 과거의 정치체제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허물도 있겠지만, 그들의 연륜이 주는 신뢰가 있고 정치 소비자들이 그들을 친숙하게 여긴다. 그래서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을 수 있을 지 결정되는 초기에 유의미한 영향력으로 진입한 한국 정치 최초의 표준이다. 신당이 정진해서 도스표준을 완전한 윈도즈표준으로 전환시켜줄 것을 염원한다.
 
이념이 한국정치의 핵심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당과 관련해 그것은 급한 문제가 아니다. 신당의 이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신당이 이념이 제대로 소통될 정치의 플랫포옴 또는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소통이 가능한 운영체제가 만들어진다면, 그 위를 다양한 이념을 갖는 정당들이 활보할 것이다. 운영체제가 도스라면, 윈도즈를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오피스를 쓸 것인지, 한글사의 워디안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우리가 윈도즈용 소프트웨어들이 갖는 유용함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최소한 윈도즈 3.1을 깔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컴퓨터 자체도 갈아야 한다.

노무현대통령 당선의 일차적 의의는 중앙정부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또는 그 권력에 대한 개념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덜 급한 문제이다. 우리에게는 중앙권력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이다. 그런면에서 노무현은 한 정파의 대표 또는 하나의 응용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새로운 운영체제 그 자체인 것이다.

신당도 국회라는 대의기구를 낡은 DOS 운영체계를 허물기 위한 운영체제로 그 의의를 갖는다. 신당의 성공은 한 정파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대변혁인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과 신당이 갖는 보편성이 있으며 우리가 주목하고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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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13 [19:5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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