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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연극은 마케팅도 남다르다
[컬처뉴스의 눈] 언론이 거들고 외설논란 스스로 부추기는 연극 <졸업>
 
김소연   기사입력  2007/02/13 [10:56]
... '사랑의 포로'가 되어 떨리는 손으로 무르익은 육덕을 가진 중년여인의 드레스를 벗긴다. 이어 눈부신 알몸이 드러난다. 알몸이 된 그들의 정사도 숨이 멎을 만큼 사실적이다.

...유혹이 시작됐다. 음악이 꺼진 객석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어쩔줄 몰라하는 사이 잠시 욕실로 몸을 감춘 ... 이번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상태. 관객들은 숨을 멈췄다. ... 초반 전라신에 이어 호텔 침실 위에서 벌어진 정사신까지 실감나게 표현했다. 곧이어 등장한 스트립댄서 역시 강도 높은 노출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혼을 빼놨다.

'무르익은 육덕', '눈부신 알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 '숨이 멎을 만큼 사실적'인 정사신. 대체 뭘 가지고 어디에 저렇게 써있는 글이냐고?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졸업>을 소개하는 <스포츠칸>과 <스포츠조선> 2월 7일자 기사이다.

비단 이 두 신문만이 아니다. 연극 <졸업> 개막을 전후해 쏟아져 나온 기사들은 김지숙의 '파격노출'과 '실감나는 정사신'에 초점을 맞추어 마치 선정성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 하다. "김지숙 50대 맞아? 파격노출 화제" 등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지퍼 내린 김지숙", "김지숙 '쉰 살의 무대 기쁘게 모두 벗었어요'". 한 신문은 20년전 김지숙이 모델로 선 누드사진를 게재한 "'졸업' 김지숙, 20년 세월도 거스른 몸매 공개"라는 기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마치 옐로우페이퍼의 에로 여배우 기사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자극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경쟁적인 표현들을 걷어내고 보면 기사들은 찍어낸 듯 똑같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침 삼키는 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은지 온갖 표현을 동원하여 공연을 묘사해 놓고 '외설논란을 잠재우는 뛰어난 연기'로 마무리된다.

관음증적인 시선을 부추기고 짐짓 점잔을 빼는 한국언론의 뻔한 선정주의로 보자면 이런 식의 기사들이 낯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극을 표방한 연극에 대해 이렇게 대놓고 관음증을 부추기는 것은 이례적이다 할 만하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기획사 제작사가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문화면 기사들이 적지않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여러 용례의 기사문으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리기도 한다. 뉴스가 필요한 언론사와 홍보지면이 필요한 기획사의 공생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공연예술 전문기자가 드문 언론계 현실에서 친절하게 화제를 만들어주는 이런 류의 보도자료들은 언론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렇게 한 방향으로 초점이 몰린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기획 제작사의 이해가 그대로 관철된 것일 게다. 이 정도의 지면은 부지런한 기획자가 발품 팔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작품성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면을 장악하는 이러한 힘도 '블록버스터 연극'의 힘인 것이다.
 

▲ 연극 <졸업> 개막을 전후로 김지숙의 노출과 정사장면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 포털사이트 캡쳐화면

사실 처음부터 연극 <졸업>이 노출에 초점을 두고 외설논란을 부추기는 홍보전략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소개될 때 연극 <졸업>은 상당히 품위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화를 연극으로 본다거나, '뮤지컬보다 아름다운'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악을 내세우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기사들을 인용하며 이 연극에 대한 찬사와 흥행성적을 전했었다. 물론 섹시코드를 노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작비 4억을 유난히 강조하며 '연극에도 블록버스터가 있다'를 내세울 때는 세련된 명품 연극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막상 개막이 다가오자 김지숙을 앞세워 노골적인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와는 또 다르게 이 작품은 쇼노트와 CJ엔터테인먼트 두 제작자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되었다. 각각 뮤지컬 등 엔터테인먼트 기획 제작에 강한 이 두 제작사가 연극 제작에 직접 참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소극장 공연을 훌쩍 넘는 제작비에서부터 유난히 기존 공연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듯이 연극제작에 유입된 새로운 자본이 시장에서 어떠한 반응을 이끌어낼지도 관심사였던 것이다.

아직 결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급작스레 노골적인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현재 흥행작을 선택한 이들의 시도가 시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의 인지도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흥행성적이 그대로 티켓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온 것이 '벗는다'라는 노출 홍보가 아닐까. 아니면 '블록버스터 연극'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준비된 홍보전략인가.

아무튼 언론이 전하는 연극 <졸업>의 초반 흥행은 성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보도 역시 기획 제작사의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닌지.) 더불어 '블록버스터 연극'의 차별화 전략 또한 성공한 듯 보인다. 연극을 가지고도 노골적인 선정적 홍보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또한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명품 포즈를 제하고 보면 90년대 '대학로 정화운동'까지 만들어냈던 '벗기기 연극'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 물론 당시 '벗기기 연극'을 전하는 기사들은 짐짓 도덕적 논조를 가지고 있었으니 연극 <졸업>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명품 포즈와 노골적인 선정성. 이 두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내세우는 연극 <졸업>. 블록버스터 연극은 마케팅도 남다르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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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13 [10: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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