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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언론 보다 더한 청와대 '포스코사태' 논평
[시민논단] 노동자들은 벼랑끝으로 몬 참여정부의 야멸차고 혹독한 논평
 
예외석   기사입력  2006/08/01 [15:31]
번지수를 잘못 찾은 논평 
 
얼마 전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한 건설노조의 투쟁을 두고 사회 각계에서 다투어 논평을 내고 있다. 그들이 평소에 어떤 조건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생활 해 오고 있었는지는 관심 조차도 없다. 그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여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자들이 저항만 하면 비난의 화살은 천편일률적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 몇 군데에서 마치 판박이처럼 틀에 맞추어진 논평과 기사가 나왔지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그런 종류의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노동운동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제목으로 나온 청와대 브리핑을 보면 청와대에서 그렇게 경멸하고 싫어하는 보수언론 보다도 더 야멸차고 혹독하게 비평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운동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옳다는 독선과 특권의식에 빠진 건 아닌지 묻고 있었다. 지금은 합법적 수단과 대화의 장이 열려 있기 때문에 지난날 독재정권에 저항하였던 민주화 투쟁이나 노동운동 행위와는 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이 더 지독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합법적 수단과 대화의 장이 열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이나 고용구조가 특이한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아직까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이 합법적인 수단이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몰라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해도 대화가 통하질 않고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도 눈 앞의 현실은 절망 밖에는 없기에 마지막 몸부림을 친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지금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 해 댄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논평에서 포스코라는 업체명만 언급이 되었지 건설 노동자들이 왜 저항의 몸부림을 친 것인지 그 내용은 찾아볼 수 없어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또 논평 하단부에서 일부 대기업 노조들의 조직이기주의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하다는 내용을 언급하였으나 이 또한 현재의 노동운동의 정체성이 훼손된 책임소재를 오로지 노동 단체들에게만 돌리는 무책임한 내용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파업행위가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역 주민과 국민경제 등엔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고 하였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나 영세하청 노동자들에게 노동귀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알량한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 꺼풀만 벗겨보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의 밥그릇에 집착하고 매달리는지는 오히려 정부나 재계에서 더 잘 알 것이다. 과연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오늘날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사회적 연대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데 힘을 합치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정부와 기업주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을 그렇게 만든 주 원인은 바로 정부와 기업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들도 언제 잘릴 것인지 알지 못하는 불안 속에서 비정규직이나 영세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는 노력에 힘을 기울인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흉내만 낼 뿐인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 등 노동자의 생존을 벼랑끝에 몰아놓은 정부가 '노동운동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할 수 있을까? 정말 수구언론 보다 더 야멸차고 혹독하다.     © 청와대브리핑 7월 26일자
 
그런 사실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인 청와대에서 브리핑이랍시고 내어 놓은 것이 겨우 노동자들을 꾸짖는 내용들로만 작성이 되어 있다. 그것도 역대 정권 중 운동가들이 가장 많이 진입하였다는 현 정권에서 말이다.
 
“아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글줄이나 알고 언변께나 있다는 사회 활동가들이 정치권에 진입하여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 글줄이나 언변을 오히려 무기로 둔갑시켜 말을 교묘히 꼬아 놓은 논평이나 해 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노동운동의 각성을 촉구하고 노동자와 사회전체를 위하는 공익의 광장으로 나오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노동운동이 왜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인지를 정부에서 같이 고민해야 할 몫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가 남이가?” 그 정부 안에는 지난날 무수히 피 흘리며 투쟁해 왔던 활동가들도 상당수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은가. 또한 그들은 보호하고 대변해주던 인권 변호사들도 있질 않은가. 기업총수에게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던 그 패기와 열정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말 마음이 아프다.
 
* 필자는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입니다.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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