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독일어 몰라도 O K!, 사람사는 세상은 '통'한다
[민족예술공연단 공연 동행 취재기 2] 독일 함부르크 교민집 민박이야기
 
김영조   기사입력  2006/06/14 [23:00]
독일어 문맹자, 독일인과 새벽 4시까지 술마신 사연
 
내가 쉽게 외국 여행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기회는 다가왔다. 그것은 월드컵 지원 공연을 따라 독일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중 나를 더욱 흥분하게 만든 것은 교민 집에서의 민박이었다. 베를린에서는 따분한 호텔방 신세였지만 함부르크에서는 함부르크한인교회의 배려에 따라 민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연단의 주축인 (사)‘전통예술단 영산’의 책임자인 이거희 사무국장, 영상 책임자로 같이 온 비플러스 정성훈 대표와 같이 한 집에 묵기로 했다. 민박집은 교민 김옥화 씨가 남편인 토마스 마이어폰 데어트베어 씨, 그리고 딸 내외와 함께 사는 함부르크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작은 마을에 있었다.
 
▲민박을 했던 김옥화씨 집의 아름다운 모습     © 김영조
 
집에 도착하자 데어트베어 씨는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의료기구 사업을 하는 사업가라고 하며, 독일 맥주를 내놓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한다. 독일어를 모르는 우리에게 간간이 쉬운 영어로 말을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또 그가 아끼는 쿠바산 시가를 내놓고 권한다. 시가 보관함은 온도, 습도까지 맞춰주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었으며, 2년 된 시가는 보송보송했는데 그의 고급취미라고 했다.
 
그는 우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한국 노래를 안다며 자랑한다. 그러자 옥화씨는 “자기가 아는 노래는 ‘산토끼 토끼야!’ 정도이고, ‘사랑해 당신을’은 거기까지 밖에 모르면서 자랑한다.”라며, 핀잔을 준다. 거실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가리키며 ‘할할아버지’라고 하여 웃었는데 증조할아버지가 발음하기 어려우니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거실은 비교적 큰 공간과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는 큰 공간을 ‘여자들이 수다떠는 방’, 작은 공간을 ‘남자들이 담배피는 방’이라고 소개한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김옥화, 토마스 마이어폰 데어트베어 씨 부부  © 김영조
 
나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김옥화 씨는 1960년대 독일로 간호사를 보낼 때 왔다가 그를 만나 그곳에 정착했다고 털어놓으며, 회상한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독일어가 잘 늘지 않았어요. 그러자 동료 독일인 간호사(나중 시어머니)가 독일말을 잘하려면 독일인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독일인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이 없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차라리 자기 집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료의 집에 갔더니 마침 동료의 아들이 와 있었지 않겠어요.”
 
그 뒤 어쩌다 집에 들렸다는 그 아들 즉, 데어트베어 씨는 수시로 어머니 집에 들렸고, 퇴근 때 집에 바래다주며 접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독일 남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그녀도 점점 맘을 열었고 그 뒤로 30년 결혼 생활이라고 고백한다.

▲김옥화씨 집에서의 독일식 식사 차림(식빵, 햄과 치즈, 커피와 쥬스)     © 김영조
그날 밤 잠을 잔 뒤 아침에 마을 산책을 했다. 괴기할 정도로 고요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마을은 지극히 평온하고, 아름답다. 아침밥은 독일식이다. 햄과 치즈가 별로인 나는 주로 구운 식빵을 햄이나 치즈를 넣지 않은 채, 버터나 쨈을 발라먹고, 커피를 마셨다.
 
딸이 ‘독일에 가면 독일식 식사를 꼭 해보고 오라고 했는데 이거 내가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치즈 쪽으론 손이 가지 않는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버터 바른 독일 식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으니 봐주지 않을까? 식사 도중 들리는 잔잔한 서양 고전음악은 저절로 소화가 되게 한다.
 
다음날 다른 공연진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나는 부부의 배려로 함부르크 도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데어트베어 씨가 운전을 하면서 상세한 설명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 옥화 씨는 통역을 하기에 무척이나 바쁘다. 그들은 민박만이 아닌 여행가이드라는 또 다른 구실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벤츠에 높은 임금을 받는 비싼 택시운전사를 고용한 느낌이 어떠냐?’라고 농담을 던진다.
 
옥화 씨의 차는 독일산 벤츠를 타고, 데어트베어 씨의 차는 스웨덴제 사브(SAAB)이다. 그는 “늙은 남자(자신)는 고물차를 타고, 젊은 여자(부인)는 새차를 탄다.”라며 웃는다. 독일을 사랑하면서 왜 스웨덴 차를 타느냐고 물었다.
 
▲함부르크 여행 도중 김옥화시 부부가 지은 뒤 300년이 넘은 한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다.     © 김영조
 
“‘사브’는 처음으로 실린더가 8개가 아닌 4개로 만들어 원가절감을 한 가격 대 성능 비가 뛰어난 차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언젠가 청바지 차림으로 벤츠회사에 간 적이 있는데 청바지 차림이라며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어찌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합니까?. 그런 처사에 실망을 하고 그 뒤부터 사브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뿐이 아니다. 현관문 앞에는 오래되어 녹이 슨 등이 하나가 있는데 굳이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으며, 더블베이스, 피아노, 트럼펫, 트럼본 등의 연주를 즐기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음향기기는 20년 전에 나온 저가의 한국산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거실도 전혀 꾸민 흔적이 없다. 그저 편하게 살뿐이다.
 
중산층 이상은 될 텐데 남에게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소박한 김옥화씨 집 거실의 일부(더블베이스, 피아노, 안 보이는 오른쪽엔 트럼펫과 트럼본이 있고, 오른쪽 앞엔 20년 된 낡은 저가의 오디오가 보인다.-상표는 한국산 \"GOLD STAR\")     © 김영조
 
그들은 유명한 독일의 아우토반을 시속 200킬로미터로 거침없이 달린다. 교회에서 집까지 기차로 가면 1시간이지만 자동차로 가면 30분밖에 안 걸린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일반도로에서 앞차가 40킬로미터의 저속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데도 웃으면서 ‘레이디 스타일이다.’라며, 전혀 경적도 울리지 않고, 절대 무리한 추월도 하지 않는다. 한적한 교외에서도 신호는 절대 지켰으며, 정지선도 벗어나지 않았다.
 
함부르크한인교회에서 공연이 끝나고 여자들의 민박집에 가서 뒤풀이를 한 뒤, 옥화 씨가 집에 전화를 건다. 그러자 남편이 맥주를 차갑게 해놓았다고 빨리 오라고 성화다. 가니까 역시 무척 기다린 눈치로 맥주, 와인, 진 칵테일 중에서 무얼 마실 거냐고 묻는다. 자정부터 새벽 두 시까지 우리의 적당한 취중진담은 끝이 없다.
 
두 시가 되자 데어트베어 씨는 젊은 두 분은 가서 주무시고, 나이 든 사람끼리 한잔 더 하자고 한다. 이거희 국장과 정성훈 대표는 40대이고, 데어트베어 씨와 나는 50대여서 한 말이다. 영어로의 의사소통도 제일 취약한 나와 오히려 더 배짱이 맞는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이를 같이 들어가는 동년배의 심사가 작동한 것인가? 

▲김옥화씨 집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     © 김영조

▲김옥화씨 집 정원에 있는 앙증맞은 호수     © 김영조

이후 나는 문장도 안 되는 떠듬거리는 영어로, 손짓으로 그의 배려에 의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는 자녀가 혼혈인 것에 대한 말도 빼놓지 않는다.
 
“딸은 문제가 없었지만(사실은 봐준 것 같다.), 아들은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고생했지요. ‘내 머리가 노라면 어떨까?’, ‘눈이 더 동그라면 어떨까?’ 등의 고민을 한 아들이 가끔 말을 안 들어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극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시할아버지와 손자며느리에 대한 일화도 들려 주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엄격한 분으로 점심을 1시에 드셨는데 1분 전도 아니고, 1분 뒤도 아닌 정각에 먹어야 하는 분이셨지요. 하지만, 손자가 결혼한 뒤 그분은 손자며느리가 ‘아직 덜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하면 ‘응’하며 기다리는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손자며느리를 사랑하셨고, 300년 동안 전해진 집안의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손자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독일식 맥주를 투박하고 무거운 독일식 잔에 나눠 마시는 사람들(왼쪽부터 이거희, 정성훈, 김영조, 데어트베어)     © 김옥화
 
그 이야기를 한 데어트베어 씨는 잠시 주방에 갔다 나온다.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쓰시던 잔이라면서 무겁고 투박한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내게 마시라고 한다.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데어트베어 씨가 내게 최고의 친근감을 표시하는 사건이다. 옥화 씨의 눈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자신의 고국 사람에 대해 환대를 하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벽 4시 30분이 되자 옥화 씨 눈에는 졸음이 그득하다. 결국, 우리는 독일어 문맹자가 독일인과 하는 음주행위를 접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독일 민박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옥화 씨가 준비한 밥과 온갖 한국식 반찬이 등장한다. 열무김치, 구운김, 멸치볶음 따위의 생각지도 못하던 반찬에 우리는 감격한다. 데어트베어 씨가 구워주는 식빵도 먹고, 직접 걸러주는 커피도 빼놓지 않고 마신다. 기능이 별로인 커피메이커의 관리와 청소는 데어트베어 씨 담당이라나? 토스터가 낡아 구워져도 튀어오르지 않아 불편하지만 역시 바꿀 생각이 없단다.
 
식사 뒤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옥화 씨 집에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을 고했다. 참 아쉽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 한다. 잠시 뒤 그들은 우리를 함부르크공항까지 전송하기 위해서 나왔다. 나는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겨우 인사를 하고 데어트베어 씨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그도 따뜻한 손을 같이 잡으며, 짧은 포옹을 한다.
 
▲김옥화씨 집 정원에서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다     © 정성훈
 
옆에서 지켜보던 윤인숙 민족예술단 단장은 언제 독일말을 배우고 그렇게 잘 통하느냐며 웃는다. 손짓, 발짓, 몸짓은 만국공통어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공항 입구로 들어가며, 그들과 서로 손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늘 아내를 배려하며,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던 데어트베어 씨가 눈에 어른거린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쓸 일이 없어 잊어버린 탓으로 지금 기억하는 말은 ‘Ich liebe dich(이히 리베 디히:나는 당신을 사랑해!)’ 밖에 없다. 그런 내가 생전 처음 독일인과 장시간 따뜻한 대화를 나눈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엔 사랑이면 모두 통한다는 진리를 나는 새삼 깨닫는다. 두고두고 나는 그들의 사랑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들에게 마음으로 전한다.
“Ich liebe dich”라고......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6/14 [23: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