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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범죄의 희생양, 여성 정치인
[논단] 박근혜 대표 피습은 여성에 대한 테러, 정치공학 대상 아니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6/05/31 [18:16]
 박근혜와 전여옥. 개혁을 표방한다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독자게시판에서 단골로 '씹히는' 이름들이다. 이들의 이름만 떴다 하면 게시판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뛴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정당의 성격에 걸맞게 이들은 초지일관 반개혁적 행보를 일삼아왔다. 더욱이 각각 당 대표와 전직 대변인이라는 직책은 개혁적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공격의 예봉을 피하기 어려운 자리에 있게 한다. 그것도 모자라 두 사람 중 한 명은 입까지 여간 거칠지 않아 심심하면 구설수에 오른다.
 
그런 점들이 독자들의 심기를 건드렸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넘어서는 형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박근혜와 전여옥 등은 여성 정치인의 경우 저지른 잘못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십상이라는 것과, 수치심과 모멸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모욕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잘 드러내주는 존재들일 것이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몰매는 대개 여성으로서 참기 힘든 성적인 조롱과 교묘히 포개어져 있다. 비난받을 만한 정치적 행적을 보였다고 하여 성적 모욕까지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먹혀들지 않는다.
 
 가령 박근혜 대표를 속옷만 걸친 채 침대에 누운 여자로 희화화하여 조롱하더라도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는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만 있으면 그런 건 기발한 정치 패러디로 기꺼이 용인된다. 욕먹을 짓을 했으니 성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되어도 족하다는 반여성적인 사고가 여기에 깔려 있다.

  정치적 태도에 대한 비판과, 여성이라는 성적 자질에 대한 모욕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는 것을 보면, 박근혜 대표 등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진짜 속내는 아무래도 다른 데 있는 듯하다. 이들에게서 여성이 남자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인정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평소 여자가 '설치는' 것이 싫었던 차에 약점 있는 여성을 꼬투리 삼아 여성 혐오를 마음껏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여성 혐오증이 넘치는 사회에서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은 결코 낯설거나 뜻밖의 일이 될 수 없다. 사회 불만을 약자에 대한 공격을 통해 해소하려는 건 전형적인 혐오범죄에 속한다. 이 사건의 가해자와, 박 대표를 속옷만 입은 여성으로 만들어놓고 낄낄대는 이들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피를 흘렸느냐의 여부만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심이 공격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성에 대한 테러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으며, 사람들은 박 대표가 여성으로서가 아닌 한 정당의 대표로서 봉변을 당했다고만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처럼 표 계산에만 미쳐 사건에 정치적 배후가 있는 듯이 말을 흘리거나, 한겨레처럼 보호관찰제의 피해자인 가해자가 거대야당의 대표에게 증오심을 돌렸다는 식의 저급한 사회과학적 해석을 갖다 붙이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렇다고 미치광이의 난동쯤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가해자가 하필 박 대표의 얼굴을 겨냥한 의도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왜 안면을 공격하는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말이니, 사회 활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과 같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수록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 역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기대함으로써 남자들의 보조적 위치에 여성이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이들은, 사회 불만을 엉뚱하게도 여성 탓으로 돌리는 혐오범죄의 훌륭한 토양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다면 일등공신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피 흘리는 여성이라는 불쌍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지층의 마음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다친 여성의 몸마저 선거에 동원하는 것은 이번 선거에 새롭게 등장한 전략이 되었다. 나아가 여성 몸을 희생시키는 굴욕을 대표 스스로 감당하는 우스꽝스러운 비극은,  여성 억압을 당연시하는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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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31 [18: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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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蓀님 2006/06/01 [15:33] 수정 | 삭제
  • 현장에서 박대표는 얼굴에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무식한 인간이 안면에다 뭘 갖다 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도루코 칼이라는 것으로 얼굴을 부욱 그어댔는데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면 그게 과연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한 것인지요...
    한 미친 인간이 저질런 일을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언론에서요...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