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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물대포맞고 정규직은 구경하는 세상
[시민논단] 강건너 불구경 비정규직 문제, 다음은 정규직 노동자들 차례
 
예외석   기사입력  2006/03/28 [12:57]
자랑찬 민주노조 노동자들은 어디갔나!
 
지난 일요일에는 모처럼 시골에 가서 감밭에 거름을 뿌려주고 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구수한 거름 속의 돼지, 소, 닭똥 냄새와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내음을 맡으면서 고향의 향수를 느꼈었다. 흙과 씨름하느라 하루 종일 TV 뉴스와 신문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저녁에 잠깐 인터넷을 보면서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소식을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한심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안타까운 것은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으며 싸우다 다친 노동자들의 모습이었고 한심스러운 것은 강 건너 불구경이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작태였다. 더욱이 금속노조, 금속연맹,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같은 노동계 상급단체에서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명분이 없어서 연대를 못하고 있다는 말은 같은 노동자로서 심한 분노와 함께 자괴감 마저 들었다.  
 
그렇게도 달리 표현할 어휘가 없어서 궁색하기 짝이 없는 그런 변명을 해야만 했을까. 노동자가 노동자를 격려하고 지지하는데 달리 무슨 명분이 필요하단 말인가. 한 지역의 노동계를 대표하는 단체라면 적어도 할 말 못할 말 가려가면서 신중하게 언론을 상대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무리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고 경황 중이라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공농성 돌입 이후 정규직 노조 측도 이날 “하루만은 출입을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GM대우의 취재거부에 대해 이튿날 “회사측 관계자는 사내 취재를 요청한 기자들에게 신차발표를 비롯한 경영설명회가 열리는 관계로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한데 이어서 언론사들이 들어가면 농성자들을 자극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역시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흔히 하는 지방말로 "에레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노조야, 노조야 GM대우 노조야" 그 자랑찬 민주노조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침, 저녁마다 출.퇴근 선전전을 하고 고용안정 투쟁을 하던 그 투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신차발표를 비롯한 경영설명회가 열린다고 정문을 막다니. 어쩌면 그렇게 회사측보다도 더 얄미운 것이 정규직 노조의 모습이다.
 
몇 년 전 지금 컨테이너가 놓여진 바로 그 다리 옆의 다리간에서 50여명의 노동자들이 정문 앞에서 일주일 간 농성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다. 당시에 다리간에서 텐트를 쳐놓고 주.야로 농성을 하던 노동자들은 한 때 필자와 동고동락하던 동료 노동자들이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장기간 인사명령을 받지 못하고 교육 등의 명목으로 회사 밖을 떠돌던 동료들이었다.
 
조합원에서 비조합원의 신분으로 바뀌어 멀리서나마 안타깝게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피맺힌 과거가 있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에도 노조가 있으니까 같이 싸워주겠지" 하는 소가 들어도 웃을 실날같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역시나 소 닭 쳐다보듯 정문에 한번씩 나와서 눈만 끔뻑거리며 "본사에 가서 따져야지 왜 여기 와서 생난리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한 때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걸고 76일간 투쟁해서 60여명의 동지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감격스러운 일도 있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던 대부분의 동지들은 지금 직장생활을 안정되게 잘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위해서 목숨걸고 투쟁했던 동지들은 다리간에서 목놓아 울부짖던 50여명이었다. 그들은 결국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갔다.
 
지금도 필자가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의 노조집행부가 그들을 깡통 찬 거지 취급을 하며 차갑게 냉대했던 것을 잊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밥그릇 앞에서는 노동자들끼리도 경멸하며 밀쳐낼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집행부를 몇 대째 장악하고 있어서 지역에서 제법 고참대우를 받으며 잘나가고 있다. 그런 노조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곳이 지역 노동계이니 상급단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GM대우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는 모 시민단체의 성명처럼 “자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자 정상적인 취재까지 물리력을 동원해서 방해를 하는 폐쇄적인 GM대우의 행동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 노동시장의 먹이사슬 구조가 이미 병들대로 병들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영악함과 잔인성은 그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강고한 피라밋 같았던 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찌그러진 양은냄비 신세가 되어 가고 있는데도 정작 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 또다시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구내식당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영화 '밥.꽃.양'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을 해고 시켜놓고도 그들은 뻔뻔스럽게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모습도 보였다. 노동단체와 정당에서는 그들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면서 영웅대접을 했었다. 그 단체들이 '밥.꽃.양'의 상영금지를 주도했던 기억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굴뚝 위에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을 때 그 공장 노동자들과 그 이웃한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한가로이 따뜻한 봄볕은 쬐며 오늘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어느 물 좋은 술집에 놀러갈까, 내기족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열심히 '화이팅'을 외치면서. 굴뚝 위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관심조차도 없다. 그저 맛나게 담배나 꼬실리고 있을 뿐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단다.

아, 나도 미치겠다. 진정 그대들은 누구인가?.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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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8 [12: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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