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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섭 같은 친일파들의 사고방식은 '마초이즘'
[주장] 친일파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여성주의
 
신정모라   기사입력  2006/03/06 [18:08]
 1. 마초의 '창녀론'과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은 같은 맥락
      
일제의 식민지배 합리화 논리는 역사적 사실을 자료로 해서 교묘하게 지배논리를 펴기 때문에 사실만 나열해서 반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철학을 가지고 피지배자 입장에서  일본의 일제치하 합리화 이론을 반박해야 한다. 피지배자가 빼앗겼던 기본권과 자유권을 부각시키려면 경제만능주의, 성과주의, 출세지향주의, 양육강식의 철학을 비판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 민족혼 논리로는 제국주의에 대항하지 못한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곧 제국주의의 동전의 앞뒷면이거나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철학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친일파의 '식민통치 합리화' 논리를 반박하기 어렵다.  왜냐면 마초의 관점에서는 일제의 식민통치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필연이 되어버린다. 마초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약소국이라 당했다' 고로 국제 정황상 당한 것은 필연이다. 

마초사상이 더 극단으로 치달으면, "일본이란 강대국이 한국이란 약소국을 지배했던 기간은 근대화 진행기간으로서 한국은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고로 독립운동은 폭동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기까지 한다. 강자의 약자 지배, 즉 자연스런 국제적 현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마초사상을 가진 남자나 여자가 일본 문화를 접촉한 후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상은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을 싫어하고 친일파를 증오하고 식민지 지배를 치욕으로 여기지만, 내가 일본인들을 만나봤더니 존경스럽더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만 했다. 그들의 지배가 없었다면 한국은 근대화도 못했다, 모자라는 한국인들...쯧쯧"     
 
많은 한국인들이 겉으로 드러내 놓고 표시를 못하지만 일본인의 특성을 좋아하고 때론 숭배하기도 하며, 한국인을 경멸하고들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나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일제 식민치하를 비판하는 논리는 허무할 뿐이다. 일본의 민족주의나 한국의 민족주의나 마찬가지 맥락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란 기본적으로  뿌리를 내리기가 수치스러운 사상으로서 합리성도 없고 인간에 대한 이해력도 없는 감성의 맹목적인 쏠림 증상이다. 한국의 불같은 민족주의로 어떻게 어름같이 차가운 일본 민족주의를 이길 수 있겠는가? 승패가 뻔한 싸움은 진만 빠지고 상처의 악순환만 반복할 뿐이다.  
   
황우석은 한국 민족주의(애국심)를 이용해서 사익을 챙기려 했다. 김완섭은 일본 민족주의와 한국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장사하고 있다. 원희룡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권력의 기반을 다지려 한다. 냉정하게 관조해 보자, 지금 민족주의가 한국에게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을 주는지? 민족주의는 권력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악용될 뿐이다. 실질적으로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여성의 억압을 지속시키려 든다.     
 
약육강식,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의 합리화 논리로서 <여성 지배를 합리화하는 창녀론>도 있다. '창녀론'은 모든 여성을 남자의 성 배설구로서만 인식하는 사고방식이다. 마초 중에는 이 창녀론에 호응하는 인구가 꽤 된다. 피지배자를 억압하는 걸 합리화하는 지배 논리로서  창녀론은 친일파의  식민지배 합리화 논리와 같은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김완섭이란 대표적 마초가 창녀론을 주장한 후, 친일파로서 일제치하를  칭송하는 건 한국 마초들의 정신 세계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일례가 된다.   
 
그럼 어떤 마초는 이렇게 부정할 것이다. "나는 김완섭과 다르다. 일본 문화를 접하고 일본 친구를 사귄 후에도 일본인을 존경하지 않고 칭송하지 않을 것이며 침을 뱉고, 일제 치하를 규탄하고 한국 민족주의를 외칠 것이다." 정말? 그럴 자신 있어? 민족주의를 외치는 자 중에서 마초 아닌 사람을 보질 못했는데, 예외가 있다면 나도 좀 구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강자의 지배논리 합리화 사상은 전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강탈 점령하고 내세웠던 제국주의에서 비롯된다. 식민지국가들이 독립했지만, 강대국들은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논리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스스로 식민지 지배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일부 양심 있는 학자와 종교인들이 반성하는 역사 철학을 정립해 왔지만 지배국들의 감성은 변하지 않고 있다.      
 
약자는 강자의 지배에 기대 그 자주결정권을 내 주면 더 편안해지며 더 잘 살 수 있다는 논리이다. 약자는 강자에 대항하지 말고 '노예 근성'을 키워 현실적으로 만족하라는 것이며, 강자에 대한 저항이나 독립 선언은 폭동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국주의 사상은 모든 생물체가 가진 평등권, 자기 생에 대한 자주적 결정권을 부정한다. 평등권 침해에 대한 죄책감 대신 타자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 논리이다.
 
이들은 역사적 근거를 들어 타자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한다. 

1)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약소국은 발전이 없어 더욱 굶주렸을 것이다. 
2)여성은 남성의 성욕을 배설하는 수단이 됨으로써 생을 편안히 살 수 있다. 고로 피지배자는 지배당함을 은혜로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파들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며 마초는 전통과 유교사상을 무기로 여성 억압을 합리화해 왔다. 고로 마초가 일본 지배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기들은 국내 여성을 상대로 여성 노동력 착취와 성 억압, 성착취를  악랄하게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논리로 싸울 수는 없고, 민족혼이니 민족주의니 하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니까 일본의 체계적인 논리와 대적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주의를 배우지 못하면 일본과 사상 논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마초의 결론은 이것뿐이다. 
 
"일본 보다 더 강대국이 되지 않는 한 한국은 앞으로 또 침략 당하고 말 것이다."  
 
어떤 마초는 "침략당하기 전에 얼른 기회주의적으로 친일파로 변신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리라.             
      
식민지 근대화론, 창녀론이라는 지배 합리화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이렇게 달라진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5.18 폭동'으로 전락한다. 일제치하의 한국의 빼앗긴 자주주권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일본의 베품의 은혜를 입은 역사로 돌변하게 된다. 식민지배국의 지배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무런 힘이 없는 국가였으므로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근대화될 수 없었으니 더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의 창녀론의 관점에서 여성은 자기 결정권을 잃고 남성에 의지하여 성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노예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창녀로 전락한다. >    
 
2. 생의 자기 결정권
 
자기 삶이 타자에 의해 결정되고 자주권을 상실해 삶의 의미를 박탈당해본 피지배자들은   이런 지배논리에 동의할 리가 만무하다. <위험 속에서 내일 당장 죽는다해도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싶다> 라는 본능이 모든 생명체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말이다. 치욕스런 역사에서 상처받은 것도 억울한데 나라가 독립한 후에도 그런 주장을 계속 들어야하다니 과거의 상처가 재발되어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 합리화 논리나 마초들의 창녀론은 자연계의 모든 생물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주권'이란 유전자의 속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간에 자기 결정권이 상실된 생은 시체와 같다. 아무리 지배자 입장에서 피지배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타자의 자주권을 빼앗은 지배자는 죄악을 범한 자이다.    
 
사자를 잡아다 동물원에 가둬 먹을 것 다 주고 사냥할 필요성이 없게 편안한 주거를 제공해 준다고 해서 위험을 자기 삶의 일부로 살고 있는 자연 속의 사자와 비교해 그 생이 같겠는가. 하물며 사람이 자기 인생의 결정권이 없거나 국가가 자기결정권이 없다면 어찌되겠나?
 
생이 무의미해진 마당에 근대화되어 잘 살면 뭐하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배자들이 피지배자 좋으라고 자비를 베풀기 위해 타자를 강제로 지배하는 건 아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자체내에 자기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타국을 침범해 놓고 근대화시켜줬다고 억지쓰는 모양새는 양심적이지 않다. 그래서 양심 선언하는 지배국의 학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출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 약자로 태어났든 강자로 태어났든, 일본에서 태어났든, 한국에서 태어났든 모두 본능적으로 똑같다. 일본인은 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인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한국인이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야 한다는 괴이한 주장을 하는 자는 아마도 한국인은 아닐 것이다. 여성은 자기 생에 대한 자주 결정권이 없이 남자의 성 파트너로서 노예처럼 살아야 해방된 삶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여자를 사람으로 보는 자는 아닐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배국으로 죄악을 저지른 과거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미래에도 침략의 기회만 있으면  타국의 자주권을 강탈해서라도 자기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이다. 사자를 잡아다 먹이를 주는  인간들은 사자를 위한 게 아니라 동물원에 놓고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사자의 자기 생 결정권을 강탈한 인간들이 사자에게 내가 먹을 것과 잘 곳을 주었으니 고마워해라 강요하면 자연계가 웃는다.
 
간혹, 약자 중에는 강자들에게 스스로 복종하는 이들이 있다. 노예근성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사람의 속성 중에는 노예 근성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인을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이 꽤 많다. 그 중 세속적 욕심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매몰되어 자기 얼굴에 침 뱉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 일본인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겉과 속이 다른 겸손함, 합리성, 처세술에 능숙한 일본인의 강점만 보고 단점은 못 본 한국인들이 무조건 자기 조국인 한국을 욕한다. 좋은 점을 본받고 자기 단점을 고쳐나가는 보편적 인간 완성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은 무조건 모자란 족속, 일본인은 훌륭한 강자 이렇게 인종차별을 해 버리는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친일파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일본인의 특성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일본인을 존경하는 감성도 없다. 마초들에게만 친일 감성이 생긴다. 왜 마초들은 일본인에게 홀리는가, 그 이유는 또 다른 장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너무 길어질 수가 있으니. 여기서 언급되는 '친일'은 친한 감정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의미의 친일이다. 단순한 의미의 친일은 좋은 것이다. 
 
독도가 한국 땅이든 일본 땅이든 현재 한국이 점령하고 있다. 먼 과거 역사상 한국이 일본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그럼 일본은 한국에게 일본 땅을 반환해야 하나? 일본인이 "독도가 일본 땅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뭐 제국주의자들이니까"라고 이해할 수가 있는데, 한국인이 이런 주장을 하는 건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자아 본능 유전자가 없거나 딴 속셈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게 자주권 박탈에 대한 빚을 아직 갚지 못했다.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 근거이다. 자기 죄를 아직도 반성하고 있지 않다.     
 
죄악을 저지른 쪽은 일본이고, 상처를 받은 쪽은 정신대 할머니들이다. 상처받고 피해를 입었던 한국에게 같은 한국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일본은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고 은혜를 베푼 것이다, 한국 땅도 일본 것이니 돌려 줘라'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뭔가?  
 
친일파와 일본인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좀 뜯어보자는 속셈인 듯 하다. 황우석이 민족주의를 팔아 사욕을 챙겼듯이, 민족주의를 팔아 장사하는 기술도 가지가지이다.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한국인으로서 지혜를 가지고 연대하는 사상, 여성주의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민족주의 장사꾼들의 의도대로 매번 휘둘리는 민중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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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06 [18: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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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z 2006/03/13 [17:11] 수정 | 삭제
  • 기존의 시각에 대한 어떤 차별화된 시각의 신선함은 있는 글입니다만, 여성주의 관점의 당파성을 고집하다보니 너무 배타성을 보이거나 논리적 비약과 일반화가 과도하지는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민족주의=마초=친일파와 한통속...이런 등식은 마치 여성주의=반일 이런 등식이 황당한 일반화이듯 마찬가지로 황당한 등식이 아닐까요?

    가령 "여성주의자들은 일본인의 특성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일본인을 존경하는 감성도 없다. 마초들에게만 친일 감성이 생긴다." 이런 지적은 조선일보 게시판의 댓글란의 허다한 마초 반일파만 보아도 쉽게 깨질 수 있고, 강정구 교수 같은 민족주의자는 몇해전 '만경대사건'시 조한혜정 교수로부터 가장 양성평등적인 가정 중 하나라는 칼럼의 옹호를 받기도 했지요. '민족주의=여성주의의 적'이라는 과도 일반화된 단순등식이 왜 문제인지는 우리가 여성주의를 단일한 비복수적 형태로 보아서는 곤란하듯이, 민족주의 역시 단일한 것이 아님을 볼 때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신선한 내용도 많은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