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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막심한 딸자식, 언제쯤 철이 들려나...
[박미경의 삶과 노동] 남편의 수술 알려 부모근심, 남편에게도 면목없어
 
박미경   기사입력  2005/07/12 [14:25]
어제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몇 마디 통화를 하다 제게 전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방에서 아이의 수련회 준비물을 확인하던 저는 죄지은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수술을 하까이. 미경아,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아라. 느그 아버지하고 의논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
"괜찮아요. 저, 돈 있어요. 근데 엄마 우세요?"
"아니다... 울긴 누가 운다고 그러냐."

울음 섞인 목소리인데도 부인하는 말씀에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갑자기 저도 목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침 한번 삼키고 들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엄마가 우시는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한마디합니다.

"조용히 수술 끝내고 나서 전화하면 될텐데 말라꼬 벌써 알렸노. 걱정하시잖아."
"아니... 그냥 엄마하고 통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남편 말에 기가 팍 죽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걱정하시잖아'란 말에 아차 했습니다. 부모님께 미리 알린 것이 후회되더군요. 깊이 생각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습니다.

남편은 순탄한 결혼생활을 못하고 해고와 두 번 구속으로 장인장모님께 마음 고생시킨 것도 미안한데, 이젠 수술까지 앞둔 터라 더욱더 죄송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남편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부모님께 숨겼어야 하는데…. 난 언제쯤 철이 들려나.'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수술을 하셨는데 여동생과 짜고 가족들에게는 수술시간을 틀리게 말하셨습니다. 이유는 심장이 약한 당신 남편의 건강을 우려해서입니다. 수술시간이 오전인데도 오후라고….

당시, 저는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 대신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배달 나간 오전 10시경에 전화벨이 울렸지요. 여동생이었습니다.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듯이 여동생은 크게 소리내 울었습니다.

"언니야, 엄마... 방금 수술 끝났다."
"뭔 소리냐? 원래 오후 2시였잖아."
"미리 수술시간을 말하면 아빠가 초조해하고 놀라실까봐 엄마랑 짰다."
"그런데, 왜 우냐. 뭔 일 있냐?"
"아니... 엄마 수술하는 거 보니까 너무 겁나서…. 혹 덩어리가 작은 바케스에 가득 나와서 엄마 죽는 줄 알고 놀랐다."


그때 여동생은 심장이 약한 아버지와, 밴댕이 소갈머리 없는 이 언니를 대신해 어머니의 보호자가 됐던 것입니다. 난생 처음 수술 장면을 지켜 본 어린 여동생은 충격이 큰 듯했습니다.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은 가장 큰 효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못난 딸자식은 여러모로 걱정만 끼쳐드리고 있으니 정말 한심한 노릇입니다. 아스팔트 위를 사정없이 때리는 장대비를 보니, 불효 막심한 나를 향해 혹독한 매질을 하는 듯 느껴집니다. 저는 언제쯤 철이 들까요?

예정대로라면 오늘이 수술 날인데, 홀로 남게 될 초등학생 딸아이 걱정에, 방학 시작하는 다음주로 급히 수술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피플타임즈에도 송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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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7/12 [14: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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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길 2005/07/13 [11:29] 수정 | 삭제
  • 말했잖아.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못할 지경이라고. 의식 수준이 낮은 것은 이영철씨야. 어떻게 40년이나 살았으면서 그렇게 유치한 생각을 해 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