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인 김석진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미경동지, 지금 막 집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3월 말 경 김석진씨 가족과 우리 가족이 처음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내인 한미선씨가 목과 어깨에 통증이 심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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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6일 언양에서 우리가족과의 만남 중. © 박미경 |
무슨 수술이냐고 물으니 우려했던 목, 어깨는 아니고, '맹장수술'이라고 했습니다. 해고자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인데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해고자 가족으로 살아온 지 8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김석진씨의 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를 형편이 어려워 입원도 못시키고 집에 모시는 4년여의 기간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매일 아내와 교대로 30분 간격으로 고무호스로 어머니의 가래를 뽑아 주며 꼼짝 못하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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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를 간호하던 모습 © 김석진 |
어머니가 운명하자마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그의 아내는 생계를 위해 화장품 외판을 하고있는데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메고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목과 어깨의 아픔은 가중됩니다.
수술 후, 쉴 겨를도 없이 실밥을 떼자마자 곧바로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집을 나설 그의 아내를 생각하면 같은 해고자의 아내로써 마음이 짠합니다.
남편이 투사면 가족들도 한 마음이 됩니다. 아내도 남편과 함께 투사가 되고 어린 딸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노동운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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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집회시 남편의 복직을 위해 발언중이던 아내 한미선씨의 모습 © 김석진 |
김석진씨는 아내와 두 딸을 뒤로하고 상경해 지금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이 3년이 넘도록 연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초에 대법원 앞에서 53일간 1인 시위 한 데이어 두 번째입니다.
김석진씨는 2000년 현대미포조선 정문 앞에서 180일간 철야노숙투쟁과 이후 43일간의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복식도 못한 채 한 겨울에 울산지역의 각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에 양말을 팔러 다녀야 했습니다. 단식 후유증으로 무릎과 허리가 안 좋아 1인 시위하느라 오래 서있으면 통증이 심하다고 합니다.
아내 한미선씨는 수술 후 무리한 탓인지 감기, 몸살에 걸려 오늘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불면증까지 찾아와 밤새 뒤척인 바람에 낮엔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아프면서도 "저번에 보니 아저씬 목에 깁스했던데 건강은 어떠냐"며 오히려 우리가족을 걱정하며 한숨을 내쉽니다.
"언제나 좋은날이 올지 참 힘들다. 힘들어…."
해고이후, 김석진씨가 거대 자본에 맞서지 않고 적당히 고개 숙이고 살아왔더라면 현실은 아주 편한 삶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아내에게 생계의 부담을 주지도, 가족모두 가슴에 억울함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아픔 따윈 애당초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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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일간 단식투쟁을 하던 때의 김석진씨. (84kg인 몸무게가 단식후 63kg으로 줄어듬) © 김석진 |
8년 간이나 계속되는 해고자 가족들의 삶은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한 마디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고통입니다. 대법원은 어려운 생계로 고통받는 김석진씨 가족에게 하루빨리 판결을 내려 '피 마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