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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권력 쟁취투쟁 이런 것이었나
[주장] 삼촌, 외삼촌 돈까지 넙죽넙죽 받아먹는 인면수심의 노동조합
 
예외석   기사입력  2005/07/02 [12:54]

노동조합을 이용한 양아치들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목숨 걸고 투쟁하여 이룩한 민주노조의 역사가 요즘 들어  짐승과 같이 무례하고 흉악한 사람들 때문에 생매장이 되고 있는 현실 앞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동단체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동지적 애정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양대노총 산하 조직에서 취업브로커 사건과 각종 이권개입 사건들이 계속해서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취업장사를 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내려져 오는 비밀이었다. 이것은 누구도 감히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얼마 전에 광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노조 간부들이 취업장사를 한 사실이 들통이 나 줄줄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번에는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노조 간부들이 친인척이나 동료 할 것 없이 무차별로 돈을 받고 취업을 주선한 사실이 드러나 8명이 구속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동료는 물론이고 친인척 중에서 삼촌이나 외삼촌으로부터도 넙죽넙죽 돈을 받아 챙기는 인면수심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작게는 1000만원에서 6800만원까지 상납 받고 호화판 술대접까지 받았다니 대기업 노동조합 간부자리가 참으로 대단한 벼슬자리인 듯 싶다. 마치 대단한 권력자인양 착각한 채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으로 부동산 투기에다 골프장 출입까지 하고 다녔다니 이 정도이면 이미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노동귀족이라고 불러야 할 양아치 부류에 속한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가 살아 있는 마.창 지역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한국노총 경남지역본부장이 이권개입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버스노조에서 기사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아 챙긴 비리 사건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노조지부장과 관리직 업무과장이 결탁하여 돈을 받아 오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적발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연이어 발생함을 볼 때  노동조합 간부들은 이미 현장권력 쟁취를 통해 동료 노동자들을 자본가의 억압과 통제로부터 보호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현장 권력자로 군림하는 폭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노조 간부들이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조폭’이라는 닉네임까지 불려지고 있을까. 이것은 업종에 관계없이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는 사업장마다 발생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물론 사안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 수는 있다. 이미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는 IMF를 겪은 이후 오늘날 노동자들에게는 아련한 전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그만큼 먹고 살기가 팍팍하고 노동자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주고서라도 취업할 수만 있다면 대학을 나왔어도 생산직으로 취업하려는 직업 예비군들이 엄청나게 대기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의 동창들 중에도 벌써 15~6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울산 현대자동차 생산직으로 취업하기 위하여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입사한 친구가 있었다. 그 때는 친구로서 비난도 많이 했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그 친구 입장에서는 아주 잘 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친구들은 노동자에서 노동귀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늘 달고 다닐 수 밖에 없다. 중.소공장이나 비정규직들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이 오늘날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투쟁없이 쟁취없다! 투쟁으로 쟁취하자!” 전국의 노동자 투쟁현장마다 자주 등장하는 구호이다. 이제는 그 구호가 왜 그런지 생뚱맞고 레코드 판의 아련히 흘러간 옛 노래처럼 느껴진다. 이미 그 구호를 힘차게 외쳤던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여 개량화 되거나 변절하여 운동판을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투쟁방식도 요즘 현실에 맞게 수정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노조 간부들이 현장 노동자들을 올바로 대표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은 그들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현장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거의 대개가 ‘현장권력 쟁취!’를 사실상 노조 집권을 위한 활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반면, 일상의 실천은 ‘현장권력 쟁취!’와는 대립하는 그릇된 운동질서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그 질서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조집권이 불가능할 때 그 조직은 깨져 버리는 이기적인 활동성향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래서 현장조직 운동은 순수한 현장투쟁 중심으로 재편되어야만 한다. 노조 간부들의 노사협조나 협력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노조 간부라면 지켜야 할 정도를 걷자는 것이다. 특히 ‘돈, 여자, 술’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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