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님!
저는 요즘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개마고원)'를 읽고 있습니다. 어제는 부산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위한 군수물자 수송 작업이 시작된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해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강준만의 침묵'을 떠올렸습니다.
강준만 교수님!
노무현 대통령은 살육의 땅 이라크에 추가 파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과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노 대통령은 우리 군인을 베트남 전쟁에 이어 또다시 전쟁터로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파병은 우리가 무지몽매하던 4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베트남 파병이 공산주의자로부터 자유주의 국가를 지키는 자랑스럽고 성스러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오로지 리영희 선생님만이 그 모진 고초를 마다 않으시고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려내셨다고,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노 대통령에게서 역사가 후퇴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서라며,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을 지금 위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는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리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것은 그가 평화 개혁 세력을 대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때 노 후보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내다볼 수 있었다면, 노 후보만이 파병을 반대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노 대통령은 우리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이라크 저항 세력에게 김선일씨가 피랍되었을 때 노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파병 강행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그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아! 우리는 결국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하여 김선일씨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요구한 것 아니었습니까?
이라크 파병국가들이 속속 철수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저항세력에게 파병 철회 조건으로 인질이 잡힌 필리핀도 이라크 파병 중단 및 철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라크 저항 세력들은 우리 국적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마당에, 수도 서울에서도 스페인에서와 같은 철도테러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마당에, 노 대통령만이 지금 부산항에서 이라크 파병을 위한 군수 물자를 선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준만 교수님!
저는 교수님이 자성하시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파병에 대해 침묵하시는 것은 안 됩니다. 교수님의 글이 노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교수님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파병반대에 동참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 반대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청앞 광장 집회에서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침략'이 아니라 '침공'이다"며 규탄하시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과장되게 말씀드리면, 리영희 선생님만이 파병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저는 감히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이 시대 지식인의 침묵은 범죄라고 단언합니다. 이땅의 지식인이라면, 이라크 파병 문제를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멀리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교수님을 뵙지는 못하겠지만, 이라크 파병 반대에 동참하시는 교수님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촛불을 들고 교수님을 기다리겠습니다. / 독자기고
* 필자는 '인물과 사상'독자모임(인사모
http://insamo.org) 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