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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토종 뮤지컬, 서도소리극 “추풍감별곡”의 힘
[관람기] 무형문화재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아끼지 말아야
 
김영조   기사입력  2010/12/09 [22:19]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 리 못 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 가서 되돌아오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 이는 서도민요 “사설난봉가”의 가사이다.

이런 서도민요로 토종뮤지컬이 공연되었다. 지난 12월 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는 서도연희극보존회 주최, 네오 크리에이티브 주관, 서울문화재단·문화재청·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후원한 서도소리극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의 맛깔스러운 공연이 펼쳐졌다.
 
▲ 추풍감별곡의 화려한 무대     ©박동화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일명 채봉감별곡)”은 이야기 바탕부터 음악까지 순전히 우리 것으로만 만든 진짜 토종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지은이를 모르는 조선 후기 순조∼철종 때 애정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사실적인 묘사로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고, 아버지를 효성으로 받드는 한 여성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공연이 시작되자 단국대학교 서한범 교수가 인사말로 “이 공연은 유지숙 명창 개인이 투자해서 하는 소리극이다. 판소리가 지금처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정부가 창극단을 만들어준 것이 주효했다. 그처럼 경서도 민요도 발전할 수 있으려면 이렇게 개인이 고군분투하도록 버려둘 일이 아니라 서울시가 나서서 창극단을 만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큰 손뼉을 받았다.

소리극은 달밝은 밤 담장을 배경으로 채봉이 관산융마(關山戎馬)를 청아하게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원래 관산융마는 정가 가곡에서 자주 부르는 대목이지만 이날 무대에 오른 것은 가곡과 달리 장단이 없는 것으로 기품있는 서도잡가이다. 
  
▲ 채봉과 강필성이 만나는 장면     © 박동화
  
▲ 채봉 아버지와 친구가 재담을 한다     ©박동화

채봉감별곡은 모두 32곡을 부르는데 추풍감별곡·관산융마·수심가 같은 전통 서도소리와 사랑가, 채봉가, 잡풀타령, 신추풍감별곡 등 10곡의 창작 서도소리를 7:3 정도로 나눠 풀어낸다. 이 창작소리극은 이상균 대불대 교수가 직접 작사작곡한 것으로 이날 청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극이 이어지자 간간이 소리꾼들이 객석 뒤 청중 출입문에서 나오며 소리와 몸짓을 하자 청중들은 자지러진다. 역시 우리의 전통 공연은 청중과 함께하는 데 큰 매력이 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장고춤과 검무가 어우러져 청중들에게 한껏 볼거리를 준다. 또 소리꾼들은 희극인들의 재담을 능가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자주 선보여 청중들을 흥겹게 한다. 소리하기도 벅찬 소리꾼들이 연극적인 동작도 수준 높게 하느라 상당한 노력을 했음이 짐작된다.
     
▲ 장구춤을 추는 장면     © 박동화
   
▲ 채봉 아버지가 벼슬을 흥정하는 장면     © 박동화

전통의 올바른 보존과 발전을 흔히 사람들은 “법고창신(法古蒼新)" 정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옛것에 바탕을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아는 것을 말하는데, 옛것만 고집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옛 바탕을 무시하고 된장 맛이 사라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토종감별곡"은 “법고창신(法古蒼新)"의 정신이 제대로 살아있는 훌륭한 토종 뮤지컬이라고 청중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사설들이 명쾌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판소리 유파 중 동초제가 사설을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서도소리극은 출연자들이 명확한 소리를 하도록 고민해야 하며, 음향 문제도 점검해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대 옆에 자막으로 사설을 보여주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소책자에라도 사설을 올려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공연을 본 염창동에서 온 청중 권혜순(교사) 씨는 “서도소리극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이런 훌륭한 우리의 소리극을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시는 하루속히 이런 무형문화재가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 보따리 싸서 한양으로 가는 채봉 식구들     © 박동화

서도연희극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은 “예쁜 춘향이의 절개와 효성스러움의 심청, 기와 예의 황진이 이런 세 여인을 다 가진 채봉이라는 인물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러한 채봉을 잘 표현하여 멋진 소리극으로 거듭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채봉과 강필성의 사랑이 행복하게 마무리된 것처럼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공연 소감을 말했다. 

“네 칠자나 내 팔자나 둥둥 떴는 부평초
물에 뜨긴 마찬가지 신세 초라한 개구리밥
7년 대한 가뭄 날에 피죽 끓여라 피사리풀
보릿고개 넘기라고 지천에 깔린 복사풀
장마 통에 손님 왔다 장닭 잡아라. 닭의장풀
갈 때까지 가보자고 억지 쓰는 갈대풀” 


이런 “잡풀타령”처럼 창작 서도민요도 참 재미있다. 익살스러운 몸짓과 소리의 훌륭한 조화는 서도소리의 매력이 대단함을 드러낸다. 저물어가는 경인년을 청중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능가하는 한편의 토종뮤지컬에 반했다.

   
▲ 평양감사가 채봉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장면     © 박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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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09 [22: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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