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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유신잔당 뉴라이트 노림수는 수구보수 결집
[논단] 반보수대연합 실현하여 수구보수들의 강력한 발호 철저히 막아야
 
박제민   기사입력  2006/11/30 [18:16]
29일 이른바 ‘뉴라이트’계열의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에서 고등학교 2학년 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에 해당하는 자신들의 교과서 최종 편집본을 공개했다. 이 최종 편집본에는 5.16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찬양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다.

아직 그들이 공개해다는 이른바 ‘대안교과서’를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으니 구체적인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30일자 조간신문에 공개된 몇 가지 사실만을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그 위험성을 진단할 수 있다.

우선 사실로 확인된 그네들의 역사왜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신문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교과서에는 5·16군사쿠데타가 ‘5·16혁명’으로 명기되어 있고 “5·16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 등장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군사정부는 강한 추진력으로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아울러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경제기획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부의 추진력 덕분”이라며 “권력구조적 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유신독재를 평가했다. 경향신문의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교과서는 박정희군부독재정권에 대해서 ‘군부 엘리트가 주도한 산업화로 보기 드문 역동성을 과시했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1960년대를 ‘경제적 성장을 위한 회임적 시기’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도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광주지역의 소외가 누적된 탓”이라고 매도했으며 ‘광주가 경제 발전과 중앙권력에서 소외된 데 대한 불만이 누적된 데다 그 지역 출신 김대중의 체포 소식이 분노를 야기했다’고 5.18광주민중항쟁의 원인을 규정지었다. 또한 5.18광주민중항쟁 이후에 대해서도 “이 사태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됨에 따라 이후 한국 사회에 반미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기술했다.

역시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 교과서에는 일제강점통치에 대해서 “일제 식민지 시기는 ‘근대로의 이행과정’으로 ‘일제가 한반도에 근대문명을 강제로 이식, 전통과 주체적 결합을 해, 해방 후 한국은 이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기술되어 있다.

87년 6월항쟁과 6.29선언에 대해서도 ‘민주개혁 없이는 더 이상 효과적인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집권세력이 대통령 직선제 수용 등 일련의 개혁 단행을 약속한 것’이라고 집권세력의 입장에서 결단을 부각시켰다.

주장만을 놓고 본다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위와 같은 주장들은 필자도 학창시절 역사시간이면 지겹도록 들어야 했던 것들에 불과하다. 그 시절 우리의 교실에서는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산업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용단이었고 전두환의 광주학살은 알지도 못했으며 군사쿠데타는 늘 위대한 군사혁명이었다. 그리고 이와같은 주장에 토를 달면 ‘빨갱이’로 둔갑되기 십상이었고 ‘감옥’에 쳐박혀야 했다.

생각만해도 몸서리 쳐지는 인간생각의 규제와 신체의 통제를 통한 전형적인 독재미화교육이었다.

이와같은 독재미화교육은 국민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민주화가 진척됨에 따라 서서히 자리를 잃고 말았고, 상당부분 역사를 바로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국민의 피와 땀으로 되살린 민주주의 한국근현대사를 독재찬미의 역사로 되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정말 개탄할 노릇이다. 그들이 역사교과서에 담은 내용보다 자신들의 주장을 ‘교과서’라는 형태로 포장을 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그들이 말하는 산업화의 역군 박정희는 ‘일본왕을 위해 사쿠라처럼 죽겠다고 맹세’한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군관이었고 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불리는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서 민주인사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을 법살한 주범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민주의 교살자, 통일의 방해자, 민중의 학살자를 역사의 위인인냥 포장하는 행위는 말 그대로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이며 현실을 호도하고 미래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반동(reaction)행태인 것이다.

이미 그들이 역사교과서를 발간한다고 했으니 역사적 사실논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는 해석하는 이들의 몫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는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과 진실을 호도하려는 사람의 정치적 대결을 통해서 규명되어 질 것이다.

저들의 역사왜곡은 한국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민주화는 조국의 발전을 이행하는데 산업화라는 것과 상치되었던 개념정도로 격하되고 민주화의 나날에 흘린 민중의 피땀과 항쟁은 그 부수적인 요인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죽음과 정신은 산업화찬미속에 묻히고 말 것이고, 박종철, 강경대, 이한열, 김세진, 이재호, 송광영, 표정두, 신향식, 최덕수, 김철수 등 수 없이 많은 열사와 희생자들의 죽음도 퇴색되어 버릴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를 오늘날까지 발전하게 만든 국민적 정신, 즉 민주화운동정신을 희석시켜 우리사회의 오늘을 규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독재찬미정서로 되돌릴 것이다.

저들의 역사왜곡은 국민적 정서를 보수화시켜 내년 대선에서 수구보수독재정권을 창출하려는 사전 포석이다.

역사교과서 발간의 진짜 의미는 고등학생들에게 역사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우익들이 2차 세계대전과 조선, 중국 등에 대한 식민통치를 정당화시키는 역사교과서를 발간한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일본의 우익들은 왜곡된 교과서를 통해 국민적 논란을 만들고 자신의 주장을 정치무대에 등장시켰으며 결국 ‘자학사관’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일본의 양심적 사학자들과 대등한 위치에 까지 올랐다. 전혀 정당하지도 않고 진실과 정반대인 그들의 주장이 호소력을 얻게 된 것이다.

뉴라이트들의 왜곡교과서의 용도도 같을 것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 한국역사학계에 논쟁을 붙일 것이고 몇몇 거대 신문사들은 이를 특집으로 다루며 국민적 정신인 민주화정신과 독재자의 유물인 이른바 산업화를 비슷한 반열에 올려 세울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은 교과서가 일선 고등학교에서 얼마나 채택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채택율은 1%로도 안되었으나 그 정치적 이익은 대단히 컸다. 한국의 교단이 군대만큼이나 보수적이라는 점을 상기 할 때 이번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의 정치적 파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태풍이 될 것이다.

한국의 사학자들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한 반론을 제기해야 하며 역사학도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 진실을 쫓는 모두는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하여 수구보수들의 강력한 발호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랐으니 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그 이상의 피와 눈물이 필요할 것이다. 모두가 민주화의 정신을 되새기며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해 나가자!

* 글쓴이는 한국민권연구소 (www.minkwon.org)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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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30 [18: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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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이반 2006/12/01 [16:19] 수정 | 삭제
  • 불안한거다
    예전엔 이런거 안해도 다 알아서 밑에서 기는 놈들이 있었다.
    이젠 그게 없는거다.
    왜? 예전처럼 뭐 떨어지는게 확실히 없는거다.
    있다 하더라도 약발이 없다.
    그래서 이젠 대놓고 막 나가는거다.
    이김에 일본 우익쉐이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하고 비교하는 전시회 하나 하는게 어떨까?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주고 저 떨거지들이 누굴 베꼈는지 확실히 보여주면 그냥 끝나는거 아닐까 한다.
    물론 쟤네들은 아니라고 박박 우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