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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에 신곡도 모르는 남편이지만
삼성의 부당해고로 신곡도 모르고 몸 망가져도 영원히 양심만은 지키길
 
박미경   기사입력  2004/12/28 [15:34]
겨울 바람이 차가운 조용한 새벽, 주위의 불꺼진 상가들과는 대조적으로 도로변에 위치한 포장마차의 은은한 불빛과 노래방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포장마차의 광고물인 노란 풍선기둥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립니다. 넘어질듯 하면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는 풍선을 보니 꼭 우리 가족의 삶이 연상됩니다.
 
기쁠 때나 속상할 때 등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저에게 컴퓨터는 유일한 친구입니다. 거리의 차량들마저 뜸한 이 시각에 저는 언제나처럼 부서져라(?)하고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회식에 참석했던 남편이었습니다.
 
▲삼성SDI는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후원의 밤조차 갖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놓았다.     ©송수근

"미경아, 낸데(나인데)... 사람들이 하도 가자고 해서 노래방에 와 버렸다."
 
몸도 안 좋은데 늦게 들어온다고 제가 잔소리 할까봐 남편은 미안한 듯 말을 꺼냅니다.
 
"혹시, 술 마셨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목 디스크로 치료를 받았었습니다. 현재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 등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 목을 치료하던 분이 "술을 마시면 눈과 손이 저절로 떨리게되고, 입도 삐뚤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요즘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습니다. 연말이라서 모임이 많은 남편이 혹시 라도 술을 마시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 술은 안 마셨다고 하더군요.
 
"근데 왜 전화했어요? 노래 부르다 천천히 오면 되지."
"노래방에 오긴 왔는데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
 
"자기 옛날 노래 부르면 되잖아요. 좋아하는 노래 '삼포로 가는 길'…."
"같이 온 사람들 다 신곡 부르는데 분위기 안 맞게 내만 우예 옛날 노래 부르 노."
 
"하하, 그라믄 그냥 뻘쭘하게 박수나 치고 있으라매."
"그래서 뻘쭘하게 박수만 치고있다 아이가."하며 웃습니다.
 
남편의 얘기를 듣다보니 저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7년의 투쟁과 두 번이나 옥살이 한 남편이 요즘 노래를 알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의 차량인 트럭에는 노동가요 테이프만 가득하니까요.
 
▲지난 18일 삼성SDI현장 노동자들이 주최한 '삼성해고자 후원의 밤' 하루 주점에서 딸아이와 함께 남편이 <바위처럼>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 박미경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귀가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데 왜 신곡을 부른대요?"
"갸들은 나이 어린 아들(애들)하고 같이 근무하다보니까 회식도 자주 가고 노래방 가면 아들한테 맞춰 요새 노래 부른다 하더라."며 피곤한 듯 방으로 들어갑니다.
 
남편이 회사에 근무 할 당시에는 회식을 가면 대부분의 동료들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한해 수천억 원의 흑자를 내는 회사에서 98년, IMF를 빙자해 구조조정을 한 바람에 현재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남편의 옛 동료들은 어린 사원들에게 맞추기 위해 신곡을 부르는 분위기인가 봅니다.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가정의 행복마저 뒤로 한 채 장기 투쟁중인 남편.옛 동료들과 오랜만에 함께 한 즐거운 자리에서 박수만 치며 시간을 보내야했던 남편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에 대한 현실에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단길로 들어설 수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 남편은 일부러 가시밭길을 택해 고생을 사서하고 있습니다. 명예훼손 죄 등으로 2년여의 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출소 이후, 그동안 물가가 얼마만큼 올랐는지, 신곡도 전혀 모르는 남편이지만 앞으로 그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양심만은 꼭 지키고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양심 없이 사는 삶처럼 괴로운 삶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지난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에서 삼성의 어느 관리자가 휴대폰 위치 추적 건으로 성명 불상자를 상대로 고소한 한 노동자에게 "세태에 묻어가라. 양심 없이 세상사는 놈 99%"인데, "왜 1%로 가냐"고 말했다 한들 사람이라면 양심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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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28 [15: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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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 2004/12/28 [18:32] 수정 | 삭제
  • 힘내시길 바랍니다.
    한국최고기업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정말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