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몰파'당한 k형, 정말 미안합니다
국민을 사선으로 내모는 정부는 누구를 위하는 정부인가
 
홍성관   기사입력  2004/08/05 [16:41]
 K형, 오전 수업을 위해 일찌감치 식사를 하면서 TV를 켰습니다. 한 영화채널에서 '황비홍'을 방영하고 있더군요. 홍콩배우 이연걸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황비홍' 참 오랜만에 다시 보는 '황비홍'이 제게는 단순히 무술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황비홍'에는 서구 열강에 짓밟힌 중국 민중들의 고통이 담겨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둘은 자국의 여성들을 납치해 미군에게 팔아 넘기는 부랑배들과 적들의 총 앞에서 무력함을 표했던 황비홍이었습니다.

자국의 여성들을 미군에 팔아 넘기다 
 
▲고 윤금이씨    
우선 부랑배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기지촌 여성들이 떠올랐습니다. '기지촌 여성'이란 미군기지 인근에 자리잡은 기지촌에서 윤락행위를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윤금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동두천 보산동에 위치한 기지촌의 미군전용클럽에서 일하던 윤금이(당시 26세)씨는 1992년 10월 28일 살해당했습니다. 집주인이 시신을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로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지요. 또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인 미2사단의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기까지 했습니다. 윤금이씨가 살해된 동두천 보산동 기지촌에서 미군들은 한국 경찰과 미 헌병의 보호아래 자유롭게 유흥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한국여성들은 미군들에게 그저 매춘부에 지나지 않는데, 그나마 인권이라는 것을 갖지 못하는 매춘부로 취급받습니다.
 
이런 기지촌의 뿌리는 한국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 후 점령군으로 한국에 들어온 미군은 1953년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영구주둔을 보장받았습니다. 전후 가난에 찌들어있던 한국민에게 미군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방편이 되었고, 미군부대 근처에 여러 장사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매춘을 하기 위해 온 젊은 여성들도 있었는데, 미군에 몸을 파는 여성들이 군집을 이루기 시작해 전국에는 모두 18개의 기지촌이 생겨났습니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생계를 위해 매춘을 했지요. 그들 대다수가 부모가 없고, 국졸 이하가 주를 이뤘고, 자신의 생계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돌봐주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몸 파는 여자라고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지요.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풍속사범 단속에 대대적으로 나섰고, 윤락행위방지법 등을 제정하여 정권에 도덕성을 부여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기지촌은 이 법에서 예외였고, 오히려 특수구역으로 지정돼 배려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획득하면서 공약했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외화가 절실히 필요했고, 기지촌은 밑천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위정자들은 일본이 기생관광으로 외화벌이에 적극적인 것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한국여성의 몸값이 세계에서 제일 싼데 기지촌은 그 몸값을 올려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답니다.  
 
그런 와중에 전북 군산에 아메리카 타운이 설립되었습니다. 해외의 기지촌을 보고 짜임새가 있다고 판단한 관료들이 보다 체계적인 매매춘 계획도시를 건설한 것이지요. 아메리카타운 주식회사가 법인허가를 받아 이곳을 관리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미모의 젊은 여성들에게 정부는‘여러분은 달러벌이 전사로서의 숨은 애국자다’라는 이데올로기 교육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섹스산업으로 벌어들인 달러는 박정희 정권의 주수입원이 되었지요.

박 정권의 생각대로 잘 되어가던 기지촌은 갈수록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첫째, 미군에 의해 여성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곳 여성들은 미군기지 앞으로 몰려들어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미군내 흑백 갈등이 기지촌에도 파급된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과 어울린 한국여성을 거부하고 이와 관련된 싸움이 잦아지면서 기지촌에는 백인전용 나이트클럽이 들어섰습니다. 이 문제가 커지자 미군은 기지촌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기지촌의 포주와 여성들은 인종차별의 책임을 기지촌에 떠맡긴다며 시위를 벌였지요. 셋째, 미군의 성병 발병율이 70%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지촌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미군측은 한국정부에 불만을 토로하고, 기지촌 환경정화를 위해 압력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결국 민군관계 소위원회가 만들어져 미군의 불만사항을 접수받기에 이르렀지요.

정화운동의 결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큰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정화운동은 한미 양측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미군을 붙들어 정권유지를 할 수 있었고, 미국은 보다 수월하게 자신의 군인들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지촌 포주들은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로부터 20년 가까이 기지촌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졌습니다. 이곳 여성들에겐 더 이상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시위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군과 기지촌 여성이 연관된 사건을 미군부대, 한국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을 보면 편파적이고 은폐의도가 농후합니다. 또 기지촌 여성들은 포주들이 만들어놓은 착취구조로 인해 가난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까지도 한미동맹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멸시와 가난, 범죄에의 공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이툰 - 국가에 의해 살인자가 되나
 
다시 영화로 돌아가 황비홍은 '무술로 총과 맞서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황비홍에게 무술은 전통을지킴이요, 정의를 위함인데, 이것만으로 열강의 무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대목이지요.

▲자이툰 부대 훈련모습  
저는 이 부분에서 이라크전을 떠올렸습니다. 석유를 빼앗기 위해 명분없이 일으킨 전쟁. 그리고 강대국의 압력에 부응해 자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국가. 평화와 정의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의지만으로 열강의 무력에 맞서기는 어려운 게 현실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K형은 이라크로 가게 되었지요.
 
K형, 사실 나는 자이툰 부대에 지원한 형이 원망스럽습니다. 이라크에 가는 형은 분명 이라크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러가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기 위함일텐데.아직 그곳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인데. 왜 형은 그곳을 자청했던 것입니까. 형이 군인이라고 생각해서겠지요. 일전에 군 시절 모셨던 간부 한 분을 만난 술자리에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일선 군인의 견해를 여쭌 적이 있지요. 그 분은 '군인은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당연히 파병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형은 이 의견에 동의를 하는지요. 저는 반대합니다. 군대는 인류가 나은 최악의 집단이며, 군인은 그 희생양일 뿐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군대를 없앨 수도 군인이 되지 않기도 어려운 것을 압니다. 그러나 지난 50여년 간 형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 먼 중동까지 날아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총구를 내밀겠다구요?

이미 제 나라 안에서조차 명분이 없이 벌인 전쟁이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파병논의 초반 떠들어댔던 '국익'이라는 것도 뚜껑을 열어보면 비어있는 깡통일 뿐이라는 것도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 땅에서 총성이 멈추지 않는 것은 오로지 제국주의적인 탐욕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K형, 누가 당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까. 이 나라의 정부입니다. 저는 수많은 민중들이 반대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에도, 제 나라 젊은이들을 타국의 전쟁터로 내몰아버린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 정부는 민중들의 정부가 아니라, 오로지 전쟁으로 이득을 볼 기득권자들만의 정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비홍'에서 보았던 민중들이 지키려는 가치와 관군, 즉 국가가 지키려는 가치 사이에 존재한 간극보다 훨씬 더 큰 괴리감이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국민을 방치해둔 정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K형, 나는 이라크로 떠나는 당신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나라 정부는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핑계를 대며 국민들 몰래 당신들을 떠나보냈습니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떳떳하지 못함을 정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다시금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자국의 젊은이가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땅까지 찾아가 일하다 살해되고, 자신의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에 항의하는 어머니가 경찰의 발길질에 내동댕이쳐지는 대한민국. 자기들 필요에 따라 미군에 몸을 팔게 해놓고, 미군에 의한 범죄의 사각지대에 노출된 여성들을 방치하는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오면서 부끄러웠던 것이 있다면 법조인이 되기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훗날 민중들을 사선으로 몰아세우는 정권 하에서 좋은 데 취직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지금의 저를 부끄러워할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후배들이 이라크 파병을 막아보겠다고, 국민들도 모르게 떠나버린 자이툰 부대를 되돌려놓겠다고 거리로 나서 싸우고 있는 오늘도 이렇게 학교에 남아 책을 펼치는 스스로가 수치스럽습니다.

K형, 그곳을 지원한 형이나 형의 떠남을 붙잡지 못한 저나 부족하기는 마찬가진가 봅니다. 오늘도 형이 이라크 민중들과 한 번도 불미스럽게 마주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다 돌아오기를 형의 몸도, 영혼도 망가지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로...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8/05 [16:41]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