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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그는 진정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역사적 예수’ 재탐구, 합리적 교리 재구성해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3/09/20 [08:36]
오늘 제가 교우님들께 드리는 편지는 매우 불편한 내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우리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오래된 물음에 대해, 교리적인 답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계속된 저의 오랜 고민과 기도와 성경공부, 그리고 여러 신학자들의 글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겉도는 교회개혁운동, 중심으로 들어가야

이 문제에 솔직하게 접근해가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교우님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 신성모독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너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 솔직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성서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통해 만나는 예수님은 당시의 모든 종교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율법과 종교전통에 도전하면 큰 벌을 받게 된다고 위협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으며 그들의 언행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기존의 모든 교리적 전제를 뛰어넘어 오로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며 행동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서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서거나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 중에는, 기독교의 정통교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여 교회의 조직을 좀 더 합리적으로 개혁하거나, 재정의 투명성과 목회자의 자질문제 등 교회의 도덕성회복을 목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한국 교회가 이토록 부패한 데에는 자본주의와 결탁한 물신숭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 동의하며,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는 도덕성회복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지난 편지들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른바 ‘보수정통’이라는 기독교의 독선적인 교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 기독교가 겪어왔던 여러 문제의 뿌리에 바로 그 ‘보수정통’이라는 교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의 금전적 비리나 윤리적 탈선이 개인의 도덕성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도덕적 긴장에서 해체되도록 만든 보다 깊은 원인을 찾아보면 역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에 닿아있기에, 우리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어 복음의 원형을 회복하고 예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 개혁’이 그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2. ‘사람의 아들’ 예수

“예수는 그리스도(구세주)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본질상 신의 성품을 가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라는 고백은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 이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동일하게 고백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에 대한 해석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연구된 현대신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교리적 예수와는 너무나 다른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거대한 자료를 서로 공유하며 연구하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교우님들께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들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알고 싶으신 교우님은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간행한 책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특히 존 도미닉 크로산 저, 한인철 역의 <예수는 누구인가>와, 존 도미닉 크로산 저, 김준우 역의 <역사적 예수>, 로버트 펑크 저, 김준우 역의 <예수에게 솔직히>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재발견한 역사적 예수님은 존재하는 모든 이웃을 하늘 아버지의 딸아들로 인식하고 살았던 멋지고 호방한 젊은이였습니다. 또한 어떤 이념이나 교리도 사람을 억누르고 통제할 권리가 없다며 모든 인간의 차별 없는 해방과 무한 자유를 선언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깊은 사색과 명상을 즐긴 영성가였고, 따뜻하고 섬세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거친 욕설도 불사하는 불같은 성격의 혁명가이기도 했기에, 당시 사회의 기득권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사회질서를 뒤흔들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마침내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것은 그분의 육신뿐이었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정신은 결코 죽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따르던 제자들의 마음과 삶 속에 부활한 예수님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를 흠모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모임은 여러 동아리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직체로서의 초대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스승 예수께서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어떤 벽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가 스며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과 삶으로 뚜렷하게 보여주신 이정표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것은 신분에 대한 차별과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고 억누르는 모든 전통과 압제를 돌파하는 역동적이고 신나는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마침내 현실의 모든 제약과 고통을 뛰어넘어 천국, 즉 그분이 예언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천국은 죽은 후에나 갈 수 있는 미래의 천국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3. 사도 바울이 이해한 예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20년쯤 지났을 때, 매우 영리하고 독특한 학자가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서신’으로 잘 알려진 그의 글들은 당시 유대와 갈릴리 땅을 넘어 이방인 지역에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교회들에게 편지로 전해졌습니다.

유대인의 혈통과 로마인의 시민권을 아울러 갖고 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도 아니었고 한 번도 예수님을 직접 뵈었거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독특한 영적 체험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전통과 그리스 철학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로마제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그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익숙한 언어와 비유로 ‘예수 사건과 의미’를 소개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속사의 정점이며 죄와 악에 대한 영원하고 궁극적인 승리였습니다. 복음서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기록된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더없이 쉽고 만족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처럼 처절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고, 다만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기대는 것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멸되고 구원을 받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옛 종교의 무거운 율법은 사문화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성인과 유아 등 모든 차별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허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사람은 완전히 평등하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오직 그분을 믿기만 하면!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로 사로잡았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으며, 현실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 품에 안기면 그 모든 고통과 애곡과 눈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가난하고 힘없고 체제에 눌리고 착취당하며 살아가던 연약하고 가난한 민중에게 현실의 질곡을 넘어 삶에 소망을 불어넣어주는 최상의 복음(Good News)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구원의 길은 “오직 그분을 믿기만 하면!”이었지만 그 믿음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오늘날까지도 학계의 논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온 해석은 예수님의 대속과 구세주 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와는 매우 다르게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강조한 ‘오직 믿음’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교리적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적 정치적 속박을 뛰어넘어 자유와 해방을 선포한 ‘그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것이며, 그 믿음이 바로 이 세상의 온갖 핍박과 고난을 뚫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해석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 해석이 옳다면) 사도 바울이 ‘교리의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교우님은 도서출판 삼인에서 발행한 김진호 이정희 차정식 최형묵 황용연 공저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김진호 저 <리부팅 바울> 등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복음서 기자들이 이해한 예수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4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때,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인 지역의 교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지 20년쯤 지난 서기 70년 경, 예루살렘과 갈릴레이 지역에서 전해지던 예수님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삶의 이야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한 사람들이 마침내 뜻을 이루었습니다. ‘예수 이야기’가 전승 과정을 거쳐 기록의 단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40년간 내려온 수많은 전승들 가운데 서로 다르거나 모순되는 자료를 접했을 때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그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자료는 그의 영웅담에 치중한 나머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료는 영웅적이기는 커녕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평범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 기자들은 서로 모순되는 자료들이라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내용은 기록에 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글이 거룩한 책으로 편집될 뿐 아니라 후에 ‘성서무오설’이라는 교리의 보호(?)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모순되는 자료를 함께 싣는데 갈등을 느낄 필요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출판기술이 없었던 당대에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복사본을 만들 수밖에 없었기에, 비의도적인 실수도 있었고 복사자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축자영감설을 믿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에 있어서는” 성서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마침내 전승 자료들이 기록물로 모아져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탄생되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가 네 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즘 널리 알려진 <도마의 복음서>를 비롯하여 <마리아의 복음서> <베드로의 복음서> <빌립보의 복음서> 등 여러 복음서가 존재했으나, 이후 교회의 심의에서 정경에 들지 못하고 사복음서만 경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성서에 수록된 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은 마가복음입니다. 서기 70년경에 기록된 마가복음의 예수님이 복음의 원형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마가(개인이 아니라 아마도 마가공동체)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하늘 위의 저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오신 개혁자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16장 9~20절이 첨가되었습니다).

마가복음보다 10~20년 정도 늦게 기록되었으며, 마가복음의 기록을 상당 부분 인용한 것으로 확인된 마태복음(서기 85~90년경)과 누가복음(서기 80~90년경)에는 개혁자로서의 예수님보다 신적인 예수님의 모습이 더 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서기 90~100년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로고스)으로서의 하나님’으로 그려집니다.

이처럼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수님 사후 40년 동안 입으로 전해진 후에야 기록되었기에 ‘사건’과 ‘기록’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는 점과, 복음서에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가 함께 담겨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사실의 언어로 기록된 것과 고백의 언어로 기록된 것을 정확히 구별하여 사실의 언어는 사실의 언어로, 고백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날 교회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사실의 언어로 해석했기에, 배타적인 교리가 안고 있는 모순과 함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에서 ‘신앙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삼백년쯤 지났을 때, 예수에 대한 모든 논의가 차단되고 오직 한 가지 해석만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권 유지와 로마제국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예수님이 ‘신의 아들’을 넘어 ‘신 자체’가 되었으며,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선포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5. 마침내 신이 된 ‘사람의 아들’

서기 4세기 초반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늙고 병든 로마제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독교를 동반자로 선택했습니다. 제국의 정신적 구심점을 새로이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와 사상을 아우르는 절대신념체계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때 지난 이백여 년에 걸친 정책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신념으로 버텨낸 유일신 종교가 그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제국의 동반자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카이사르(로마 황제)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심으로써 로마제국의 권위를 인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타협을 시도한 교회가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기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이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통일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고백되기도 했지만, 단순히 인류의 영적 스승 중 한 분으로, 또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혁명가로 인식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예수관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견해 중에서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유일신의 유일한 아들’로서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신의 절대계명이 될 수 있고,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바치라.”는 유일신의 명령을 중심으로 제국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325년에 니케아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교회는 마침내 예수님을 ‘신과 동일 본질을 가진 유일한 아들’로 선포하였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에서 성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로마 황제이며 이교도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의 친구’였던 예수님은 ‘신의 아들’의 지위를 넘어 급기야 ‘신 자체’로, 또한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로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웃을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품으신 예수님의 너그러운 삶과 가르침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배타적 교리로 바뀐 채 중세 천년을 지나 한반도에까지 유입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신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으신 교우님은 제가 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예수에 대한 신앙’을 넘어 ‘예수의 신앙’을 가져야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이런 현대 신학자들의 새로운 해석은 교우님들을 매우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이런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과 진실을 알기 위해 정직하게 의심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온 견해를 계속 견지하고 주입하는 것이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바람직하다고 믿는 교회지도자들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할 경우에는,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후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세상 이치 뿐 아니라 신앙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이치입니다. 하여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교우님들도 정직한 탐구를 계속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바른 신앙은 무엇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사실 위에 구축되지 않은 신앙은 깊어질수록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인격)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은 예수님을 이천년 전에 사셨던 참 자유인으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압제에 저항했던 혁명가로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해석은 이미 기독교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이삼백 년 전부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존 힉(John Hick)을 비롯하여 폴 니터(Paul K. Knitter) 등 세계적인 다원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전환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일찍이 주장하였습니다.

▲ 한반도 종교전쟁을 막기위한 류상태 목사의 고언이 담긴 「신의 눈물」(부제 : 한반도종교전쟁)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원하시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원하셨을 뿐이다.”라고 하여 교회가 예수님의 따뜻한 인류애 정신을 배타적 교리로 만든 것은 예수님의 뜻을 거스른 잘못된 선택이며,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신앙은 ‘예수에 대한 신앙’(예수님을 신으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의 신앙’(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신앙)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다양하고 열린 예수 연구가 지구 마을에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불러오고 있으며, 지구마을 여기저기서 정직한 신학자와 예수사람들이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치고 있지만, 배타와 독선에 빠진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와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들은 여전히 이천년 전의 원시 교리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본받아 이제 우리 한국 교회도 이런 현대 신학의 도전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모든 전제를 과감히 내려놓고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며 정직하게 ‘역사적 예수’를 재탐구하여 아름다운 인류 문화 특히 지구마을의 정신을 지켜온 고등종교들과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또한 현대 과학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교리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교우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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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20 [08: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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