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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명인이 부른 경서도민요, 명창을 놀라게 했다
[음반순례] 최경만의 소리 “끼”, 남성으로 경서도 목소리 구현
 
김영조   기사입력  2012/10/14 [15:20]
 국악계는 명인이 있고, 명창이 있다. 다시 말해서 연주를 뛰어나게 하는 사람은 명인, 소리의 마루(정상)에 있는 사람은 명창이다. 명인이 명창이 되고 명창이 명인이 되는 그런 일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최근 명인이 명창 소리를 듣는 일도 가능함을 보여주는 일이 생겼다. 바로 피리의 명인 최경만 부여충남국악단 음악감독이 다듬어서 낸 소리가 아닌 그야말로 자연산, 타고난 목소리로 불러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 최경만의 소리 “끼” 음반 표지     © 신나라
   
피리의 명인으로서 지영희 선생의 수제자이기도 한 최경만 명인이 이번에 소리음반 <최경만의 소리 “끼”>를 신나라(회장 김기순)을 통해서 냈다. 소리꾼이 소리음반을 내는 거야 당연하지만 피리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소리를 그것도 한 두곡이 아닌 경서도음악 전체를 담았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현재 부여군충남국악단 예술감독이며, 조선시대 국악의 보편적 연주 형태인 삼현육각보존회를 만들어 그 재현에 힘쓰는 최경만 명인.

▲ 피리 연주를 하는 최경만 명인     ©김영조
“최경만 명인은 어려서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민요가락을 듣고 흥얼거리며 자랐다. 마을에 경사가 있거나 농사일을 끝내면 어르신들이 모여 막걸리 한잔에 안주 삼아 민요를 곁들였는데 돌림 가락으로 부르는 수준이 어설픈 민요가수는 명함도 내놓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최 선생은 귀동냥으로 주어들은 민요를 항시 흥얼거렸고 그 흥얼거림이 피리의 명인 최경만을 만들었음은 물론 끝내는 민요까지 부르게 만들었다”라고 박범훈 전 중앙대학교 총장은 말한다.

특히, 최경만 명인의 스승 지영희 선생은 악기소리를 구음(악기 소리를 입으로 흉내 내어 부르는 소리)으로 가르치곤 했는데 그 구음이 탁 월했고 그 구음을 최경만 명인은 피리보다 구음 이 더 구수할 정도로 소리의 성음이 좋았다한다. 

그래서 박범훈 전 총장은 그의 소리는 “끼 를 타고난 자연산소리”라고 단언한다. 만들어서 빛을 내고 장식을 한 소리가 아니고 시골 어느 곳에 가더라도 들을 수 있는 구수하면서도 한을 승화시킨 음색을 지닌 소리라는 평가이다. 각 민요의 특성들을 자연스럽게 불러낸 것은 물론 특히 서도소리는 더욱 구성지게 불러 그의 부인이며 서도소리 명창인 유지숙 씨는 원래 같이 녹음하려 했지만 최 명인의 타고난 목구성에 오히려 부담이 될까봐 포기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 부인인 서도소리 유지숙 명창과 다정한 한 때를 보내는 최경만 명인     © 신나라
 
서도소리의 대표민요인 수심가, 엮음수심가, 산염불 등이 수록된 2장의 시디를 들어본다. 한곡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그동안 대부분 여성 명창의 소리로 들어오던 경서도 소리를 남성의 목소리로 듣는 맛이 일품이라는 점이다. 편안하고 구수하게 들리는 소리는 듣는 이를 소리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2장 첫 번째 서도구음은 저 깊고 깊은 가슴 속의 한을 밖으로 끌어내 승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시디엔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금강산타령, 노래가락, 창부타령, 이별가, 긴아리랑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이 들썩여지는 매력이 있다. 이런 소리는 다듬어진 밝은 소리라기보다는 오래 곰삭아서 나오는 소리로 두고두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 음반이 나오게 된 데는 오랜 선배이면서 형이라 부르는 장구의 명인인 장덕화 선생의 격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장덕화 명인은 몇 년 전부터 소리를 음반에 담을 것을 권했다. 뿐만 아니라 해금의 명인이면서 경기민요 소리를 담은 전태용 선생처럼 담아두면 먼 훗날 좋은 음원이 되리라고 하여 용기를 내어 음반을 담게 되었다. 더불어 녹음 작업을 하는 내내 함께 하며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또 녹음실 밖에서는 많은 후배와 제자들이 큰 추임새를 해 최 명인이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다. 녹음할 때 반주를 맡았던 동료 후배들은 녹음이 끝난 뒤 사례금을 건네자 “한결같이 이런 훌륭한 작업에 동참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무슨 사례금이냐?”라며, 손사래를 쳤다는 아름다운 후문도 들린다.
 
▲ 부인 유지숙 명창과 뭔가 숙의를 하는 최경만 명인     © 신나라

박범훈 전 총장은 추천사에서 “최경만 선생이 부른 민요가 국악계뿐만 아니라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에게 신선한 충격적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민요는 전문가들의 소유물에서 벗어나 많은 대중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라고 말한다.  

녹음 작업을 계속 같이 했던 최 명인의 부인 유지숙 명창은 “남편이 이렇게 소리를 잘할 줄 몰랐다. 저렇게 타고난 목구성이 있음에 나도 모르게 샘이 났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고백한다. 

원래 민요는 소리꾼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들이 누구나 부르던 소리 아니던가? 그동안 서양음악에 밀려 잊어왔던 민요. 이젠 최경만 명인의 소리 덕에 온 나라 어디에 가나 민요소리가 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 음반의 소리를 들은 대중들이 “민요는 좋지만 나는 못 불러.”라고 하던 말을 접고 “나도 불러 볼 테야.”라는 용기를 낼 사람이 많이 나올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최경만 명인의 경서도소리와 함께 우리도 악가무에 능했던 배달겨레의 본 모습을 찾아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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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14 [15: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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