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박정희와 김종필, 독도 폭파 원조였다
[논단] 일본의 망언과 도발에 분노하기 앞서 국내 친일잔재부터 처단해야
 
이재봉   기사입력  2012/08/24 [02:47]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8월 10일 중국행 배 안에서 TV뉴스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압록강-백두산-두만강 지역을 탐방하며 인터넷/와이파이 접속이 쉽지 않아 17일 귀국한 뒤에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4년 전인 2008년 7월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일본 총리가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겠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는 사람이 무슨 곡절로 이렇게 현란하게 변신하는지 의아하다.

한편, 문재인 후보가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박정희의 1965년 발언을 인용하자,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이 그것은 일본측에서 한 말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이 담긴 미국 외교문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박정희의 입장을 왜곡했다는 식의 논평을 냈다.

대통령을 하는 사람이든,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든, 또는 그 주변에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이든,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우리 현대사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제대로 뽑으려면 우리 유권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취지로 7년 전에 발표했던 글 한 토막 아래에 덧붙인다.


박정희와 김종필, 독도 폭파 제안


지난 (2005년) 3월 한 달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란거리는 독도 문제였을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쪽 주장에 대해 거의 온 국민이 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던 듯하다. 일본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시로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고 목숨까지 내던지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외교 방침을 발표하고 대통령은 ‘외교 전쟁’이란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정부 차원의 ‘조용한 외교’조차 떠들썩한 외교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염치없는 억지와 반성 없는 망언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본이 저런 짓거리를 하는 데는 지난날 한국의 친일파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부추긴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만 밝힌다.

(2005년) 1월 17일 1960년대 한일협상과 관련된 외교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본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2년 9월 일본의 협상대표인 외무성의 한 국장이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대표인 외무부의 한 참사관은 두 달 뒤인 1962년 11월 “(한.일 간에)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 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정보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다”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6년 공개된 미국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5.16 쿠데타 이후 ‘제 2인자’로 행세하며 한국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의 오히라 외상에게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 김종필이 1962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한일협정의 기초를 마련했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 바로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문서’로 분류된 1962년 10월 29일의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을 보면, 두 사람이 한일협정에 관해 얘기하는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던 독도에 대해 러스크가 그 섬이 무슨 용도가 있느냐고 묻자, 김종필은 “갈매기가 들르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 나아가 오히라는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 사회당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며 김종필의 제안에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Northeast Asia,610-612쪽). 독도 폭파를 한국측이 제안하고 일본측이! 거절했던 셈이다.

게다가 1965년엔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한일협정을 위해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다. 바로 이러한 친일파 위정자들의 망언 때문에, 설사 한일협상이 잘 풀리지 않은데 따른 푸념이었을지라도,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거나 진짜 주인일지라도 영유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1962년 김종필과 대화를 나누며 독도 폭파를 고려하고, 1965년 박정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독도에 등대를 세워 두 나라가 함께 이용하기를 제안했던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1945년 8월 육군 대령으로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던 사람이다. 한반도의 국토 분단을 이끌었던 그가 분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나중엔 독도를 폭파하자거나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했던 것은 친일파 정치인들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를 비난하고 그러한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미국의 자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 미국에 굽실거렸던 한국의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어떠한 언행을 저질러왔는지 먼저 아는 게 바람직하다. 해방 직후 친일과 부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업보이지만, 60년이 지난 이제라도 과거사를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 [남이랑북이랑] 2005년 4월

* 글쓴이는 원광대학교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이며, <남이랑북이랑>의 발행인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2/08/24 [02:4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