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글이 목숨” 울산에 외솔정신 울려 퍼진다
[현장] 울산 외솔 생가터에 외솔기념관 개관식 열려... 작은 규모에 아쉬움
 
김영조   기사입력  2010/03/24 [14:45]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힘만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이 남아날 수 있었을까? 아니다. 한힌샘,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피나는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올해로 저 세상에 가신지 40해가 지났다. 선생의 40주기를 맞아 선생의 생가가 있는 울산시 중구 동동엔 늦었지만 선생을 기리는 아담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 울산 외솔기념관 전경 ⓒ     © 외솔기념관
이 외솔기념관을 여는 행사가 지난 3월 23일 오후 3시 5백여 명의 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ubc 김상명 아나운서의 사회로 성대하게 열렸다. 개관식 직전엔 울산 중구 여성합창단의 합창과 울산학춤 공연이 선보였다. 이후 외솔 선생 생전의 육성이 울려 퍼졌고, 외솔기념사업추진위원회 김철 위원장의 외솔 약력보고와 중구청 전병수 총무국장의 외솔기념관 개관 경과보고가 있었다. 

이어서 조용수 중구청장의 “외솔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나가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는 개식사가 있었고, 박맹우 시장은 전충렬 행정부시장이 대신 읽은 환영사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는 정말 위대한 일이었지만 외솔이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킨 것은 그 한글을 세계에 자랑하고 보급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라고 말했다.

▲ 울산 외솔기념관 개관식 모습     © 김영조
▲ 울산 외솔기념관 개관식 축하 학춤 공연     © 김영조

▲ 외솔기념관 개관식 테이프를 자르는 장면     © 김영조

환영사가 끝난 뒤 국립국어원 권재일 원장의 격려사, 울산시 중구의회 박래환 의장과 외솔회 최기호 회장의 축사 그리고 (재)외솔회 최홍식 이사장의 감사인사와 유가족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회장이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외솔 선생의 “한글이 목숨” 붓글씨가 들어있는 <금서집(錦書集)>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금서집은 소장자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의 허락을 받아 한 달 동안 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개관식은 테이프를 자르는 식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맺었다. 이후 기념관 관람과 기념관 옥상에서 다과회가 있었다. 

외솔기념관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외솔 선생이 나신 집터가 있는 동동 613번지 일원에 외솔 선생님의 한글과 겨레 사랑에 대한 업적을 높이 받들고 그 뜻을 길이 전하고자 세운 것이다. 기념관은 2002년 10월 9일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이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그 개관식을 연 것이다. 기념관을 짓기 위한 사업비는 울산시로부터 41억 원을 지원받았고 국비 4억 원과 구비 5억 원 등 총 50억 원이 들었다.

기념관과 생가는 터 면적 3,316 제곱미터, 건물 총넓이 932제곱미터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이며, 기념관 내부 전시관에는 선생의 제자이며, 외솔회 명예회장인 김석득 교수와 외솔회,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로부터 기증받은 ‘한글갈’ ‘우리말본’ ‘책상’ ‘타자기’ 등 외솔 선생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 외솔기념관 전시관 모습     © 외솔기념관

▲ 외솔기념관 전시관 안의 전시품들(선생이 평소 즐겨입던 두루마기, 조선민족갱생의 도 , 한글갈, 중등조선말본(시계방향)     © 김영조

▲ 외솔기념관 뒤의 외솔 생가 ⓒ     © 외솔기념관
특히 전시관에는 선생이 서재에 앉아계시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피부색이나 검버섯까지 그대로 선생이 살아계신 듯하여 깜짝 놀랄 정도이다. 그리고 선생의 육필 원고를 비롯하여 불후의 명저인 ≪한글갈≫, ≪우리말본≫, ≪조선민족 갱생의 도≫ 등 책과 함께 평소 즐겨 입으시던 두루마기 등을 전시하여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기념관 안에는 개관식 부대행사로 한글서예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더불어 눈여겨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다만, 기념관은 외솔 선생을 생각한다면 규모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집들을 더 사들이고 이 층 이상으로 지어 널찍한 전시공간을 꾸렸으면 하는 아쉬움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기념관이 되게 하려면 많은 공간을 두어 특별전시, 강의, 회의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그는 이 시대 우리가 자랑스럽게 세상에 내놓는 한글의 바탕을 만든 분이다. 세종이 그 위대한 훈민정음을 창제했음에도 모든 이가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외솔의 큰 공이 없었더라면 그 위대한 훈민정음이 절름발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이 시대 우리는 외솔 기리기를 정성껏 해야 하고 선생의 뜻을 받들어 한글을 세계인이 함께 쓰는데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울산의 외솔기념관 개관은 규모가 작다는 아쉬움에도 그 뜻이 자못 큰 것임이 분명하다.

▲ 외솔기념관 앞의 표지석     © 김영조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3/24 [14: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