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한글학회 전 회장인 허웅 교수가 돌아가신 20주기를 맞이해 한글학회 임원들과 허웅 교수의 서울대 언어학과 제자들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허웅 교수 무덤을 참배하고 왔다. 허웅 교수는 1970년 한글학회 회장을 맡고 34년 동안 한글학회 회장으로 한말글을 지키고 빛내려고 애쓰는 가운데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는 무리와 벌인 문자전쟁을 승리로
▲ 2024년 1월 25일 허웅 교수 20주기를 맞이해 권재일 한글학회 이사장과 김주원 회장, 그리고 서울대 언어학과 제자들과 한글학회 임월들, 37년 동안 허웅 교수를 모시고 한글운동을 한 한말글문화협회 리대로 대표가 함께 경기도 마석모란공원에 있는 허웅 회장 무덤을 참배했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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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끈 한글 지킴이었고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낸 교육자였으며, 최현배 교수 다음로서 한글을 빛낸 큰 학자였다. 그런데 그분의 거룩한 국어독립운동 업적과 삶을 세상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고 국어학자로만 알고 있어 함께 국어독립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다. 아직도 언어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지 근성이 판치기 때문이다.
그 허웅 교수를 나는 1967년 국어운대학생회 지도교수였을 때부터 한글운동 한 것을 시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37년 동안 함께 일본식 한자혼용을 하자는 무리와 싸웠고 돌아가시고 20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로서 허웅 교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과 꿈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내가 어제 허웅 회장 무덤 앞에 서니 함께 한 여러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허웅 교수를 만나 처음 기쁜 일은 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교수로 모시고 박정희 정부에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한 것이 첫 승리였는데 1970년 허웅 교수가 한글학회 회장을 맡은 뒤는 계속 나와 함께 일본식 한자파와 싸우느라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리고 1990년대는 한자파가 마지막 발악하는 바람에 치열하게 싸웠고, 허웅 회장은 그 한자왜란을 승리로 이끈 뒤 바로 돌아가셨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승리하고 돌아가신 것과 닮았다.
▲ 박정희 정부가 한글전용정책을 펴게 한 국어운동대학생회는 1969년 허웅 교수와 함께 진관사 뒤 북악산으로 들늘이를 가서 승리를 기뻐했을 때 찍그림(오른쪽부터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회장 리대로, 허웅 지도교수, 여학생 건너 서울대 국어동학생회 회장 이봉원)인데 허웅 교수와 내 등 뒤 바위에 쓰인 ‘홁’이라는 한글 글씨가 남다르게 멋있어 보였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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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지난날 친일 한자세력은 광복 뒤부터 계속 한글을 죽이려고 했는데 1990년대는 그들이 최후 발악을 할 때로서 연산군 때 다음으로 가장 큰 한글 위기였다.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 제자들이 중심으로 뭉친 세력은 꼭 바꾸지 않아도 될 한글맞춤법을 손대서 수십 년 동안 한글학회가 애써 만든 “우리말큰사전”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짜장면’이란 말을 못 쓰게 하고 ‘자장면’을 표준말로, ‘읍니다.’를 못쓰게 하고 ‘습니다.“로, ’몇 일‘을 며칠’로만 쓰게 한 것들이 그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일제 때부터 한글학회가 쌓은 한글 지키기 업적과 권위를 짓밟아 자신들 뜻대로 일본식 한자혼용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 친일 일본식 한자혼용 파들은 1986년 국어연구소(소장 김형규)를 만들고 한글맞춤법을 개정해 한글학회가 만든 우리말큰사전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밝힌 한글학회 신문 광고.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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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은 1990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고 국어정책을 문교부에서 문화부(장관 이어령)로 옮기면서 국립국어연구원(원장 안병희)은 만든 뒤에 나라 돈 100억 원을 들여서 남북통일을 대비해 남북통일대사전을 만든다고 했으나 이 또한 한글학회가 일제 때부터 우리말 사전을 만든 업적과 권위를 짓밟으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서 일본식 한자혼용을 좋아하는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같은 일제 국민교육 세대 정치인들과 언론 권력인 조선일보, 국회, 재벌들까지 합세 해 한글로 쓰던 공문서를 일본 한자말을 한자병기 하겠다고 나서고, 국회에선 박원홍 의원이 앞장서서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한자혼용법을 만들려고 꾀했다. 사방이 한글 적이니 허웅 교수는 온 힘을 다해 그들과 맞서 죽을 각오로 싸워서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끄느라 지쳐서 2004년에 돌아가신다.
▲ 1999년 문화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심재기) 공문서 한자병용을 추진하고, 국회(박원홍 의원)까지 한글전용법을 폐기하고 한자혼용법을 만들겠다고 하니 허웅 교수도 이깨띠를 두루고 투쟁에 나섰을 때 찍그림이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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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고 돌아가셨듯이 허웅 회장도 문자왜란 때 일본식 한자혼용을 꾀하는 한자왜적들과 싸우다가 지쳐서 돌아가셨다. 이렇게 싸워서 한글세상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저절로 된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어제 허웅 회장님 무덤에서 ”우리 스승 허웅 교수님은 정부까지도 한자편인 1990년대 한자왜란 때 일본식 한자왜적과 싸워 승리로 이끌었다. 오늘날 미국말을 지나치게 섬기고 있어 우리말이 또 위기를 맞았다. 우리 제자들이 뭉쳐서 다시 이 위기를 벗어나자.“라고 함께 온 이들에게 호소했다, 아직도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근성이 판치고 있어 우리 말글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허웅 교수 같은 분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더 캄캄하고 어려운 시대에도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 우리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른다며 한글을 살린 주시경 선생과 선열들을 생각하며 깨어있는 우리들이 우리 한말글을 빛내는 것이 역사와 시대사명이고 책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언어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근성이 짜든 자들이 사라지고 한글을 살리고 지킨 국어독립운동을 알아 줄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아직 이 나라 정부와 사람들은 외면해도 하늘에 계신 선열들께서 우리들을 밀어주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더욱 힘차게 우리말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 허웅 교수 20주기를 맞이해 한말글문화협회 리대로 대표(왼쪽)는 허훙 교수 국어독립 운동 정신을 본받자고 호소하고 참석자들은 허웅 교수님 영전에 절을 하고 그러기로 다짐했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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