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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좋아하는 정부와 돈만 밝히는 정부
[정문순 칼럼] 돈 밖에 모르는 MB정부, 행정구역 통합에 사라지는 것들
 
정문순   기사입력  2010/02/07 [20:44]
노무현 정부의 국정 지표가 ‘큰 것이 아름답다’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그것은 ‘큰 것만 아름답다’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돈을 좋아했고 돈에 굴복한 반면, 이명박 정부는 돈 밖에 모른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낱낱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이 되게 하려면 작은 것은 큰 것에 복속시켜서라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 이들은 큰 것은 작은 것의 단순 합산이 아니라 작은 것의 희생과 퇴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앞에 조금의 주저나 망설임도 없다.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보여주는 빈약한 철학이나 맹목성은 그만의 전매특허이거나 낯선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시골에 분포한 소규모 학교가 통‧폐합의 재물이 되어 싹쓸이 당할 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효율성을 내세우는 정부에게 통합이니 통‧폐합이니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있는 부문을 자르고 하나로 붙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권력기구를 통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직 만만한 지방 소도시나 시골 분교만이 대상이다. 
 
▲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노무현 정부는 규모가 작은 학교는 문 닫고 큰 학교와 합치는 것을 복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다. 학교 줄이기는 교육 당국도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애초에 교육적 차원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차원에서는 오히려 작은학교를 살리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교육 주무부처에서 추진하는 방향을 정부가 정반대로 되돌린 격이었다.
 
참여정부의 관심은 교육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었다. 2006년 정부는 학생 수 60명 이하 학교를 우선 폐교 대상으로 삼았고, 2009년까지 976개 학교를 통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3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도 섰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학교가 없어지자, 통학버스 타고 1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아이들은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고, 그러다 아예 전학을 갔다. 학교 숫자를 줄이면 얼마나 돈을 아낄 수 있을까 주판알을 튕기던 정부의 셈속은, 마을에 학교가 없어지면 아이들도 없어지고 학교로 인해 근근이 버티던 마을 공동체가 돌이킬 수 없이 와해되는 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은 학교 통폐합이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당시 이해찬 총리는 작은 학교일수록 아이들에게 오히려 비교육적이라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통‧폐합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통합이 누군가의 ‘폐’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노무현 정부는 차라리 솔직했다. 그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통합이라는 말만 내세우고 있다. 자율통합은 말뿐일 뿐 관변단체까지 동원하여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에서 창원, 마산, 진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 뜻대로 순항을 타고 있는 지역이다. 벌써 당국은 통합시 명칭 공모를 내걸었고, 지역 언론들은 앞장서서 여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신흥 도시 창원은 마산과 진해를 아우르는 큰 도시로 발돋움할 꿈을 꾸고 있고, 마산과 진해는 전국 수위권의 개인 평균 소득을 자랑하는 도시가 가진 경제력에 기대려고 하는 등 통합에 대한 3개 도시의 정치권은 저마다 동상이몽에 사로잡혀 있다. 지역시민단체와 힘 없는 진보정당만 주민 투표를 거치지 않은 것에 외롭게 반발할 뿐, 진작부터 같은 생활 벨트에서 살아와서인지 자신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지역 정치인들의 처사에 반발하는 여론도 별로 없다. 권력자들이나 시민들이나 모두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덩치가 커지면 달라붙는 이익이 생기리라 침을 흘리는 점은 다르지 않다.  

세 도시의 주민들은 생활권을 같이 해왔으므로 통합이 되면 행정 체계의 일원화로 생길 수 있는 이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도시가 풍기는 고유한 색채와 개성은 확연히 다르다. 진해나 마산 토박이들은 창원에 오면 소란하고 야단스러움에 정을 붙이기 힘들다고 하며, 반대로 창원 거주자는 인접 도시에서 후락한 소도시의 쓸쓸함에 견디지 못한다. 

군사도시라서 고층 건물을 올릴 수 없는 진해는 마치 시계가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낮은 담벼락으로 이어진 골목길, 명조체 글씨의 ‘연쇄점’이라는 간판이 달린 구멍가게, 심야에 인적이 없는 거리가 펼쳐져 있는 등 수십 년 전 도시 같은 풍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인기가 있다. 
 
▲ 지난해 9월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구역 통합'을 강력 반대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 CBS노컷뉴스

개발이나 발전이 지체된 점에서는 진해와 마산은 다를 바 없지만,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해군과 군속이 경제의 주축인 진해시에 비해 과거의 영화를 반추하며 뒤안길로 밀려난 마산은 현재로서는 도시 경제를 지탱해갈 만한 뚜렷한 색깔을 찾기 힘들다.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에 기반한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수십 년째 낙후한 살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저항의 도시라는 자부심은 자신들이 물리쳤던 정권의 후신들에게 권력과 영화를 몰아주는 행태에 무색해지고 있다. 
 
‘열린사회 희망연대’ 같은 마산지역의 시민단체는 이은상, 조두남 등 친일과 친독재 인사를 기리는 후예들이 지역에서 힘깨나 행세하는 현실에서 독재 정권과 싸웠던 저항의 기억을 길어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경제력이 앞선 도시와의 통합은 소도시의 이런 노력을 한낱 부질없는 일로 돌려놓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덮어놓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지역민의 정서를 부끄럽게 할 만한 과거의 영광스러운 기억을 조금이나마 반추할 기회마저 영영 없어질 것이다. 진해의 경우 아이들 놀이터인 작은 골목길이 앞으로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경제력이 다른 행정구역들간의 통합이 고루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쪽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은, 경남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삼천포시’가 인근 지역과의 통합 후 이름도 정체성도 날아가 버리고 ‘사천시’의 일부로 흡수된 운명을 보면 안다. 그 사천시마저 이제는 자신보다 덩치가 우세한 인접 도시와의 통합이 거론되는 처지에 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소수의 아이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마을 공동체, 정겨운 골목길, 지역민의 자존심을 살리는 역사의 기억 등을 경시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수천년 전의 역사 유물이나 유적지는 땅에 묻어도 실체나 흔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린이가 떠나간 마을과 사라진 골목길은 한번 갈아 엎어지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원상복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허물어지게 한다는 점이, 큰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자들의 가장 큰 위험성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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