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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환상을 깨는 미래인?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경영 19
 
이동연   기사입력  2003/10/25 [21:47]

지난 주에 이어 자연의 사계절과 인생의 주기가 조화에서 부조화로 이동하는 현상을 살펴 보아야 하나 한 주 뒤로 미루고  재 신임 카드를 던진 노무현 대통령을 미래인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     ©ytn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속에는 미래인의 모습이 분명히 들어 있다. 여기서 미래인이란 문명이  수직구조 패러다임에서 수평구조 패러다임으로로 완전히 전환한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평균치 모습을 지칭한다. 

문명의 패러다임은 경제적 관심대상의 변천과 함께 한다. 농경 사회 때는 생활 필수품(commodities)이 최고의 관심 대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먹거리를 찾아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급했다.  

가을에 말려 놓은 시래기국으로 겨울을 겨우 보내고 보릿 고개라 불리는 봄엔 아지랭이가 피어 오르자 마자 여기저기 달래, 냉이, 나물을 캐어 먹고 여름철을 맞아 죽도록 농사지어 놓으면 왕실에서 걷어 가고 관가에서 털어 가고 남은 것은 왜구들이 털어 갔다.  

누구를 한탄할 겨를도 없이 조금 남은 곡물들을 모아 종자만 남겨두고 아껴 먹느라 채워 지지 않는 배를 초근목피로 때우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왕과 귀족은 하늘이 내리신 고귀한 분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다가 산업 혁명의 물결이 한반도에도 들어와 공산품(goods)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생산자의 시대가 되자 너도나도 물건을 생산하기 시작 생산품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생산용품의 절대 양이 소비욕구의 양을 초과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던 때에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여 경제적 최고의 가치가 공산품에서 서비스(Service)로 옮아 갔다.  

이 때부터 생산자의 시대에서 소비자의 시대로 접어 들게 된 것이다. 비로소 소비자의 주권이 가능해졌다. 소비자가 주인이 되자 그대부터 생산자들- 여기에는 물건 뿐 아니라 지식의 유포자도 포함 된다-은 소비자의 눈치를 보면 소비자의 환심을 사려 했다.
   
사업가들은 고객들을 세분화하여 수요층들의 서로 다른 욕구에 맞게 매장을 만들고 상품을 디자인하면 포장하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이랴 종업원들도 고객을 대하는 태도, 화술, 예절, 애프터 서비스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건을 만들어 놓고 쓰고 싶으면 쓰고 말고 싶으면 말라던 식은 더 이상 서비스 시대에 통하지 않게 되었다.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고객의 마음을 열어야만 고객이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이때 까지만 해도 진정한 주권이 소비자에게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 소비자는 불특정 다수이니까. 소비자는 군중 속의 한 사람이다. 생산자가 군중의 여론을 등에 업으면 군중 속에서 익명의 한 사람뿐인 소비자의 얼마쯤은 무시해도 좋았다.

그래서 재화와 지식의 생산자들은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시하고 익명의 대중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얼굴 없는 대중에게 봉사했다.

포장지만 그럴듯하지 별 볼 일 없다고 몇 사람이 느껴도 계속해서 립 서비스를 잘하고 여론을 조작해 대중 앞에 인물로 보여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대중의 환심을 사면 몇 사람의 불평쯤이야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속된 말로 '뭐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식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전략이 얼마큼 통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약발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문명의 방향이 외모의 서비스에서 내용의 서비스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는 사적으로 자기를 밀어준 지역구민을 홀대하고 또는  검은 돈을 챙겨 외국에 빌딩 사놓고는 공석에 와서는 '국민을 위하여...' 어쩌고 저쩌고만 잘해대면 별 문제 없이 통하였다.
 
그러나 군중의 핵심인 개인을 얼마든지 무시하고 익명의 집합체인 군중앞에 가서는 양반 노롯하던 사람들에 대한 착시현상이 목하 교정되어 가고 있다.

정보화사회가 마이크를 군중 앞에선 조작된 영웅에게만 주던 시대에서 군중속의 개인들에게 일일히 마이크 핀을 나누어 주면서부터 대중조작의 여지가 줄어 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마이크의 차이는 있다. 조작된 영웅이 갖고 있는 마이크보다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이크가 아직은 작지만 그래도 제 목소리를 사방으로 낼 수 있다는 현실이 크나큰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 최고의 경제적 가치는 립서비스에서 점점 더 실제적 체험(experiances)으로 전환해 가고 있다. 이 체험의 시대는 내용없는 포장지만의 환상이 벗겨 지는 시대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 언행들은 적어도 포장지를 걷어 내는 시대적 패러다임에는 맞는 행동이다. 저자 거리에서 누구나 쉽게 마구 해대는 이야기들을 그 지엄하신 나랏 님의 입에서 흘러 나올 때 기존의 포장 문화에 환상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기존 문명 패러다임에 덜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함이었고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가치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단지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어울리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뺄셈 정치까지도 어찌보면 미래 문명 패러다임에 어울릴 수 도 있다. 미래문명은 더하기나 쌓음이 아니라 나눔이며 뺄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수행지지도가 30%를 밑돎에도 불구하고 재 신임에는 50%이상이 찬성하는 기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노무현 대통령의 해체적, 자기 폭로적 모습이 문명의 추이에는 맞아 떨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실력에는 불만이 많으면서도 재 신임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은 과거의 포장지 정치로 회귀하고 싶지 않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심쩍어 하는 부분은 그의 진정성과 신뢰성이다. 해체과정은 옳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해체냐이다. 해체가 또 하나의 기만적 포장이 아니길 의심의눈초리로 지켜 보고 있다. 

'컴플렉소노믹스'의 저자인 생물학자 로저 르윈은 바이오 테크시대의 경영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미래에도 계속 사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신뢰의 구축, 책임감, 경청, 타인의 인정이다.'
 
말로 듣고 포장지만 보고 선택하던 시대는 지났다. 실제 사용해보고 경험해 보고 선택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렌트 사업이 번창한다. 집, 자동차, 그릇, 심지어 결혼까지 렌트의 대상이 되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렌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의 깨고, 들추며, 솔직한 의사 표현 방식은 현대 문명의 패러다임에는 분명히 맞다. 그래야 그나마 리얼리즘이 살아난다. 그러나 언제든지 해체(解體)는 해탈(解脫)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해탈을 위한 해체일 때 만인의 공감을 얻는다. 

해체가 또 다시 자기 성을 쌓기 위한 기득권의 교체 작업이라면, 설령 그렇게 해서 자기 성을 쌓는데 성공했다 해도 또 다시 해체 대상이 되고 만다. 단순한 기득권의 교체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내용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작업이어야여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은 포장지의 환상을 깨는 미래인을 닮았다. 그러나 그 언행이 또 하나의 버려질 포장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성(眞情性)이 담보되어야 한다.

정치인들 때문에 지겨운 수사(修辭)가 되어버린 '국민을 위하야...' 라는 말이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진정성을 띤다면 그때 진정한 미래인이라 평가를 받을 것이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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