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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계에서 그리스도 고백하기
미국 신학자 200인 선언문
 
정연복   기사입력  2009/09/16 [12:31]
폭력의 세계에서 그리스도 고백하기 - 미국 신학자 200인 선언문
 
우리가 사는 세계는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예수는 "평화를 만드는 자들은 복이 있다. 저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했다(마태 5:9).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아무런 죄 없는 이들이 테러 공격에 의해 점증하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했다(마태 5: 44) 이 말씀들은 결코 손쉬운 말씀이 아니며 오늘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게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이 배반이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9·11 테러공격 이후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이 본문 말씀에 근거한 설교들을 들어왔는가?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어디 있는가? 기독교 현실주의라는 것이 미리 자리를 비워둔 끝없는 전쟁의 미래로 우리 자신을 방임하는 것인가? 고문과 대량 시민 살상에 눈감는 것을 의미하는가? 지성과 자제보다는 공포와 원한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교회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고백이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에 의해 마음대로 사용될 때에는 그러한 고백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 미국 정부의 최고 집단에서 나오는 "전쟁의 신학"은 우리의 교회에도 스며들고 있다.
- "의로운 제국"이라는 용어가 점점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 "악의 세계를 제거하라"는 미국의 "사명"과 "신적인 명령"에 대한 언급에서 하나님, 교회, 국가의 역할이 혼동되고 있다. 
 
나라의 안전 문제를 보장할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어느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적인 협의에서 얻은 지혜를 거부하는 정책을 결코 종교성에 의해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두려움의 정치에 의해 악화된 정치적 우상에서 나온다.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고백이 필요하다.
 
1.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국가적인 한계를 넘어선다.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은 온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충성은 국가적 정체성에 우선한다. 기독교가 제국과 타협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뢰를 잃는다.
 
우리는 어느 민족-국가를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한 1:5)고 묘사할 수 있다는 거짓된 가르침을 거절한다.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이다. 어느 정치 혹은 종교 지도자라 할지라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이 말씀을 왜곡할 권리는 없다.
 
2. 그리스도는 전쟁을 반대하는 강력한 담대함을 기독교인들에게 위탁하셨다. 현대의 전쟁이 불러올 억제할 수 없는 파괴력은 이 위탁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굳게 서서 기독교인들은 전쟁의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하고,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소리 높여 말해야 하며, 나라가 전쟁으로 나아가기 전에 모든 대안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독단적인 정책보다는 국제 협력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는 테러를 막기 위한 전쟁이 윤리적이며 법적인 규범들에 앞선다는 거짓 가르침을 거절한다. 고문, 교묘히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는 폭탄폭파, 무차별 대량 살상용 무기 사용- 이런 것들은 결과와 무관하게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3.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우리의 적대자들의 눈 속의 티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명하신다. 선악의 구별은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 혹은 이 집단과 저 집단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곧장 가로지른다.
 
한편으로는 적대자들을 사악한 존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르치고, 다른 편에서는 오직 덕만 내세우며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가르치는 거짓된 가르침을 우리는 거절한다. 우리는 미국은 회개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는 믿음을 배격하고, 미국이 세계의 모든 악을 드러낸다는 주장도 배격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롬 3:23).
 
4.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원수사랑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롬 5:8, 10).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온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의 원수에게 사랑을 행할 의무가 있다. 원수사랑은 단순히 적대적인 계획과 지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어느 인간도 악마처럼 만드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법의 보호 밖에 있는 존재로 무시될 수도 있다는 거짓 가르침을 배격한다. 우리는 폭력의 오용을 불러오는, 인지된 적을 악마로 만드는 것을 배격한다. 우리는 포로를 잡은 이가 얻을 이익이 무엇이든지 막론하고 포로들을 학대하는 것을 반대한다. 
 
5. 그리스도는 겸손은 용서받은 죄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겸손은 모든 정치적 불일치를 견디게 하고, 우리 자신의 정치적 이해들도 복잡한 세계에서 오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미국을 위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나 미국에 반대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미국의 정책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은 악행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거짓된 가르침을 거절한다. 특히 이런 가르침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세계를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나누었던 마니교의 이단이 보여주었던 표현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이 섬겨야 할 권위를 가지신 분이거나, 아니면 귄위를 가지는 분이 아닐 것이다. 그의 주권은 지상의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밀려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씀을 정치적 선전의 목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어느 민족-국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필수불가결한 도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국민으로서 그들의 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원칙들을 기억하기를 권한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이 문제 많은 세상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은 우리 소명의 핵심이다.
(박충구·감신대 교수)
 
* 이 고백은 2005년 7월 28일 미국의 신학자 200인이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빚어낸 "전쟁의 신학"이라는 신학적 오용을 거부하는 선언이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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