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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조 돈벼락' 슈퍼 추경? "정치 참~ 쉽죠잉"
[하재근 칼럼] 임시직과 단기간 소득보전용이 대부분, 이익은 부자들에게
 
하재근   기사입력  2009/03/25 [10:51]
29조 원짜리 돈벼락이 떨어졌다. 이른바 ‘슈퍼 추경’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돈을 펑펑 쓴단다. 우리 국민들은 아닌 밤중에 로또 맞았다. 국민 1인당 59만 원, 가구당(2인 이상 가구 기준) 214만 원이 떨어지는 셈이라고 한다. 정부는 5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만약 지금이 봉건왕조 시대라면, 그래서 대왕마마가 내탕금을 털어 구휼자금을 푸는 것이라면 나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저 돈은 대왕마마의 내탕금이 아니라 국가재정이다.  

토론회에서 정부 측 인사들은 민생대책을 추궁하면 이런 저런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며 항변한다. 경제위기 대책을 추궁하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쓸 것이라며 항변한다. 슈퍼 추경은 그런 논리의 근거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논리 말이다.  

하지만 결국 국가재정을 국민들에게 푸는 것이다. 정권의 돈을 푸는 게 아니다. 결국 우리 국민이 감당해야 할 돈이다. 뒷감당은 국민이 하고 생색은 앞으로 4년밖에 안 남은 현 정부가 낸다. 그 4년밖에 안 남은 정부가 뒷감당이 어떻게 되건 말건, 지금 당장 돈을 퍼부어 민심을 사겠다는 것이 슈퍼 추경의 본질이다.  
 
▲     © 청와대

포퓰리즘이란 로마 시대에 위정자들이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을 쓰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말이다. 로마 황제는 자기 돈으로 민중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다. 반면에 슈퍼 추경은 국민돈이다. 재주는 국민이 넘고 생색은 정권이 낸다. 로마 황제보다 더한 포퓰리즘이다.  

- 슈퍼 추경은 슈퍼 쪽박 -  

이런 광경을 상상해보자. 어느 집안의 아버지가 돈을 벌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게 됐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은 줄일 수 없으니 죽을 맛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말한다.  

“얘들아, 걱정 마라. 아버지가 돈 줄게!”
“와~ 아버지 만세. 취직하셨어요?”
“아니, 사채 빌렸어. 그 돈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슈퍼 용돈’을 주마.”
“아니, 그건... 그 돈은 어떻게 갚나요?”
“아, 그거야 니들이 나중에 돈 벌어 갚아야지.”
“아버지는 뭘 하시고?”
“나야 계속 놀아야지.”
“OTL ... ” 
 

슈퍼 추경은 딱 이런 구조다. 저 아버지가 돈을 안 버는 것처럼 우리 국가도 돈을 벌 생각을 안 한다. 국가의 수입은 세금이다. 우리 국가는 세금을 안 걷으려 한다. 감세를 추진한다. 그러면서 무책임하게 돈은 ‘슈퍼’ 규모로 쓰려 한다.  

돈 안 버는 쪽으로도 기록적이고, 돈 쓰는 쪽으로도 기록적이면 남는 건 쪽박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쪽박을 차더라도 현 정부는 쪽박을 차지 않는다. 왜냐고? 4년이면 자리 털고 사라지니까. 쪽박은 남은 사람들의 몫일 뿐이다. 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바로 ‘우리’들 말이다. 슈퍼 추경은 ‘슈퍼 쪽박’이었던 것이다.  

- 황당한 슈퍼 포퓰리즘 -  

나중 생각 안 하고 당장 돈 펑펑 써서 경제 돌리는 게 국가경영이라면, 왜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골머리를 앓겠나. 이건 거의 개그콘서트 수준이다.  

“경제가 어렵다구요? 스텝 1! 짜잔~ 돈을 땡겨서 퍼주세요. 부채가 어떻게 되건 말건. 정치 참~ 쉽죠잉~”  

개그맨 정치다. 가계경영도 이런 식으론 안 한다. 국가가 돈을 안 벌고 쓰기만 하면 쌓이는 건 국가부채다. 지금처럼 감세가 추진되며 동시에 경기가 침체되면 국가수입은 점점 더 줄어든다. 대신에 민생복지 때문에 써야 할 곳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 간격이 커지면 결국 국가부도사태가 터진다.  

이번 슈퍼 추경 29조 원 중에 11조 원이 세수결손 보전에 들어간다. 세금이 덜 걷힌 액수를 부채로 틀어막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세금을 덜 걷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이고, 그 이익은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부자이익을 보전해주려 국민 돈으로 슈퍼 추경이 편성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게 뭔가?  

돈을 쓰는 것도 그렇다. 이왕 쓰려거든 잘 써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빚을 짊어지는 보람이 있다. 그 용처를 잘 정하라고 국민이 정권을 맡긴 것이다.  

우리 정부는 용처를 정했다. 어디에? ‘삽질’에 쓴단다. 이건 또 뭔가? 물론 슈퍼 추경 중에 삽질에 쓰이는 건 일부분이지만, 애초에 토건예산을 민생예산으로 돌렸으면 슈퍼 추경을 안 했어도 됐다. 엄한 데다 돈을 써놓고 돈을 더 융통해 국민에게 쓰겠다는 것이 슈퍼 추경이다.  

국민에게 쓰는 것도 그렇다. 임시직이나 단기간 소득보전용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구조적으로 민생이 나아지는 개혁을 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다. 민생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대대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임시직이 아닌 정규직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사회적 고용, 공공고용으로 해결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다. 이러려면 감세를 포기하고 정규 예산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임시변통으로 당장 빵이나 나눠주겠다는 것이 슈퍼 추경이다. 정말 대책없는 포퓰리즘이다. 이런 국가경영은 애들도 하겠다. 
 
“정치 참~ 쉽죠잉~”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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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25 [10: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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