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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마틴 루터 킹의 길, 무슬림 말콤 엑스의 길
[정연복의 민중신학] 말콤 엑스의 생애와 어록-"기독교는 백인의 종교"
 
정연복   기사입력  2009/02/12 [22:46]
1. 말콤 엑스의 생애
 
양키들을 "파란 눈을 가진 악마"라고 표현하며 흑인으로서의 독립된 주체성을 가지고 흑백분리 독립이라는 명제로 미국 백인사회에 정면 도전한 사나이가 바로 말콤 엑스(Malcolm X)입니다.
 
말콤 엑스(1925~1965)의 '엑스'라는 성은 그가 회교(Black Muslims)에 입교하면서 원래의 성을 버리고 대신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흑인들의 성은 원래 그들 조상의 것이 아니고 이들을 노예로 부리던 옛날의 백인 주인들이 멋대로 붙여주었던 것이니만큼, X자를 써서 흑인의 빼앗긴 이름을 상징한다는 것이 흑인 회교도들의 입장이었습니다.
 
말콤은 1925년 5월 19일 미국 중부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6남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였으며, 신자들을 상대로 선조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귀향할 것을 설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말콤의 아버지는 광신적 백인 우월주의 폭력 단체인 KKK 단원들에게 참혹하게도 산채로 선로에 놓여져서 두 동강으로 살해되었습니다. 혼혈이었던 어머니 루이즈는 이 일로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주 복지국 직원들이 어느 날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갔으며, 말콤과 남은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말콤은 얼마 후 퇴학 처분되어 거리에서 말썽을 일으키다가 미시간주 랜싱 소년원에 수감되었습니다. 소년원에서 8년제 중학교에 들어간 말콤은 마음을 잡고 공부에 전념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반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인종차별을 피부로 느끼는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장래 직업을 묻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변호사가 되겠다"고 대답하자 주위 선생님들 모두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목수나 수리공이 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백인 학생들에게는 의사나 변호사가 될 것을 권유하는 것을 본 말콤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이후 백인들에 대해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말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뉴욕 할렘가로 진출했습니다. 이때부터 무장강도범으로 체포되기까지 약 7년 동안 도박과 범죄, 마약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살았습니다. 이때까지 말콤은 그저 그런 건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말콤이 수감된 지 2년째 되던 해, 동생 레지날드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흑인을 위한 '진짜' 종교에 관해 이야기했고, 백인들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말콤은 알라를 믿게 되면서 철저한 행동주의자로 변신했습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그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사전을 통째로 외워버렸습니다. 독서에 전념한 말콤은 5년 동안의 공부로 시력이 지독히 나빠졌지만, 남들이 대학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거의 모든 명저와 사상가,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미국 역사도 주의 깊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일라이자 무하마드(미국 이슬람 지도자)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썼습니다. 1952년 가석방으로 자유를 찾은 말콤은 성을 X로 바꾸고 이슬람 전도사로 변신해서 할렘의 옛 이웃을 찾아다니며 백인의 인종정책을 비판하고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표방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대부분의 백인과 흑인으로부터 찬양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콤 X는 타협할 줄 모르는 직선적이고 호전적인 웅변으로 냉엄한 현실을 자각한 소수의 흑인들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들로부터 비난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말콤 엑스가 흑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그가, 성공한 흑인이라 불리며 백인들로부터 인정받는 흑인 지도자들에게도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이었지요.
 
"기독교가 미국에서 이룩한 가장 큰 기적은 백인 기독교도의 수중에 있는 흑인들이 비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2천2백만이나 되는 흑인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백인의 꼭두각시인 흑인 지도자들, 목사, 학위를 이것저것 내세우고 다닌 학식 있는 흑인, 그밖에 가난한 흑인 동포들을 등쳐먹으며 살쪄온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흑인 대중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인 것이다!" 말콤 X의 말입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새롭게 하기 위해 1963년 회교 성지 메카를 순례하였고, 이듬해 '사단법인 회교사원'을 조직하고 보다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1년 동안 말콤은 완전히 새로운 사상과 태도를 가진 지도자로 변신했고, 말콤은 곧이어 OAAU를 조직했습니다. 종교적 편견을 뛰어넘어 미국 흑인들의 정치·경제·문화 공동체를 조직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말콤의 두 번째 변신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한 채 종국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1965년 2월 21일 OAAU 연설회장에서 정체 불명의 흑인 괴한들의 집중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살해된 것입니다.
 
2. 말콤 엑스의 어록
 
* "백인이 흑인에게 '왜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강간범이 강간당한 이에게, 또는 늑대가 양에게 '왜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똑같다. 백인은 흑인의 증오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다."
 
*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이다. 백인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래서 백인이 해석한 성서는 백인이 아닌 수억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이념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백인이 총칼로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그들은 항상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그 지역 사람들을 '이교도' 또는 '미개인'이라고 부르면서 굴복시켜 왔다. 총칼을 휘두르며 침략했고, 그 총칼 뒤에 선교사들이 따라 들어와서 착취한 것이다."
 
*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집회를 평가하면서
 
"소방차와 진압봉, 경찰견으로 무력진압만 받아오다가 당연한 평화시위를 한번 보장해 준 것이 그리도 감격스러운가? 엄청난 인권 신장과 혜택을 이미 베푼 듯이 매스컴을 앞세워 아직은 작은 것에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는 순박한 흑인들을 이용한 정치적 코미디일 뿐이다. 흑백 갈등은 이러한 전시행사 정도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며,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시한폭탄처럼 내동댕이쳐진 빈민계층이 장차 큰 사회문제가 될 것임은 물론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마저 위협이 될 것이다."
 
*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또 하루를 빌렸구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이슬람'의 일원에게, 또는 어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아니면 그들에게 고용된 무지한 흑인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다. 나는 지금 매일 하루의 목숨을 빌리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백인들은 그네들의 언론에서 나를 '증오'의 상징으로 이용했던 것처럼, 죽은 나를 이용할 것이다. 두고 보라. 나는 '무책임한' 흑인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들이 '책임감 있다'고 치는 '흑인지도자' 치고 흑인을 위해 뭔가를 성취하는 자는 없다. 나는 백인들이 나를 적대시하고 더 세차게 공격할 때마다 내가 미국의 흑인을 위해 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신념을 더욱 확고히 느낀다. 만일 내가 미국이라는 몸에서 '인종차별주의'라는 악성 종양을 도려내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고 죽을 수 있다면, 미약하나마 진리의 빛을 드러내고 죽을 수 있다면, 그때 모든 공로는 알라에게 돌려져야 하고 오직 과오만이 나의 것이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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