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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동아리교회, 신년 첫 주일, 우리는 그냥 쉬었다
[류상태의 예수를 찾아] 부지런한 사람보다 게으른 사람을 위하여
 
류상태   기사입력  2009/01/04 [11:08]
2009년 신년이 밝았네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1월 1일 0시 예배를 드렸겠고, 1월 4일에는 신년을 맞는 첫 주일예배도 드렸겠지요. 그런데 우리 예수동아리교회는 둘 다 빼먹고 그냥 쉬었답니다.

왜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신년 첫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한 해를 설계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지요. (이런 말 할 때마다 가족이 없거나 헤어져 있는 분들이 마음에 걸리네요.^^;;) 많은 한국 교회가 주일을 빼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수선을 떨기도 하지만, 우리의 아빠 하느님께서는 교회출석 못지않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행복한 삶을 꾸리는 일을 더 소중히 여기실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희 예수동아리교회의 첫 예배는 1월 11일에 모인답니다. 1월의 마지막 주일인 25일에도 쉬기로 했어요. 공휴일과 겹치는 주일은 ‘가정의 날’로 정해 무조건 쉬기로 했는데 그 날이 설 연휴거든요. 부모님도 찾아뵈어야 하고, 차례도 드려야 하고(꼭 차례를 드려야 한다는 건 아니구요, 예배로 드려도 좋아요.^^), 명절이니만큼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한해 덕담을 나누며 오순도순 보내야지요. 이보다 더 큰 경천애인(하느님 공경 이웃 사랑)의 실천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주일성수한답시고 그 아름답고 소중한 기회를 놓치거나 축소시켜서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결국 신년 첫 달에 저희 예수동아리교회의 예배는 두 번밖에 없는 셈이 되네요.(예배라고는 일주일 통틀어 주일예배 한번밖에 없으니까요.) 어쩌면 벌써 눈치를 채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저 교회 담임목사라는 놈, 무척이나 게으른 놈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하셨다구요? 빙고~!! 맞았습니다. 저는 무척 게으르고 걸음이 늦답니다.

역사를 돌아보세요. 게을러서 문제 일으킨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대부분 너무 부지런하고 무언가 해야 된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역사를 말아먹는 경우가 많아요. 현대 문명의 위기도 너무들 부지런해서 이것저것 개발한다고 들쑤신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제 생각에는 게으름이 자연의 순리에도 맞는 것 같아요. 꼭 필요할 때만 일하고 꼭 필요할 때만 먹고... 동물들이 그렇게 살지 않나요?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느 선교사가 식인종 선교에 성공했대요. 부락민들과 친해진 후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지요.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사람을 먹는다는 건 안되는 일이지요...” 그 말을 듣고 추장이 말했대요. “그렇습니까?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을 때만 사람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먹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까?” 누가 더 미개한 것일까요?

요즘 ‘행동하는 신앙’에 대해 많이 말하더라구요. 하지만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행동부터 하는 건 좀 위험해 보여요. 해도 되는 건지 꼭 물어본 다음에 행동에 옮겼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만 묻지 말구요. 그보다 먼저 “하느님 앞에서 해도 되는 것인가?”부터 신중히 물었으면 좋겠어요. 그 물음에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구요? 그냥 쉬죠, 뭐. 답이 나올 때까지 쉬며 생각하며(행동 보류) 그냥 그렇게 살자구요.

제 소원이 있어요. 게으름 자체를 인정하고 게으른 사람이 비난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만들기... 그래가지고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냐구요? 글쎄요. 꼭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나요? 지금이 30~40년 전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저는 성서에 나오는 주님 말씀 중에도 서운한 게 좀 있어요. 특히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 말씀은 주님답지 않은 말씀 같애요. 혹시 주님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어느 놈이 슬쩍 바꿔치기한 거 아닐까요? 어처구니 없다구요? 글쎄요.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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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04 [11: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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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 2009/01/06 [10:05] 수정 | 삭제
  • 감사합니다. 명절은 가족과 느긋하게 지내는걸 예수님도 기뻐하실거라는 생각이 꼭 틀리지 않다는걸 일깨워주셔서... 저도 실은 어떤놈이 슬쩍 바꿔치기했다고 생각합니다. 훈훈한 새해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