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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처럼? MB정부의 위험한 도박
[논단] 건설족 경제관료들의 무지와 독선, 위기극복에 큰 장애물이 될 것
 
홍헌호   기사입력  2008/11/02 [19:33]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31일 "아파트가 아닌 지방 SOC 사업같은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을 할 것"이라며 토목공사 확대를 예고했다. 그는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다"며 이같이 말했다.[프레시안 10월 31일]

무지와 독선.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위의 두 단어들을 추천하겠다. 도무지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 벽창호들. 이번 글에서는 박병원 수석의 31일 발언이 담고 있는 ‘무지와 독선’의 실체를 해부해 보기로 한다.

산업연구원, “건설투자의 소득창출효과는 사회보장지출에 크게 못 미쳐”    

박병원 수석은 오래 전부터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건설사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해 온 대표적인 건설족 경제관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이런 주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 주장인지 알아보려면 진보진영의 연구보고서까지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국책연구소 중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만  들여다 보아도 그의 주장의 허구성은 드러난다.

산업연구원은 2003년 6월, <재정지출 확대정책과 산업별 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재정지출이 산업별로 어느 정도의 소득을 창출하는지 그 효과를 추정한 바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표는 그 보고서 내용 중의 일부분이다.

[표]정부지출 1조원의 산업별 소득창출효과(억원)

 

           정부지출 1조원의 효과 

     최소

     최대

  중간값

 공공행정, 국방, 사회보장

   2475억원

   3276억원

  2876억원

 교육 및 보건

   1497억원

   2903억원

  2200억원

 건설업

   1883억원

   2023억원

  1953억원

 제조업

   1113억원

   2981억원

  2047억원
(출처) : 산업연구원(2003.6), <재정지출 확대정책과 산업별 효과>  
 
위의 표를 보면 공공행정 및 사회보장 분야 등에 대한 정부 지출 1조원은 최소 2475억원에서 최대 3276억원에 이르는 소득을 창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건설업에 대한 정부지출 1조원의 소득창출효과는 최소 1883억원에서 최대 2023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산업연구원의 2003년 보고서는 박병원 수석을 포함한 건설족 경제관료들의 반복되는 주장과 달리 건설업의 대한 정부지출의 경기활성화효과는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복지지출에 비하여 매우 작은 편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박병원 수석은 건설투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박병원 수석의 오류와 독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국민계정에서 말하는 건설투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건설투자는 설비투자와 달리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설비투자의 경우, 경제주체들이 2007년에 80조원을 투자했다고 하면 그것은 곧 경제주체들이 80조원에 달하는 기계류나 운수 장비 등을 사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건설투자의 경우, 경제주체들이 2007년에 160조원을 투자했다고 하여 그것이 곧 160조원에 달하는 건축물이나 토목물을 사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건설투자액이란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구입한 건축물이나 토목물 매입액 총액 중에서 토지매입가격분을 제외한 액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구입한 건축물이나 토목물 매입 총액이 250조원인데, 그 중 토지매입가격이 90조원이고 나머지가 160조원이라면,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건설투자액 총액은 250조원이 아니라 160조원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2005년 그들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국민계정체계>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고정자본형성(=투자)의 대상이 되는 자산은 비금융자산 중 생산과정을 통해 생산된 자산에 한정하므로 생산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 자체는 생산되지 않은 토지 등의 취득 또는 처분은 고정자본의 형성에서 제외된다.”(227쪽)
 
이 문장이 뜻하는 바는 경제주체들이 건설사로부터 건축물이나 토목물을 구입하는 매입액 총액 중에서 토지가격분에 해당하는 액수는 건설투자로 집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원배분의 효율성을 추정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박병원 수석과 같은 무식한 발언을 반복하며 엉터리 정책을 남발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해석할 때도 정부의 건설재정지출 1조원은 국민소득을 평균적으로 1953만원 증가시킨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건설부문에 1조원을 투입했다 하더라도 이 중에서 7000억원(토지가격비중이 30%일 때)만이 건설투자로 집계되므로 1조원의 정부건설지출이 가져오는 소득창출효과는 1953만원이 아니라 7000억원의 19.53%인 1367만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1조원의 사회보장비 지출 효과 2876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1990년대 일본, 건설족 경제관료들로 인하여 국가부채의 수렁에 빠져.
 
1990년대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박병원 수석과 유사한 성향을 지닌 건설족 경제관료들로 인하여 심각한 부채의 수렁에 빠졌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표] EU 각국과 일본의 GDP 대비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

 연도

 일본

  EU

  영국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1985

  4.7

 

 

 

 

 

 1990

  5.0

 

  2.4

  3.6

 

  2.9

 1992

  5.6

 

  2.3

  3.8

 

  3.4

 1994

  6.5

 

  2.2

  3.4

  4.0

  3.1

 1996

  6.6

  2.6

  1.5

  3.2

  3.5

  2.8

 1998

  5.8

  2.4

  1.3

  2.8

  3.1

  2.9

 2000

  5.2

  2.5

  1.2

  3.1

  2.9

  2.5

 2002

  4.7

  2.4

  1.5

  2.9

  3.2

  2.7

 2004

  3.7

  2.4

  1.7

  3.1

  2.9

  2.9

 2006

  3.2

  2.5

  1.8

  3.2

  3.1

  2.4
 (출처) : EU, 일본 총무성 자료를 가공
 
위의 표를 보면 90년대 일본정부의 낭비성 건설투자로 인하여 GDP 대비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이 EU에 비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정부 또한 90년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 등으로 일본의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하여, 2000년 이후부터는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일본정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 등은 일본의 재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아래 표를 보면 그것의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 일본 정부 일반회계 세입내역(2006)

  항목

    금액

    비중

총세입

 79조 6860억엔

  100.0%

조세

 44조 6610억엔

   56.0%

공채발행

 24조 4890억엔

   30.7%

기타

 10조 5360억엔

   13.2%
 (출처) : 일본 재무성  

[표] 일본 정부 일반회계 세출내역(2006)

  항목

     금액

    비중

총세출

 79조 6860억엔

  100.0%

사회보장비

 21조 6760억엔

   27.2%

국채비

 18조 7620억엔

   23.5%

지방재정비

 14조 5770억엔

   18.3%

기타

 24조 6710억엔

   31.0%
 (출처) : 일본 재무성 
 
2006년 현재 일본정부는 세입의 30.7%를 국공채 발행에 의존하고 있고 세출의 23.5%를 국채비(국채 원리금 상환 비용)로 지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재 일본정부가 재정위기에 몰려 카드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국의 재정상황이 이렇게 되면 정부는 과다한 경직성 비용 때문에 국가의 성장잠재력 확충에 필요한 요긴한 정책들을 펼 수도 없다.
 
최광,이한구도 무분별한 토목공사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
 
물론 박병원 수석과 같은 건설족 경제관료들은 이것을 단순히 진보진영의 딴지걸기로 치부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재정학자인 최광 교수도 일본의 낭비적인 건설투자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는 최광 교수가  2002년에 내놓은 연구보고서, <일본의 경제정책과 재정정책>의 일부분이다.
 
“일본의 경우 사회간접자본의 정비를 빌미로 추진된 공공사업의 상당부분이 낭비되고 비효율적이라는 징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근래 어느 마을에서나 음악당,박물관,민예관,체육관 등 다수의 훌륭한 건물이 생기게 되었는데 재정상황이 매우 나쁜 상태에서 과연 개개 마을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깊은 산 속에도 훌륭한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도 건설성에서 나오는 도로포장율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높아지지 않는다. 또한 전국 각지에 엄청나게 많은 심포니 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그만한 수의 악단은 일본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 또한 지난 3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위기에서 재정사업을 하면 무조건 경기가 좋아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예전엔 곡괭이로 다 공사를 하니까 인력투입이 컸고 건설업을 키우면 일자리 창출이 돼서 경기가 회복된 것이다. 건설사업 자체로 회복된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로 회복됐다. 그런데 지금은 일자리 창출과 별 관련이 없다. 돈만 있으면 일자리 만들데는 오히려 딴 곳에 많다. 서비스업 같은 쪽.

토목공사할 바에야 공공근로가 낫다. 이건 어차피 계획도 있던 것이지만, 하천이나 해안에 인력 투입해 쓰레기 치우는 것 만해도 몇 조원이 들어간다. 환경도 좋아지고, 관광사업 좋아지고, 물 깨끗해지고 얼마나 생산적인가? 차도 안 다니는데다가 쓸데없이 도로를 만들면 일 끝난 후에도 돈이 들어간다.”
 
어줍잖은 비유법으로 자신들의 독선을 합리화해서는 곤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경제도 살리면서 결국 그것이 국가경쟁력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의 대규모 SOC사업을 앞당겨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머니투데이 10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생각들은 무지가 낳은 오판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병원 경제수석을 비롯한 건설족 경제관료들은 이번의 경제위기가 1997~1998년 위기 때처럼 1~2년 안에 회복되리라 기대하며 금융부문과 건설부문에 일시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불이 났을 때는 한꺼번에 일시에 물을 퍼부어 불을 진압해야 한다” 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착각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의 실체를 거의 다 아는 것처럼 우기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불의 실체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느 동네에 불이 났다. 앞으로 어느 집에서 불이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무능한 정부가 그것을 조기에 일시에 진압해야 한다며 처음에 불이 난 한두 집에 소방수(消防水)를 모두 다 허비해 버렸다 하자. 나중에 다른 집에서 또 불이 일어날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가서 부랴부랴 이웃동네 정부에 소방수 구걸이나 하러 다닐 셈인가.
 
지금은 정부가 어줍잖은 비유법으로 자신들의 무능과 독선을 합리화할 때가 아니다. 1990년대 스웨덴처럼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금융업과 비금융업체, 건설업과 비건설업체 모두에게  형평성 있게 지원하며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정부가 허겁지겁 좌충우돌하여 먼저 쓰러지는 기업부터 살리자고 우기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알짜기업들이 쓰러질 때 정부가 재정고갈로 이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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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1/02 [19: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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