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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꿈꾸듯 춤을 추는 선경에 가다
제5회 이승희 전통춤 공연 열려
 
김영조   기사입력  2008/10/25 [08:49]
   



               ▲ 신비스러운 이승희의 살풀이 @ 김영조

 
우리 겨레는 예부터 가무악(歌舞樂)을 즐겼고 그 가무악 가운데 하나가 춤이다. 그 전통춤 속에는 우리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요즘 전통춤 공연을 보기도 어렵거니와 제대로 된 전통춤 보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전통을 담은 춤 중에는 이동안류가 있다. 고 이동안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예능보유자이다. 그러나 선생은 화성재인청 도방이었고, 1921년 춤의 명인 김인호로부터 신칼대신무, 진쇠춤, 태평무 등을 전수받은 진짜 춤의 대가이다. 그런데도 춤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선생에겐 줄을 서는 제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 대는 끊기는 듯했는데 선생의 뒤를 올곧게 이어가는 제자가 있었다.

그 제자 이승희가 어제(10월 23일)일 저녁 7시 30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운학전통춤보존회 주최, 이승희무용연구소 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제5회 “이승희 전통춤공연”을 열었다.
 



▲ 엇중모리신칼대신무를 추는 이승희 @ 이용남
 



              ▲ 이승희의 제자 김영욱이 강한 맛의 태평무를 춘다 @ 이용남
 

공연은 이승희가 먼저 엇중모리신칼대신무를 펼친다. 엇중모리신칼대신무는 흔히 볼 수 없는 춤인데, 내적인 감정을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하는 깊이 있는 춤으로 무속춤에서 생겼지만 예술로 승화한 아름다움 춤이다. 이승희는 지전을 흩날리며, 구음을 배경으로 머뭇거리다 지솟고 그런가 하면 멈추며 물 흐르듯 춤을 춘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이승희의 춤의 세계가 그윽하다.

구음은 국립창극단 단원 김미나 씨가 맡았는데 “2008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소리꾼답게 높게 흐느끼다가 이내 낮게 침잠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 등 엇중모리신칼대신무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구실을 한다. 

이어서 이승희의 제자 김영욱이 이승희가 추던 태평무를 전수받아 무대에 올랐다. 태평무는 그해의 풍년을 축복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었던 것으로 정제된 그리고 장중한 맛의 춤이다. 예전 이승희가 출 때보다는 완숙된 경지는 아니지만 좀 더 강한 맛을 느끼게 한다. 복장도 관복에서 왕족의 옷으로 거듭나니 훨씬 격이 있어 보인다.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승무를 추는 이승희 @이용남

 



               ▲ 이승희의 제자 임윤빈이 수건춤의 청정한 동작을 보여준다.
               @이용남                 
 



     ▲ 최경만, 원장현, 이경섭 등 명인들의 시나위합주, 객석은 숨을 죽인다.
     @이용남
 

그리고 등장하는 승무.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고 조지훈이 읊조리던 그 승무 아닌가?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장중한 힘으로 긴 장삼 소매를 무겁게 뿌리고 제치며 만들어 가는 춤의 매력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살짝 내민 버선코가 앙증맞고, 경쾌한 북채끼리 맞부딪히는 소리에 객석은 마냥 빠져 들어간다. 

다음은 역시 이승희의 제자 임윤빈이 수건춤을 보여준다. 수건춤은 살풀이춤을 추려고 기본적으로 배우는 춤으로 단전호흡하듯 하는 청정한 동작이 일품이다.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열연을 한다. 사회자 최종민 선생은 뱃속의 아이에게 좋은 태교가 되었으리라고 덕담을 했다. 

춤꾼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반주단이 “시나위 합주”를 연주한다. 악보 없이 즉흥으로 소리를 맞추는 연주자들의 호흡이 기막히다. 사회자 최종민 선생의 해설에 의하면 1965년 미국 시카고가 중심이 되어 ‘프리재즈’라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등장했는데 이는 우리 시나위 음악 등 동양음악이 좋아 그들이 즉흥연주의 정신을 배워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시나위 연주는 대단한 음악일 것이리라.

이 연주자들 가운데는 이 시대 최고 연주가인 피리 명인 최경만, 대금 명인 원장현과 장구의 달인 이경섭 그리고 아쟁 서정호, 거문고 허석호, 해금 이동훈이 함께하여 객석은 숨을 쉴 틈조차 없게 만든다. 과히 이 시대 최고의 음악을 그들은 연주하고 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큰 손뼉과 함께 온통 흥분의 도가니다. 

시나위 합주가 끝나자 이승희가 꽹과리를 들고 나와 흔히 보기 어려운 진쇠춤을 춘다. 진쇠춤은 무관복 차림으로 춤을 추며 백성의 편안함과 나라의 안녕을 비손하는 몸짓이다. 화려한 복색으로 내면의 멋과 흥이 역동적인 동작과 어우러져 진쇠춤 만의 독특한 춤사위를 그려낸다. 외발뛰기로 꽹과리를 치는 모습이 앙증맞으며 흥미롭다.
  



               ▲ 앙증맞은 외발뛰기로 꽹과리를 치는 진쇠춤의 이승희 
               @이용남
 

이어서 찬조출연으로 중요무형문화제 제30호 가곡 이수자 변짐심이 시조 한 수 들려준다. 시조는 한문으로 된 시를 일정한 음률 없이 읊조리는 청아하고 시원스런 맛의 전통 성악이다. ‘녹수청산 깊은 골에’와 ‘월정명’을 노래하는 데 사설 중 “선동아 잠긴 달 건져라.”라는 대목에서 변진심은 아름다운 정취를 맛보게 한다. 이 가을 호수에 잠긴 달은 왜 건져내려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승희가 이 공연의 절정 ‘살풀이춤’을 올린다. 삼현육각의 반주와 애달픈 구음 소리가 가슴을 찢는데, 절제된 하지만, 더욱 슬픈, 그리고 내면에 삼키는 울음을 토한다. 저 몸짓은 누구를 위해 추는 것일까? 수건을 들고 공간을 휘감으며 태극사위를 이룬다. 저 살풀이춤으로 우리의 살과 살이 모두 날아갔으면 얼마나 좋으랴?

사회를 맡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는 말한다. “이승의 연습실에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느 연습실 분위기와는 달리 두 면의 벽에는 온통 책으로 채워있었는데 책은 모두 전통문화대백과사전을 비롯하여 사서삼경과 역사, 철학, 문학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여러 번 읽은 듯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그런 그의 향학열과 독서열이 전통춤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승희는 들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어내서 속기가 없는 춤을 춘다. 쓸데없이 과장하거나 치기 어린 모습 없이 절제된 정말 아름다운 전통의 모습이 이승희에게 우러난다. 한국 전통춤을 제대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김인호, 이동안으로 이어지는 이 춤판에 와서 봐야 할 것이다." 
 



                 ▲ 해설자 최종민 교수는 "이승희의 춤에서 절제된 아름다운
                 전통의 모습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김영조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있던 경희대 국제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중국인 학생 장칭(23)은 “처음 이런 공연을 보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춤을 보았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어떻게 저런 춤을 출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기회가 되면 배워보고 싶어요. 그리고 음악 반주도 황홀했어요. 악보도 없이 저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해요.”라고 공연을 본 소감을 얘기했다. 

“가을 바람 소슬하고 옥 같은 이슬이 맑으니
강가 낙시질 하는 노인은 도심(道心)을 일으키네
붉은 노을이 두루 가득하니 선경인듯 의심되고
백로가 무리지어 날아가니 눈층계를 만드는구나“

이승희가 지은 칠언율시(한시) 일부이다. 이런 그녀의 마음이 저렇게 아름다운 춤을 잉태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리라. 깊어가는 가을, 우리는 꿈 꾸듯 춤을 추는 선경에 있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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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25 [08: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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