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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학내 종교자유, 학생 권리는 어디있나?
[류상태의 예수를 찾아]학교의 손 들어준 강의석사건 고법판결 유감
 
류상태   기사입력  2008/05/24 [19:05]
어느 가난한 노인의 농장에 늑대 한 마리와 어린 사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이 늑대에게 말했다. “내 잠시 마을에 다녀오마. 여기 빵 4개를 남겨 둘 테니 사이좋게 두 개씩 나눠 먹어라. 그리고 사슴은 아직 어리고 몸이 약하니 네가 잘 돌봐주어야 한다.”

늑대는 그렇게 하겠다고 주인과 약속했다. 노인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랑이가 나타나 늑대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가진 것 전부 내놔라.”

늑대는 살려달라고 빌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빵 4개가 전부인데, 나와 사슴이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모두 가져가면 우린 굶어 죽게 되니, 두 개만 가져가시고 두 개는 남겨주십시오.”

호랑이는 늑대보다 사슴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빵 두 개를 남겨주었다. 뒷동산에서 뛰놀던 철모르는 사슴이 뒤늦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나타났다. “늑대 아저씨, 먹을 것 좀 줘.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늑대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내 말을 잘 들어라. 주인님이 여행을 떠나시면서 너한테 빵 두 개, 나한테도 빵 두 개를 맡겨놓고 가셨거든?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서 네가 먹어야 할 빵 두 개를 빼앗아 갔구나.”

사슴은 울상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배고파 죽겠어. 하나씩 갈라 먹자.”

늑대는 사슴을 점잖게 타이르며 말했다. “네가 어리고 철이 없어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주인이 분명 두 개씩 먹으라고 했으니 두 개는 내 몫이야. 너의 몫은 호랑이가 가져갔으니 억울하면 호랑이한테 가서 말하라니까.”

독자들 중에 이 글을 어디서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분이 있을 것이다. 지난 2007년 10월 5일, 강의석군이 대광고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강의석군에게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윗글은 그 판결이 내려진 직후에 내가 몇몇 인터넷 언론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분이며, 다음은 그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린 사슴은 이미 사라져버린 호랑이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주인에게 호소하였다. “주인님, 늑대 아저씨가 제가 먹을 빵은 호랑이가 가져갔다며 남은 빵 두 개를 혼자 먹어버렸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주인이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이런 못된 녀석이 있나? 내가 그 녀석을 혼내 주마.”

주인이 나타나자 눈치를 챈 늑대가 손을 홰홰 저으며 말했다. “주인님, 제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주인님은 분명 저에게 빵 두개를 주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랬지.” “저는 제 몫으로 남겨진 빵 두개를 먹었을 뿐입니다. 사슴의 빵은 호랑이가 가져갔어요. 그러니 책임을 물으시려면 호랑이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어요?”

주인이 눈을 꿈벅이며 말했다. “음, 사슴이 안됐기는 하지만 너에게도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이는구나. 호랑이가 죽일 놈이야.”

강군이 소송을 제기한 주요 이유는, 학교에서 강제로 예배에 참석하게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가려 다시는 학교 내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지방법원에서 패소한 대광고 관계자들은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상소했고, 지난 5월 8일 서울고등법원은 학교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분이다.

"국가가 국공립 또는 사립 여부를 묻지 않고 강제로 학교를 배정함으로써 학부모로 하여금 자신의 교육관,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립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립학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본래의 헌법적 의미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것이다."

지난 2004년 강의석군이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단식으로 저항했을 때, 대광고 운영자들은 “학교 안에서 종교자유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고교평준화 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학교도 피해자’이므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학교가 아니라 국가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학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강의석군은 한번도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부정하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다만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생도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므로 “학생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강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현재 대광고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재단의 학교는 ‘특정종교예식을 전체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을 ‘종교교육을 할 자유’와 혼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양쪽의 자유가 모두 충족되려면, 학교에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주되, 학생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최종 판결은 대법원에서 나겠지만, 재판부가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국가의 독재적 처사에 대해 피해자(?)인 학교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에 대하여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두 피해자인 학교와 학생 중에서, 강한 피해자는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더욱 약한 피해자인 학생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보호자라고 믿었던 늑대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어린 사슴은 이제 호랑이를 찾아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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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5/24 [19: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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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면의자유 2008/06/13 [13:42] 수정 | 삭제
  • 이번 판결은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권리도 보장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종교교육에 참석하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판결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