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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상냥한 대통령'이 시대정신이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환경파괴는 생태적 재앙 뿐 아니라 경제재앙 초래
 
우석훈   기사입력  2007/06/29 [17:23]
1990년대 중반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는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나온다. “사람에게 상냥한 자동차, 도로에 상냥한 자동차, 자연에 상냥한 자동차”, 이것이 도요타가 지엠(GM)을 제치고 세계 1위 업체가 되기 10년 전 기술 진화 목표로 협회에서 제시된 것이다.

사람에게 상냥한 자동차라는 목표는 이전까지는 ‘튼튼한’ 자동차에서 사고 발생 때 철판이 접히면서 충격을 흡수해 사상을 줄이는 새로운 기술들을 만들어낸다. 도로에 상냥한 자동차는, 포장도로 훼손으로 인한 도로 공사와 같은 일본 경제의 토목경제 구조를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다. 더 많은 도로 공사를 해 봐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90년대 중반 일본 경제의 지적은 철판을 대체하는 가벼운 신소재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에 상냥한 자동차”라는 목표는 1ℓ로 100㎞를 달릴 수 있는 ‘3리터카’로 불리는 초연비는 물론 배기량 600㏄ 이하의 자동차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런 ‘상냥함’을 목표로 진화한 일본 자동차들이 10년 만에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데, 일본 내수용 자동차들의 작고도 실용적이면서 상냥한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름값이 높아지고, 세계적인 생태위기가 높아질수록 일본의 작은 자동차들은 ‘자연에 상냥한 자동차’로 더욱 명성을 높이게 돼 있다. 이런 일본의 내수용 자동차들이 유럽시장과 미국시장으로 나오기에는 아직 유가가 충분히 오르지 않았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가 넘으면 전세계는 일본의 경차를 살 수밖에 없고, 100달러가 넘으면 일본의 ‘3리터카’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자연에 상냥한 경제는 아니다. 쉽게 대통령만 놓고 비교해 보자. 박정희는 국토매립 시대와 연안공단 시대를 열었지만, 헐벗은 반도의 산에 나무가 피어나게 했고, 제3세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그린벨트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평가가 어렵다. 김영삼 대통령은 환경처를 환경부로 격상시켰고, 21세기 비전을 환경에서 찾았던, 그래서 ‘환경비전’을 처음 만든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강댐을 포기하면서 명성을 날렸지만, 그의 임기 기간에 별 의미 없는 대통령 자문기구 하나 만든 정도라서 시대정신에 비하면 ‘자연에 상냥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는 시대 자체가 상냥한 시대는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과 비공식 경제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중산층이 새롭게 죽어났던 시대라서 ‘자연’과 같은 고상한 개념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한국형 뉴딜’로 골프장 방어선이 뚫렸던 시대이고, 새만금과 사패산 터널 등으로 환경 지도자들의 단식일수가 365일을 넘어선다. 그의 임기 중 1년간은 누군가 지역 환경 문제로 단식 중이었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반도의 농업을 결정적으로 끝장내게 될 시기도 바로 이 시기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에 상냥한 시대’와 함께 ‘자연에 상냥한 대통령’을 기다린다. 일단 경부운하는 어떻게 보도자료를 포장하더라도 자연에 상냥한 정책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현재까지 제시된 공약만으로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제시한 농업과 에너지 정책이 그런대로 상냥한 정책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자연에 상냥하고 사람에게 상냥한 것을 사회적 진화의 목표로 잡아도 세계 경제에서 일본에 10년 뒤처진 것이다. 제발 뒤로 가지는 말자. 생태적 재앙만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재앙이 동시에 우리를 기다린다. 누가 ‘상냥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무섭게 고함치며 협박하는 대통령의 시대를 살았다. 이 땅의 사람과 자연 그리고 모든 것이 ‘상냥한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이 시대정신 아닌가?

* 본문은 6월 27일자 <한겨레> [야!한국사회]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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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29 [17: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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