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되던 날의 소묘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다.
아마 이번에 공개적으로 개최 반대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 두 사람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연초에 강릉에서 며칠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강릉 시민들 전부 경포대에 모여서 궐기대회 하자는 엄청난 현수막을 보면서 처음 요번 동계 올림픽에 대한 내 입장을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그나저나 푸틴이나 노무현이나 추했던 것은 마찬가지이고, 소치나 평창이나 스포츠 쇼비니즘의 현 주소가 너무 적나라했다.
그래도 지금 활동하는 경제학자 중에서는 내가 스포츠에 관한 분석을 가장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올림픽의 아마추어 정신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도저히 왜 이 하계올림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동계 올림픽에 후보지 국가의 정상이 세 명이나 모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추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고, 세계적으로 뭔가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내 기억으로 작크 로게는 올림픽 경기대회의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김운용을 꺾고 IOC 위원장으로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영원한 위원장일 것 같은 사마란치 시절보다 오히려 더 광란의 난리 부르스가 펼쳐지는 셈이다.
어쨌든... 난리도 아니었다.
지난 번에는 결국 내부의 적을 찾는다고 난리가 벌어졌고, 역시 영원한 태권도의 황제일 것 같은 김운용이 그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스포츠가 국제적으로 권력은 너무 큰 권력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스포츠가 덴마크 여자 핸드볼과 흑진주라고 불렸던 수리아 보날리의 등장 이후로 여자 피겨였었다. 그리고 곧이어 미셸 콴이 주니어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수년동안 여자 피겨 스케이팅을 즐겁게 보았고, 너무 좋아해서 피겨에 대한 책도 한 권 쓸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유학 끝나고 돌아왔던 10년 전 내 글에는 피겨 스케이트에 대한 비유가 아주 많이 등장했었다.
공교롭게 며칠 전부터 우리나라 핸드볼 대표팀과 김연아의 차이점에 대해서 간단한 비교표를 만들어봤는데, 차이점 몇 가지가 드러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난 아직도 미셸 콴의 멋진 트리플 엑셀을 가슴에 기억하고 있고, 안도 미키가 얼마나 큰 선수로 성장하게 될지 지켜보는 중이다. 안도 미키의 코치가 미셸 콴의 코치인데, 그 예술성에 반했다고 한다. 김연아도 그런 멋진 선수로 자라나기를 기대했었는데, 너무 일찍 극우파 심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는 하다. 똑같이 비인기 종목인데,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에는 마이너의 감성과 배고픈 설움이 뚝뚝 묻어나고, 응원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같은 비인기 종목인데 김연아는 왜 이렇게 금방 극우파 심볼이 되어버린 차이점이 뭐인지를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안도 미키는 극우파는 아니고, 사회주의 소비에트 시절의 러시아 피겨 선수들도 극우파 상징은 아니었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묘한 갈등에 '황화론'을 연상하게 하는 황인종의 약진 속에서 약간의 인종적 갈등이 여자 피겨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겨는 아름다움에 대한 스포츠답게 한 번도 극우파 코드로 전락한 적은 없는데, 그래서 김연아의 변화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고, 조심스럽게 분석해보는 중이다. 그나저나 평창 프리젠테이션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귀곡성은 조수미 목소리인 것 같다. 월드컵에 울려퍼졌던 귀곡성 이후로 조수미의 귀곡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극우파 찬가로 자리잡은 것 같다. 독일의 극우파들은 바그너의 마에스터 징어의 테너를 배경음으로 많이 사용했었는데, 왜 우리나라 극우파들은 조수미의 소프라노 귀곡성에 그렇게 넋을 놓게 되었는지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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