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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들은 타워팰리스에서 안산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강호동류의 버라이어티쇼가 한국에서 강세인 이유
 
우석훈   기사입력  2007/06/22 [12:17]
권력은 공간의 배치를 바꾸고, 역으로 공간도 권력을 만들어낸다. 집주인이 누구인가 혹은 어떤 계층인가에 따라서 집 바깥의 외향도 바꾸지만, 집 내부의 공간 구조도 변화하게 된다.

크게 하나의 방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거실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을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들은 굉장히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속성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건축 패턴에는 화장실을 몇 개를 놓을 것인가와 복층으로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서 창문의 방향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강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현재의 건축 패턴은 거주자들의 보건에 치명적인 결함을 몇 개 가지고 있다. 대치동 30대 주부를 대상으로 세브란스에서 간단한 보건 연구를 해봤는데, 최소한 2배 이상 내진율이 높아졌고, 타워팰리스 인근 병원에 외래 환자 비율이 2~3배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온지도 벌써 해를 넘어간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타워 팰리스 로얄층에 사는 사람이 있다. 만약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었다면 약간의 충고를 했겠지만, 이제는 살만큼 산 사람들이 사는 거라서 별 말은 안 했다. 이 집은 마나님께서 돈이 아주 많은 집이다. 남편이 평생 아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고 싶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불행한 인생이라서, 타워 팰리스로 이사가는 것도 마나님이 결정해서 이제는 좀 번듯하게 내 돈 쓰면서 살아보자라고 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주위에서 본다면 청바지를 즐겨 입고, 검소하게 살기 때문에 이 집에 이렇게 돈이 많은 줄 아무도 모른다.

타워 팰리스 유형의 건물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건상의 위험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위험 요소는 많은데, 가장 크고 직접적인 것은 실내공기 오염의 위험이다. 우리나라 건축법에 약간 문제가 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고층 건물을 거주용으로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재산증식'에 대해서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아서 생겨난 일이다. 중앙 공조장치를 가지고 있는 건물에서 살면 어린이 보건을 비롯해서 소위 노약자 보건에 문제가 심각하게 생긴다.

반도체 공장 수준으로 공조 장치를 가동할 운전력이 없는 건물에서는 살지 않는 것이 좋은데, 타워 팰리스 유형의 건물은 성인 중에서 아주 튼튼한 사람들이라야 버티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실내 공기가 아주 열악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타워 팰리스만큼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그만한 공간과 그만한 설비에 높이를 낮추어서 "창 전부 열립니다"를 은밀하게 마케팅 포인트로 잡기도 한다.

▲ 타워팰리스 건물전경, 고층아파트의 공간구조와 보건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다.     © 대자보

뭘 잘 모르는 부자들이 타워 팰리스로 가는 중이고, 진짜 부자들은 요즘 이런 보건상의 문제가 없는 소형 주거단지로 옮겨가는 중이다. 아마 타워 팰리스형 건물에 새로 자녀를 낳아야 하는 신혼 부부가 들어가서 산다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어차피 신혼부부들은 그런 아파트에 갈 여건이 안 되고 현실적으로는 40~50대의 안정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이런 성인들은 자신의 보건 문제는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가 되겠다.

고층 건물이 주거 공간으로서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 중에 또 하나가 청소년 자살율이다. 이유는 심리학자들도 명확히 잘 설명하지는 못하는데, 어쨌든 고층 아파트에 사는 10대들의 자살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으로 고층 아파트 비율과 청소년 자살율을 놓고 통계 분석을 해보면 상관관계가 굉장히 높게 나온다. 인과관계에 의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워도 두 가지가 상관성이 높다는 것은 이제는 대체적인 상식에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보이는 곳에 생기는 아파트에서 30~40대 여성들이 자살율과 우울증 발생 비율이 높다는 연구가 한동안 유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요즘은 이런 연구들을 잘 안한다.

작년에 교육부에서 아파트와는 전혀 상관없는 청소년 의식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살시도율이라는 변수를 조사한 적이 있다. 질문은 중고등학생에게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물론 강남구가 다른 지역과 비교도 되지 않게 높았는데, 이런 종류의 변수와 지역별 고층빌딩 밀집율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간단하게 돌려보면 상관관계가 나온다.

물론 엑셀에서도 된다 (다만 설치할 때 통계분석을 위한 추가기능을 설치해야 한다.) 고층빌딩 밀집지역과 청소년 자살시도율 같은 것을 구해다가 누구나 엑셀에서 간단하게 상관분석을 해보면, 높은 건물에 살 때 10대 자녀들에게 어떠한 위험이 있는가를 금방 확인해볼 수 있다.

내가 직접 잘 아는 사람들은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설득해서 이제는 타워 팰리스형 아파트에서 다른 곳들로 이사를 했다 (주거 공간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나는 책을 냈을 정도로 열심히 데이타를 모았었다.)

"안전한 아파트"라는 것으로 2~3년 후에 우리나라 주거공간에 대한 흐름도 바뀔 것이다. 지금 아파트 시장 및 건축시장을 이끌어가는 흐름에는 안전 특히 보건이라는 개념이 빠져 있고, 현재로서는 '조경'에 대한 개념을 약간 이해한 정도이다. 5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는 중이다.

거주 공간에는 이런 큰 종류의 의사결정들도 있지만, 아주 작고 미세한 의사결정과 관련된 것들도 있다. 난 이런 작은 것들을 아주 재밌게 생각하는 편이다. 평소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결국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종종 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나라에는 버라이어티 쇼라고 부르는 아주 희한한 방식이 토크쇼가 엄청 유행을 끌면서 많이 생겼다. 방송의 경제학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훨씬 설명이 쉽다. 90년대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방송에도 들어와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런 비정규직 위주로 방송을 하게 되면 결국 버라이어티쇼 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시장이 이렇게 전환되면 손해보는 것들은 정규직 연기자들과 정규직 아나운서들이다. 비정규직 비율을 놓고 버라이어티쇼의 방송 시간 점유율이라는 두 개의 변수를 놓고 분석을 하면 딱 떨어진다. 우리나라 방송이 기형적으로 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는게 공식적인 설명이다.

똑같은 토크쇼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버라이어티쇼는 사회와는 아무 상관없고, 개인의 삶을 추적해서 무엇인가의 흐름을 보여주는 미국식의 토크쇼와 우리나라의 버라이어티 쇼는 그 사회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런 버라이어티 쇼가 일본에서 시작되기는 했는데, 일본도 이 정도로 사회현상이 될 정도로 그 비중과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sehr koreanisch, 그야말로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연초에 BBC에서 한 번, 그리고 프랑스의 TF1인가, 하여간 유럽 방송극들에서 우리나라의 이런 버라이어티 쇼 - 강호동류의 쇼들 - 이 신기하다고 특집 프로를 한 번씩 만들어갔다.

그러니까 유럽 기준으로는 황금 시간 대에 이런 강호동 쇼 스타일을 모든 방송극이 다 틀어주고, 이걸 재밌어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자체가 희한한 현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긴... 희한하기는 하다. BBC는 이걸 폭력성으로 풀었는데, 오랫동안 독재에 시달렸던 한국 민중들이 매저키즘의 경향을 보이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동일시했던 스타들이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매저키즘의 대리만족을 통해서 기쁨을 느낀다... 얘기는 이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았는데, 분석 톤이 그렇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프랑스 방송극에서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간 엄청나게 신기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얘기한 것 같다.

하여간 강호동류의 쇼가 이렇게 강세인 것은 우리나라의 특이 현상이기는 하다.

비정규직의 비율로 이걸 설명해도 되고, 완전히 사회심리학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설명해도 되고, 강준만 선생이 즐겨사용하는 방식처럼 "인물 중심의 민주주의"라고 설명해도 되는 방식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걸 건축 양식과 생활 패턴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다. 유럽의 경우는 식구들이 모여서 같이 TV를 보는 경우가 잘 없다. 일단 맞벌이가 많아서 부부가 같이 앉아서 TV를 보는 경우도 거의 없고, 특히 주말에 식구들이 모여서 TV를 보는 경우는 정말 없다. 우리나라는 주말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이지만, 유럽에서는 주말 프로그램이 비인기 시간대이다. 누가 주말에 TV 앞에 앉아있고 싶어하겠는가. 주말에 TV 보면서 보냈다는 건 상당히 "괴로운 주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 30~40대 직장인들은 주말에 TV 보면서 뒹굴면서 잤다... 이건 상당히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는 의미로 가끔 통한다. 그만큼 노동강도도 높고, 몸이 육체적 휴식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식구들이 같이 모여서 TV를 보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좀 높은 편인데, 두 나라의 차이점은 일본에는 68세대의 PD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형성되다가 말았다는 것으로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유명해진 것이 NHK와 KBS는 무엇이 다른가... 이런 종류의 분석이다. NHK는 BBC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볼만한 TV의 맨 윗 대열을 형성하는 방송국들이다. 나도 틈틈히 왜 우리 집에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NHK 방송 두 개를 보면서 저런 TV를 볼 수 있는 일본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NHK를 보다가 KBS 뉴스를 보면, 참 슬퍼진다. 음악 전문 프로를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다가, 버라이어티 쇼가 나오면...

대체적으로 우리나라는 식구들이 모여서 TV를 같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볼 수 있는 프로 중심으로 우점종이 형성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 방송 프로의 다양성이 떨어지게 된 첫 번째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대로 두면 NHK나 KBS나 똑같아지게 되어있는 게 원래의 흐름인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PD나 작가들이 적극 저항한 셈이고, 우리나라 KBS를 비롯한 방송극들은... 이게 대세랍니다라고 따라간 경우이다.

그럴 바에는 아예 거실을 줄이고, 가족들끼리 모여서 같이 TV를 보지 않도록 하는게 좋지 않느냐? 이건 건축설계사들이 해야 할 고민인데, 이런 고민들을 하기에는 또 우리나라의 아파트 설계가 너무  표준화되어 있다. 게다가 이런 작은 얘기들을 소소하게 담아서 새로운 건축 설계를 하자면, 이건 상업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 운동 같은 것과 결합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이런 약간의 상식들을 가지고 집집마다 아마 하나씩 가지고 있는 화장대라는 가구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화장대, 남자에게는 필요없는 가구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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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22 [12: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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