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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사회, 누가 노대통령을 설득할 것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찬반 팽팽히 갈린 한미FTA, 시간과의 싸움만 남아
 
우석훈   기사입력  2007/04/03 [13:58]
50 : 50 싸움을 전개하는 양상 
 
한미 FTA의 경우는 전형적인 50 : 50의 양상이다. 1년 동안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양상에서 어느 한 편도 다른 쪽을 쉽게(!) 제압할 수 없는 형국이다. 타결로 인하여 찬성측이 당분간 유리한 형국인데, 반대 진영에서 방어선을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확 무너져내리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했던 그런 변화가 급격하게 생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
 
기계적으로 생각하면, 반대하는 한 사람이 한 사람씩만 설득하면 이 무지막지한 폭주를 멈출 수는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찬성하는 사람이 한 명씩만 설득을 하면 거꾸로 이 분위기로 사회를 끌고 나갈 수 있다.

▲한미FTA 타결 이후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참가자들은“졸속적인 한미FTA협상타결을 무효화시키는 투쟁에 함께 나서자”고 다짐하면서 촛불을 밝혔다.     ©박철홍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찬성과 반대가 균일하게 섞여 있으면 토론이 가능하지만, 적어도 내가 1년간 지켜본 상황에서 두 집단은 잘 만나지 않는다.
 
묘하게 그렇다. 정치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흔한데, FTA는 또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찬성하는 집안은 온 식구가 찬성하고 반대하는 집안은 또 온 식구가 반대한다.
 
물론 접경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나 폭이 넓은 사람들의 경우는 논란의 현장을 구경할 수 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찬반이 한 집단에 섞여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가 이미 가진 자와 없는 자, 뺏을 수 있는 자와 뺏길 수 밖에 없는 자로 갈린 것 같다. 물과 기름과 같은 상황이다.
 
보통은 이 구조면 혁명이 일어나기 딱 좋은 구도다. 서로 만나서 오해를 하든, 이해를 하든, 그럴 일이 별로 없다. 유일하게 웹에서 만난다고 하지만, 웹의 게시판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킨다? 이 경우에 그런 일은 거의 안 벌어질 것이다. 매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하여간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찬성측은 반대측을 제압하려 한다. 물리력과 실력으로 저지하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측은 별 힘은 없다. 대부분의 신문과 대부분의 방송국의 보도국 그리고 과장 이상의 정규직들, 혹은 내가 애용하는 표현, 가계 연소득 6천, 뭐 이런 곳에서 선이 그어져 있고, 실제로 힘이 몰려 있는, 소위 focal point는 찬성측이 장악하고 있다.
 
기분 나빠도 한 명씩 붙잡고 설득하는 방법이 가장 평화롭지만, 이미 두 모집단의 분리가 상당해서 잘 안 통한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영웅이 나타나거나 혁명 두 가지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영웅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이 영웅이고 최고의 우등생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은 있지만, 영웅이 나타날 사회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혁명은? 물론 당연히 불가능하다. 만들고 싶은 사회에 대한 표상이 서로 다르고, 무엇보다 혁명을 만들어낼 코어(Core)라고 불리는 중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미 FTA에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파토스가 움직이고, 그래서 행동으로 하게 되지는 않는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문제와 비슷 
 
이럴 때에는 물방울이 바위를 부수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재 반대진영이 갖추고 있는 가장 좋은 자산은 무엇일까? 사람? 부족하다. 영웅? 없다. 지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큰 일이다 (사파이어와 호랑이눈과 같은 보석을 가지고 옥구슬을 만들 때의 어려움과 비슷하다.)
 
가장 큰 자산은 이 경우에는 시간이다. 1차적으로 9월 하순까지 6개월이 있고, 그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면 1~2년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늘이고 끌고, 상황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간의 미학이 이 경우에 최고의 자산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씩을 설득한다는 간단한 일은, 일단 쉽지는 않지만 돈이 없고 시간이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전략이기는 하다. 그런 걸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 다음 국면을 훨씬 좋은 조건에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면 해볼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난 찬성 진영 한 가운데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설명하거나 강제하거나 혹은 빌기라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대통령 한 사람의 마음만 바꾸면 나머지 인구 절반의 마음을 바꾸지 않아도 이 문제는 해법을 찾는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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