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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과 파렴치함, 이주노동자는 범죄자 아니다
[다산인권의 눈] 여수외국인보호소 참사, 盧 정부 이주노동자 정책 산물
 
이정원   기사입력  2007/03/09 [03:42]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한 마디로 위선과 파렴치함 그 자체다. 법무부는 3월 2일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직원들을 보내 아직 치료가 끝나지도 않은 환자들을 강제 퇴원시켰다. 3월 6일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수사 결과의 요점은 한 마디로 “직접적 증거는 없으나 방화”라는 것이다.
 
경찰이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목격자 진술과 화재 현장 2차 감식 때 발견된 라이터 2개가 전부다. 그러나 목격자도 불을 내는 것은 본 바 없고, 라이터도 발화 도구로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 무엇보다 방화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사망해 아무런 반론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건을 방화로 결론짓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유가족들이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찰도 유가족들이 반발할 것이 우려됐는지 수사 결과 발표 장소에 들어가는 것조차 막았다!
 
▲ 지난달 25일 이주노동자들이 서울역 앞에서 여수 참사 대책마련 촉구 집회를 열었다.     © 다산인권센터 제공

3월 7일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여수 화재 사건 피해자들 중 2명의 여성은 강제 전방 조치에 항의하다 청주보호소 남성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사지가 들려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당시의 화재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이런 횡포가 자행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정부는 아직도 이주노동자 단속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임신 7개월 된 필리핀 여성 레티는 길거리에서 10여 명의 단속반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그녀는 자신이 임산부라고 한참을 호소했지만 단속반은 “니가 임신을 했든 말든 상관없다. 너는 미등록이니까” 하며 외면했다. 지금도 성수동 지역에서는 매일 단속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참사 사건에 분명한 책임이 있는 노동부도 파렴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월 23일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조 결성권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체류 자격이 ‘불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체불임금·퇴직금 등의 진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여수 화재 참사 사망자 중 다수가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계속 구금돼 있었고, 에르킨 씨는 무려 1년 가까이 장기 구금돼 있다 참변을 당했다.
 
책임 떠 넘기기
 
이 사건을 방화로 결론짓는 것은 이번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야만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술책이다.
 
명백하게도 이 참사는 이주노동자를 범죄자 취급한 정책 그 자체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정부가 ‘불법’이라고 낙인찍어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99퍼센트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작업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듯 잡아다 24시간 햇빛도 들지 않는 방에 가둬두고 CCTV로 감시하는 곳이 외국인 수용소다.
 
이번에 희생당한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에르킨 씨처럼 1백80만 원의 체불 임금을 받지 못해 11개월 20일 동안 갇혀 지내는 곳이 바로 외국인 수용소다. 양식장에서 온 손이 해지도록 밤낮 없이 일하고도 1천만 원의 임금을 못 받자, 체류 자격을 변경하려고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간 중국 동포 김성남 씨를 그 자리에서 잡아 가둬 결국 불에 타 죽게 만든 게 이 곳이다.
 
희생자 진신희 씨 유족은 절규했다. “이 노동자들이 없다면 한국 기업은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노동자들의 수고에 아무런 보답도 없이 어찌 불법 체류자라며 철창 안에 감금한단 말입니까!” 이 기가 막힌 현실들을 만들어낸 노무현 정부가 바로 이번 참사의 진정한 원인 제공자다.
 
예고된 참사
 
지난해 2월 27일 터키 이주노동자 코스쿤 셀림이 수원 출입국사무소 구금 시설에서 18미터 창문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그리고 꼭 1년 만에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더 큰 참사가 벌어졌다. 올해 1월에도 벌써 단속 과정에서 한 중국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사건들은 지난 3년 동안 8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잡아 가두고 추방해 온 악랄한 단속·추방 정책의 직접적 산물이다.
 
특히, 작업장 이동을 금지하고 해마다 재계약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하락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30퍼센트나 증가했다. 노동권을 제약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단속·추방이 계속되고, 구금 시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참사는 더 비극적인 방식으로 반드시 되풀이될 것이다.
 
따라서 단속 중단과 구금 시설의 폐쇄가 즉각 이뤄져야 한다.
 
이주노동자 단속·구금·추방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진정한 책임자들이 물러나고, 이 정책들을 즉각 중단하는 것이 진정한 재발방지책이다. 이런 해결책은 대정부 항의 운동의 지속과 확대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3월 4일 대구에서는 2백여 명이 모여 규탄집회를 열었고, 3월 5일 청주에서도 집회를 했다. 서울·대구·인천·부산·여수 등에서는 서명 운동 등의 캠페인이 지속되고 있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공대위(서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각 지역에서 건설된 공동 행동 조직들에 전국적 캠페인을 함께 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3월 11일 여수에서, 3월 18일 서울에서 정부 규탄 집회가 예정돼 있다. 이 집회에 적극 참가해 항의 운동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 글쓴이는 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이며,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공대위 정책팀장입니다.
* 본문은 다산인권센터(www.rights.or.kr) 웹진 3월 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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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09 [03:4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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