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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10% 지지율 밖에 안남은 대통령,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18 [17:35]
1.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 , 민주당원 감독들
 
헐리우드 영화 중에는 '국가안전(National Security Cinema)'라고 분류되는 독특한 영화 장르가 존재한다. 굉장히 정치적이고, 한편으로는 상징 조작을 과감히 시도하는 영화들이다. 전쟁 영화들이나 스파이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전혀 정치와는 상관없이 로맨스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그 함의와 메시지 때문에 이렇게 분류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최초의 국가안전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는 존 웨인이 직접 닉슨에게 편지를 써서 만들게 되었다는 <그린 베레>라는 영화를 꼽는다. 전형적인 우파 영화들은 계보가 존 웨인으로부터 내려오고, 톰 크루즈가 주연을 했던 <탑건> 그리고 분류에 따라 <에일리언> 1편을 넣기도 한다. 에일리언 1편에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핵폭탄이다.
 
같은 국가안전 영화이지만, 전형적인 민주당 계열의 영화들도 있다. 대표적인 영화들이 <레드 옥터버>에서 <패트리어트 게임>을 거쳐 <섬 어브 올 피어즈>로 내려오는 잭 라이언 시리즈이다. 톰 클랜시라는 성공한 우파 작가이며 동시에 워싱턴 근처의 로비스트이기도 한 대표적인 인물의 소설을 68세대 감독들이 받아서 만든 이 영화는 그야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인 잭 라이언의 인기와 해리슨 포드라는 독특한 배우를 등에 업고 한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가 되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과 필립 노이스 같은, 잭 라이언 시리즈의 감독들은 68세대의 대표적 감독들이며, 민주당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월남전에 반대하면서 대학을 다녔고, 레이건 시대 8년에 대표적인 감독이 되었고, 클린턴 시절에 꽃을 핀 이 사람들은 비록 예술적인 성취도는 바로 전 세대를 풍미하는 이탈리아의 펠리니나 일본의 구로자와 보다는 떨어지지만, 나름대로는 원없이 영화를 찍어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스크린쿼터를 폐지하겠다는 한미FTA가 아니었다면 일련의 감독들의 정신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좌파나 우파에게 공적처럼 되어 있고, 배신자 소리 듣는 김명곤 문광부 감독 혼자서 한미FTA 필요성을 외치고 있는 중이다.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클린턴 시기에 올리버 스톤은 <JFK>와 <닉슨>이라는 두 편의 정치영화를 만들어내는데, <닉슨>은 그렇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많이 본 것은 87년 대통령 선거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개봉되었던 <플래툰>일 것이다.
 
요즘은 <알렉산더>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나 찍으면서 늙으니까 미학도 한물 간다는 소리나 듣고 있지만, 90년대 중반 올리버 스톤의 카리스마는 참 대단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때는 그의 시대가 있었다는 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 닉슨, 참 독특한 인생
 
▲미국 37대 대통령 닉슨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그린 전기 영화, 올리버 스톤의 '닉슨'     © 올리버 스톤 필름
도청으로 시작해서 도청으로 끝난 닉슨의 인생은 케네디의 화려함과 대비되며, 냉전 시대의 미국의 모습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메카시의 동료로 사회주의자에 대한 조사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닉슨은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정형근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정형근에게는 냉전 시대가 너무 일찍 끝나버린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닉슨에게는 케네디라는, 미국 민주당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정치 영웅과 동 시대에 활동을 해야했다는 비극이 있을 것 같다.
 
FBI, CIA와 같은 미국의 국가안보 기관들의 수장으로서 미국 대통령이 은밀하게 누릴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테지만, 하여간 이 도청 사건이 전면에 드러난 것은 바로 닉슨 시절의 일이고, 그 뒤에 레이건 시절에 오히려 도청과 감청을 위한 비용과 시설이 더 늘었지만 레이건에게는 그런 어두운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닉슨에게는 온갖 음모와 어두운 이미지가 따라다니고, 결국 2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을 하게 되는 독특한 이력을 남기게 된다.
 
3. 도청 테이프
 
그렇다고 영화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주요 포커스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미국을 지배하는 진짜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가설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끊이지 않고 다루어지는데, 케네디의 암살에 대한 언급과 그를 싫어했던 존재들과 닉슨 사이의 긴장 관계 그리고 테이프에 담겨 있는, 그래서 닉슨이 차라리 사임을 선택하면서도 그 안의 내용을 지키려고 했던 또 다른 사건들이 실제로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들인 것 같다.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 시도, 헨리 키신저가 닉슨의 대리인처럼 중국의 모택동과 소련의 브레즈네프를 만나면서 개방외교를 시도하던 시절의 얘기들이 시닉하게 담겨 있다. 워터게이트가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듯, 올리버 스톤의 감독의 시각은 도청 테이프에 오랫동안 집중되어 있으며, 그 테이프 안의 비밀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붕괴되어가는 닉슨의 아픈 모습들을 세밀하게 다룬다.
 
편집증을 가지고 있는듯한 한 사람으로 닉슨을 묘사하는 그 시각은 '시스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냉전 시대의 어두운 미국 정치와 안보장치의 한 가운데,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지배자로 묘사되는 닉슨 역시 시스템 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이 시각은 "정치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슬픈 질문을 던져준다.

68 학생운동의 한 가운데에서 학생들과 직접 토론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격렬한 교훈을 얻고, 베트남으로부터 군대를 빼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닉슨의 입에서 나오는 평화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환경"과 "아름다운 국토"와 같은, 지나가는 메시지들은 닉슨 역시 시스템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고뇌하는 인생처럼 묘사되어 있다.
 
닉슨이 과연 케네디의 암살자였을까라는 질문을 하던 68세대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인간적인 비영웅(anti-hero)으로 닉슨을 묘사한 셈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도청을 지시하고 혼자 테이프를 듣고, 암살과 미행을 지시하던 사람의 삶에 비하면 그 어두움 속의 슬픔을 모멘텀으로 끌고 간 셈이다.
 
닉슨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중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이 더욱 가속화되었고, 미국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고 닉슨은 자서전에서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말에 대해서 1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올리버 스톤 감독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4. 대통령의 외로움
 
의사결정자는 외롭기 마련이지만, 닉슨의 외로움은 좀 특별한 것이었던 것 같다. 케네디와 선거에서 패하고 연이어 상원의원에서도 탈락한 그는 아내의 이혼 협박(?)에 정계은퇴를 선언한 닉슨을 다시 대통령 후보의 자리로 옮긴 사람들은 어두운 세력들이다. 석유회사 사장과 안보기관에 관련되어 있는 실질적 미국의 지배자들과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그리고 쿠바와 중국과 같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여러 세력 앞에서 닉슨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실제로 닉슨을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면 엄청나게 냉혈한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극우파 아저씨에 가까왔을지도 모르지만 안소니 홉킨스라는 명배우가 그려낸 인간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영화 내에서의 닉슨은 외롭고 안스러운 모습을 가진, 전형적인 고뇌하는 인간에 가깝다.
 
때가 때라서 그런지 영화는 청와대와 최근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마치 마지막 닉슨의 근처에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그러나 결코 친구는 아니었던 헨리 키신저만이 남아 있었고, 모두 떠나간 상태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리고 몰린 그가 퇴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주위에 아무도 없이 매우 외로울 것이다. 10퍼센트의 국민적 지지가 아직 남아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할 때의 닉슨의 지지율도 아마 그보다는 높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외로운 사람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입장과는 상관없이 인간적 동정이 가게 마련이지만 한미FTA를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생각하는 이 상대적으로 젊은 대통령에게 임기 마지막 날까지 동정하는 민중들은 없을 것 같다. 참 안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어떤 감독이 이 시기를 해석하는 영화를 만드는 날이 오기는 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화감독들의 공적처럼 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쉽게 경험해보기는 어려운 사회적 경험의 일종이라서 결국 영화 카메라가 지금 우리가 지나는 이 시기에 맞춰서 돌아갈 날이 있기는 할텐데... 그 때에는 지금의 상황을 어떤 눈으로 기록할까?

올리버 스톤 감독이 닉슨을 일종의 편집증의 일환으로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묘사한 것처럼 들여다보게 될까? 아니면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고, 시스템의 결과로 이해하게 될까? 혹은 그도 아닌 미래의 전혀 다른 이론과 프리즘을 통해서 이 시기를 들여다보게 될까?
 
어쨌든 영화 <닉슨>은 10퍼센트의 지지율로 어렵게 임기 말을 채우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다시 보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10년 전의 영화이다. 머리가 아프고, 삶이 너무 바쁘다고 느껴질 때 한 번 빌려다 보시기 바란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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