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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에게 정부미 말고 유기농 급식하라
[비나리의 초록공명] 군인들에게 살충제 쓴 정부미 먹이는 건 인권침해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15 [19:36]
1.
 
수년 전부터 국방부에서는 급식 개선을 위해서 몇 가지 노력을 했는데, 선의는 이해하겠지만 이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제일 처음 문제를 일으킨 것은 보리를 군대급식에서 없앤 다음에 생겨났는데, 소득 중가와 함께 보리를 안 먹는 것은 ‘경제성장’의 상징처럼 여겨겼지만 이게 꼭 보건적 효과가 좋은지는 의문점이다.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다시 보리를 먹이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쌀 중심의 급식이 결국 비만과 성인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겨울에 자라기 때문에 그 자체로 친환경 곡물인 보리를 아이들에게 다시 먹이기 위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쌀로 바꾼 다음에 군대에서도 비만이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군대에서는 섭취 열량을 줄이는 변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열량만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먹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체계적으로 해봐야 한다. 햄버거가 과연 최적의 선택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2.
 
정부미라는 쌀이 있다. 추곡 수매 시절의 제도인데, IMF 이후에 농협도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비축미의 벌레 훼손을 줄이기 위해 ‘에피흄’ 등의 상당히 강력한 살충제의 사용량을 늘렸다. 최근 정부미 중 일부의 포스톡신 과다사용에 대한 의혹이 있지만, 정부 내부의 일이라서 아무도 자료에 접근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검찰이 밝힐 일이고, 현재로서는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정부미의 위험성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쌀을 먹는 주로 집단은 학생과 군인들인데, 다행히 지난 2년 동안의 학교급식에서의 노력 덕분에 정부미를 먹는 학교도 많이 줄었고, 이제는 주 소비층이 군인들인 셈이다. 다른 사식을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는 군인들로서는 기본 인권에 관한 문제다.
 
3.
 
제일 좋은 것은 군인들에게도 친환경 쌀과 유기농 식단을 꾸려주는 일이다. 보건만을 생각해서 더 욕심을 부리면, 친환경 현미를 먹을 수 있게 하면 더 좋겠지만, 현미를 어려서부터 먹어보지 않았던 군인들에게 현미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쌀은 유기농으로 공급해주고, 부식은 기본적으로는 지역 친환경농산물로 공급을 해주면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우리나라에서 단체급식으로 제일 유명한 현대중공업 직원들보다 군인들이 더 잘 먹도록 해줄 수 있다. 지금은 어렵지만 이런 방식의 시스템 디자인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4.
 
좋은 줄이야 누가 모르겠나. 그렇지만 우선은 돈이 문제일 것이다. 2007년 우리나라의 국방예산은 국회에 올라간 것이 24조 조금 넘고, 이 중 급식비는 1조 2천억 조금 안된다. 1인당 급식비는 2007년 하루에 5000원이 배당될 것이다. 계산을 해보자. 학교에서 친환경급식으로 1인당 식재료비가 1500원, 완전한 유기농으로 할 때 1800원 정도가 필요하다. 부대 단위로 연간 계약을 하고, 규모에 따른 절감이 있다고 가정하면, 5000원이면 친환경급식을 중간 수준 이상으로는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다. 현재로서는 돈이 많이 부족하지는 않는 것 같다.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채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5.
 
다음 문제는 공급이다. 불행히도 단 번에 공급한다고 하면 현재의 친환경 전환 속도로는 무리가 따르기는 한다. 그러나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지자체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전환한다고 하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군대급식 예산이라고 해봐야 1조원 조금 넘는 돈인데, 이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지만, 현재 농림부의 친환경 농업 예산과 농민들의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변화로 죽어가던 국토가 유기농으로 전환으로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 상황은 된다. 사람의 말로 바꾸면, 군인들이 국토의 ‘마지막 수호자’가 되었다는 한반도 국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기록할 큰 사건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약간의 예산 증감만으로 죽어가던 국토의 중대 전환이 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6.
 
유기농이 몸에 좋은 것은 장병들도 알 것이다. 이미 군대도 복지목표로 ‘웰빙’을 설정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 변화가 왜 안 되는가? 국방부도 알고, 군인도 알고, 농림부도 알고, 농민들도 알지만, 연간 1조원짜리 변화를 체계적으로 조율해줄 중간 고리와 조정자가 없기 때문이다. 일 조원 조금 넘는 돈으로 이런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변화이다. 청와대든 총리실이든, 아니면 정 안되면 국회라도 이런 일련의 변화를 기획하고 조정해나가면, 이번 겨울에 입대한 장병들이 제대하기 전에 유기농 군대급식을 경험해보고 제대할 수 있다.
 
7.
 
광우병이 의심받는 미국산 쇠고기를 미군에게 먹이겠다는 나라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가 시대의 첨두에 서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가보다. 첫 입맛에는 햄버거나 피자처럼 입에 짝 감기는 맛이 없다고 하더라도, 길게 음미하면 깊은 속맛이 있는 것이 유기농이다. 돈도 있고, 농민도 아직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 군대가 친환경 급식을 못할 이유가 없다. 군인들에게 좋은 음식 먹이겠다는데, 반대할 부모도, 반대할 국민도 없을 것이다. 한 번에 안 되면, 친환경농민과 군대가 같이 있는 강원도에서라도 먼저 해보자.
 
군대 통계라서 찾아지지가 않지만, 군대 내에서도 아토피 병사가 늘어나 적절한 처리가 되지 않아 인권 문제가 조금씩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나 혹은 아직 건강한 장병들을 위해서 친환경 급식 전환이 지금 적기다. 지금 시작하면 내년 봄이 오기 전에 대강의 밑그림을 그려서 사회적 협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반대하겠는가? ‘한살림’에서 친환경 쌀이 남아돌아서 북한 동포한테 보낼 정도인 상황인데, 군인들에게 친환경 급식할 정도의 여력과 정성이 우리나라에 없겠는가?
 
* 본문은 <한겨레> [여기는 명랑국토부] 12월 15일자 기고문입니다.
 
[보론] 한겨레의 명랑국토부와 군대 급식 문제 
 
한겨레 신문 별지에 18.0에 칼럼을 쓴 것은 반 년이 조금 넘는다. 원래는 소설가인 최성각 선생이 쓰던 칸인데, 하다보니 그 칸을 내가 물려받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최성각 선생한테 고마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말은 '명랑'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렇게 명랑하지는 못하다.
 
별지라서 사람들은 조금 아쉬워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별지 쪽이 훨씬 편하다. 책임기자인 한승동 기자도 드물게 존경할만한, 또 이것저것 본지의 편집기자들이 손대는 것도 별로 없어서, 속 편하게 길 호흡의 고민들을 하기에 좋다. 물론 내 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별로 인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본지에서 그렇게 인기 없으면 6개월 후에 바로 짤리지만 별지는 그런 부담이 없어서 좋다. 한 마디로 '가늘고 길게'의 정신과 비슷한 그런 칸이다.
 
군대급식에 관한 요번 주에 실었던 글은 좀 사연이 많은 글이다. 전후 상황을 다 살피면, 이 칼럼은 2년 걸려서 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긴 얘기를 짧은 지면에 다 넣을 수는 없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연구기관은 고대 의대와 하버드 보건대학원이고, health economics라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은 분야의 특수 연구들이 개입한다.
 
생각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버드와 인연이 많은 편인데, 그 마지막 인연이 보리와 군대급식과 관련되어 있다. 아마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올 여름은 하버드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많지만, 몸도 너무 아프고, 새롭게 일을 벌리기가 귀찮아서 그냥 손을 놓았던 게 하나 있다. 어쨌든 군대급식에 사라져버린 보리에 관한 비만 및 보건효과에 관해서 연구작업으로 살펴볼 일이 있었다.
 
보스톡신에 관한 얘기는 훨씬 큰 얘기이다. 서울신문의 녹색공간에 보스톡신을 헤드로 작년 말에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탑 기사로 키운다고 보강취재를 한다고 하다가 보강취재가 잘 되지 않아서 결국 1년 동안을 군대급식 문제가 떠돌아다닌 셈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쌀 보급 체계 전체와 관련되어 있어서 상당히 큰 일이다.
 
그리고 한살림이 등장한다. 작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 쌀이 남아돌기 시작하고, 올해는 도산의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정말이지 올해 상황은 심각하다. 군대급식이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이렇게 생각한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서 지금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현대중공업이라는 곳이 있다. 내가 현대 출신이라는 것과 노동조합과 이런저런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내년 봄에 내가 하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 감을 잡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중공업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춘투에 단체급식 문제를 거론하는 일을 좀 하려고 한다. 몸이 움직일 정도가 되면 처음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이런 여러가지 사연들이 묶여서 군대급식에 대한 첫 말문을 한겨레 지면을 통해서 열게 된 셈인데...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끌고 나갈지 아직 마음의 정리가 잘 안되어 있다. 작년까지는 환경단체를 움직여서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고... 몇 번은 더 치고 나갈 생각인데, 마땅히 손발을 맞춰 볼 만한 데가 없다. 조금씩 약간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하자면 몇 가지 작업을 해야하는데, 요즘 같이 몸이 아파서는 사람들 만나서 설득하고 움직이는 일은 도통 하기가 어렵다.
 
제일 어려운 것은 이게 통상적인 민주주의 절차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군대 즉 국방부가 워낙 폐쇄적이고, 또 이런 일 한다고 해서 티나거나 선거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에게 영광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이거다 하는 소위 short cut를 뽑아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런 생각하면 눈 딱감고 다시 공무원 세계로 들어갈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것도 별로 좋은 답은 아니다.
 
이런 건 딱 떨어지는 해법이 있는 경우라서 복잡하기는 해도, 풀려면 조금씩 풀면 충분히 풀릴 수 있는 종류의 일이지만, 생각보다는 '누가'의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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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15 [19: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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