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진짜 무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는 치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봤어도 무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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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B급 호러 영화면서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넘쳤던 '황혼에서 새벽까지' ©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필름 |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전형적인 B급 호러 영화이지만,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와 쿠웬틴 타란티노와 같은 B급 액션 영화, 그리고 헐리우드 메인 스트림과는 따로 노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흡혈귀 영화에서는 별도 계보로 분류되는 영화이다.
멕시코계 흡혈귀라는 요상한 설정 속에서 아즈텍 문명의 내음이 약간씩 묻어나는 영화다. 섹스 머쉰이라는 성룡을 그대로 서양풍으로 옮겨놓은 듯한 배역과 람보를 옮겨놓은 베트남의 전쟁 영웅이 조연으로 나와 역시 홍콩 영화에 대한 강렬한 오마쥬를 반복한다.
내 기억에 조지 클루니가 가장 멋지게 나왔던 영화이기도 한데, 위스키 원샷 하는 장면은 언제나 봐도 멋있다 (사실 별로 멋있을 건 없는데, 술꾼들의 낭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가 어필을 해서 결국 "배토맨과 로빈"의 배트맨으로 캐스팅되었다. 우웩...
조지 클루니 영화 중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보지 않았던 것 같지만, <쓰리킹스>라는 영화이다. 역시 B급 전쟁 영화지만, 걸프전을 영화로 만든 영화는 딱 두 편이 있는데, 실루엣 속에서 포탄을 막고 죽어가는 이라크 병사가 등장했던 <커리지 언더 파이어>와 달리 <쓰리킹즈>는 걸프전을 이라크인들 한 가운데에서 묘사한다. 물론 전쟁이 막 끝난 장면부터 영화가 시작하지만 주류 헐리우드의 시각이 아닌 것으로 90년대 이후의 전쟁을 생각한 유일한 영화이다 (걸프전에 대해서 약간의 이해가 없고, 헐리우드 반전 영화의 계보를 전혀 모른다면 재미없을 영화이지만, 지옥의 묵시록 보다는 훨씬 경쾌하다.)
<킬빌> 이후에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가 걸어가는 길은 많이 달라졌지만,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볼만하게 나오는 요소는 수없이 튀어나오는 흡혈귀들이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인데, 컴퓨터 그래픽 보다는 전통적인 영화 기법을 더 많이 사용한 이 영화는 일반인들보다는 영화인들에게 더 교과서 같은 영화이다.
정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거의 B급 영화만을 본다. 물량공세를 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내 삶과 한국 사회의 특징이 적절히 결합한 셈이다. B급 영화에는 돈을 집어넣지 못하는 대신 아이디어를 많이 집어넣는다 (예술 한다고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얘기를 남발하는 B급 프랑스풍 로맨스물은 극구 사절이다.)
이렇게 들어간 아이디어들은 대개 지역의 색깔을 강조하거나 현대 문명을 절묘하게 뒤집어내는 형태로 많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이런 전복의 냄새들에 열광한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색하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다양한 흡혈귀 패션과 얼굴 그리고 피가 터지거나 소위 '대굴빡'이 굴러다니는 장면들은 대개 로드리게즈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 DVD판 메이킹 필름에는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이 잡다하게 나오는데,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고 넥타이를 입혀놓으면 뉴욕 증시가에서 굴러먹는 월스트리트 사나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듯한 로드리게즈가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하는지 출연한 배우들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마약은 더더군다나 안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제 정신에 저런 걸 상상하는 사람이니 얼마나 무섭냐... 사실 그렇기는 하다. B급 호러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장면들에 많은 사람들은 눈을 감아버리고 무서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기도 하지만, 호러 무비를 즐기는 나로서는 매 순간을 어떻게 처리했느냐 혹은 어떤 실루엣을 잡아냈는지, 그야말로 0.1초를 경계로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 짓는 편이다.
(최악의 영화들은 무서운 장면에 음향 효과로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넘들이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많고, 최고의 특수효과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지만, 이런 메이저 시스템의 전문가들이 개입한 영화와 감독들이 직접 상상한 B급 영화의 상상은 감상하는 법이 조금 다르다.
나도 혼자 있을 때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로드르게즈 같은 넘들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면서 늘 제 정신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온몸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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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저지 국민운동본부는 10일 오후 한미FTA 저지 및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결의대회를 보신각 앞에서 개최했다 © 대자보 |
영화와는 상관없지만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서 '유연'하게 다루라는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생각하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하는지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온 몸이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