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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추어 낮은 눈으로 세상을 보라
[비나리의 초록공명] 내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를 쓰게 된 이유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08 [02:23]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이 책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책이었다. 몸도, 마음도, 이 책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대략 여섯 편 정도의 한미 FTA에 관한 글을 쓰고 그 정도로 한미 FTA에 관한 나의 역할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길게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너무 늦기전에 몇 년간 생각해봤던 정책 대안 같은 것과 내가 느꼈던 점들을 모아서 일종의 자료집 같은 거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료로 나중에 사용될 수 있게 상황을 기록하는 것은 학자들한테는 일종의 소명 같은 일이기도 했다.
 
김정훈 박사가 의도는 좋지만 고맙게 생각할 사람도 아무도 없고, 나중에 곤란한 일만 생길 것이라고 그냥 잠이나 자고 있으라고 했다. 
 
▲한국FTA 협상의 허술함과 치명적 독소를 예리하게 해부한 우석훈 박사의 역서     ©녹색평론, 2006
칠월 초 어느 금요일로 기억된다. "녹색당, 그 3년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여섯 페이지 정도를 썼다가 내가 3년 동안 했던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미 FTA가 아닌 경제 운용 방식'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토요일날 아침에 FTA를 중심으로 다시 두 페이지를 정리했다. 거기에는 대학 개혁, 국방운용, 외교 정책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좀 큰 그림의 대안 중심의 얘기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초록경제의 눈으로 본 한미 FTA"라고 제목을 바꿨다. 토요일날 오후에 녹색당과 관련된 얘기는 빼기로 하고 토요일 밤부터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때 쓴 첫 번째 생각이 지금 책의 프롤로그에 들어가 있는 글이다. 원래의 초고에는 나에 관한 얘기와 식구들에 관한 얘기들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박권일 기자의 편집 과정에서 이 얘기들은 잘렸다.
 
원래의 초고에는 지금 책에 남아있는 '양과 늑대의 게임' 외에도 '네덜란드 소년의 게임' 같은 알고리즘 몇 가지가 더 들어가 있는데, 너무 수학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컴 시뮬레이션에 관한 이야기라서 결국 대부분이 빠지게 되었다.
 
지금 책 보다는 200페이지 정도는 더 붙어있던,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상당히 두툼하고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이 들었을 책이 되었을 초고가 내 손에서 처음으로 떠나간 것은 그 다음 주 토요일이었다. A4로 150장 정도를 썼으니까 하루에 대략 A4 20장 정도의 분량 정도를 쓴 것 같다. 나도 한참 때에는 하루밤에 A4 100장씩 쓰던 시절이 있었다.
 
출판사를 찾아본 것은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도와주었고, 그 때부터 편집을 맡은 것은 전에 월간 <말>지 기자였던 박권일 기자가 수고를 해주었다.
 
원래는 상당히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시뮬레이션을 포함하고 있는 대단히 어려운 전문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책이었는데, 박권일 기자의 손을 거치고 나서 보통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책이고, 만약 이론적인 각주를 달았다면 최근에 나온 이론들로 빼곡하게 채워져서 확 질리게 만들었을 책이다.
 
원래 시장에 내다 팔려고 쓴 책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아주 참혹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역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약간의 절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워낙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데 익숙해 있어서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그렇지만 초록정치연대 시절에 생각했던 경제적 대안에 관한 것을 정리해 볼려고 했던 책인데 그 내용이 담을 수가 없어서 한 번 더 작업을 해야하는 부담이 남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몇 가지가 더 진행되었어야 하는데, 책 쓸 때 반짝하고, 다시 몸이 심하게 아파져서 가을 내내 누워있었다. 지금 정도면 조금 움직일 정도가 될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3달간 머리에서 미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젠 두통이 지병처럼 된 것 같다.
 
책을 쓰면 좋은 점이 있다. 뭘 모르는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 알 것 같아서 책에 넣을려고 했는데, 결국 잘 정리가 안 되어서 못집어넣는 것들이 있다. 그건 모르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생각이 정리가 안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상대하는 적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 이것도 확실히 좋은 점이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점은 따로 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더 정확히 알게 된다는 점이다. 몸을 낮추어서 더 낮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조금 세상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건 정말로 좋은 점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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