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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우먼은 외모중시, 연예인은 외모파괴?
립씽크만 잘하는 앵커우먼은 방송국에서 물러나야
 
박지훈   기사입력  2003/06/17 [14:57]

얼마 전부터 방송가에 일어나고 있는 상반된 변화가 눈에 띈다. 보도 프로그램에서 여성앵커들의 외모가 예전보다 더욱 부각되는 반면, 연예계에서는 ‘외모 파괴’를 외치는 연예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몇몇 여성앵커들의 팬 페이지 회원 수는 수 만 명이 넘는 등 연예인 못지 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고, 연예계에서도 ‘외모보다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자처하는 예능인들이 대중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그간 뉴스 보도영역은 이러한 사안에 대한 변화에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연예계도 오랫동안 '루키즘(lookism)'현상이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작용해왔다. 두 영역 모두 이렇듯 정침(停寢)된 상황에서 일어난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 이면에 담겨진 배경과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경쟁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 구조는 철저한 독과점 체제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들은 ‘표준제작비’와 같은 카르텔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그 중에서 주 시청시간(Prime Time)대 뉴스보도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방송사의 자존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송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다른 프로그램과 시청률이 연계된다는 점이 광고 수입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뉴스 보도프로그램은 방송사의 경제성과 연관해 중시될 수밖에 없다.

뉴스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실로 크다. 이들이 다루는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사안에 대한 가치의 평가나 재해석에 따라 수용자의 인식에 미치는 정도는 상당한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사회 전반에 대한 대중여론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렇듯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디어가 가지는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각 방송사는 시청률에 민감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광고 시장으로 봤을 때,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뉴스 보도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방송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 따른 결과로 방송3사는 컨텐츠(Contents)의 경쟁은 물론, 앵커맨과 앵커우먼의 선택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앵커우먼의 자리에 다른 방송사에 경쟁력(?)을 갖춘 아나운서나 기자를 임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연예계의 '외모 파괴' 현상도 경쟁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최근 연예시장의 규모는 실로 거대해졌다. 스타를 만들기 위해 수십억을 투자하는 일은 이제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스타 한 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시장규모가 커진 만큼 이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대중에 사랑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스타(star) 되기가 하늘의 별(star)따기보다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사실 그동안 스타가 되는 키워드는 '외모'였다.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 대중에 어필한다기보다는 수려한 외모로 대중에 사랑 받는, 이른바 ‘꽃미남’,‘꽃미녀’들이 경쟁하듯 등장했다. 오랫동안 이것은 하나의 공식, 패러다임과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벙어리 가수’,‘아름답기만 한 배우’ 등의 놀림을 받으며 전문성 결여와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외모보다 분야에 대한 전문성으로 대중에 어필해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공식을 깨는 현상이라는 면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물론 영상매체인 TV에서 비쥬얼(Visual)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외모 파괴'현상은 올바른 방향성의 변화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러한 경쟁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변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상업방송 방식의 앵커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앵커가 뉴스의 편집과 진행을 동시에 담당하는 미국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앵커가 뉴스의 선택과 배열을 판단하는 보도국장 중심의 편집회의에 참석해 흐름을 파악하고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에서 미국식과 비슷하지만 조직적으로 보도국을 관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듯 전문앵커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한 가운데 방송사간의 경쟁은 앵커의 전문성에 잘못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특히 여성앵커에 대한 전문성 인식에 대한 사안은 큰 문제이다.

▲황정민 KBS 아나운서     ©대자보

최근 방송기자들을 대상으로 앵커의 자질 및 조건을 물은 한 설문조사에서 남성 앵커에 대해 '언론인으로서의 경력' '믿음직스러운 이미지' '전문성' 등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반면 여성 앵커에 대해서는 '좋은 목소리'나 '방송에 적합한 외모' 등을 강조한 응답이 많았다. 여성앵커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뉴스앵커의 전문성의 결여는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12월 KBS 8시 뉴스 앵커였던 '황정민' 아나운서가 대학생 반미시위에 대한 뉴스 진행 도중 실언을 하는 바람에 앵커자리를 사퇴했다.

[관련기사]  안형석, 황정민앵커 여중생 시위 관련 발언 파문 , 대자보

여중생 장갑차 사고로 반미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생들의 미군영내 기습시위를 보도하면서 '보기가 부끄럽다'고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황씨는 '보기가 부끄럽다는 것은 미군이 저지른 일로 우리 경찰과 국민들이 매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부끄럽다'와 '안타깝다'의 차이는 여론의 분노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이는 단적으로 제시된 예이지만, 앵커의 전문성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앵커는 뉴스에 대한 정확한 이해, 대중의 여론 파악, 공정성을 잃지 않는 자세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뉴스앵커의 전문성에 속하는 필수적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한 설문조사와 같이 '좋은 목소리' '방송에 적합한 외모' 나아가 타 방송사와 '경쟁에서 유리한 외모'등이 중시되고 있어 여성앵커인사에 영향을 미쳤을 때 나타날 문제들이 우려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예계도 전문성이 문제다. 최근에 한 분야의 전문성으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등장하고 있는 현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예로 최근에 나온 여성 그룹 '버블 시스터즈'와 '빅마마'를 수 있다. 두 그룹 모두 같은 시기에 외모보다 노래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룹이다. 하지만 두 그룹의 뮤직비디오와 출현하는 광고를 살펴보면 참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버블 시스터즈'가 출현한 광고를 보면 단군신화를 패러디해 곰이 감자를 먹고 사람이 되는데 그중에 '날씬한' 감자를 먹은 곰은 날씬한 사람이 되고 그냥 감자를 먹은 사람은 뚱뚱한 사람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뚱뚱한 사람으로 변한 '버블 시스터즈'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노한다. 광고주의 의도의 개입여부와 무관하게,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던 그녀들의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 빅마마  
반면 '빅마마'의 뮤직비디오에서 입을 벙긋거리는 '어여쁜(?) 벙어리 가수' 들과 뒤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진짜 노래를 하는 '어여쁘지 않은 가수' 빅마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립싱크를 즐겨하는 가수들에 대한 비판, 나아가 루키즘(lookism)이 지배하는 연예계 공식에 대한 풍자적 의미가 담겨있다. 이 두 그룹의 예로 연예계의 이러한 변화가 상업주의에 의한 다른 수단인지, 패러다임을 깨는 혁신적인 변화인지 판단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으며, 좀더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위 두가지 중 어느 것이 원인이 되어 불어오는 변화의 조짐이든 간에, 올바른 방향성, 즉 전문성을 갖춘 예능인이 대우받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계에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나비의 힘없는 날개 짓'으로 끝날지, 연예계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거대한 폭풍'으로 다가올지는 전적으로 주체인 대중의 손에 달렸다.

* 이 기사는 서강대 방송문화전문웹진 ZIME(http://zime.fbc.or.kr/)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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