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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몽>과 예씨부인의 미니멀리즘
[비나리의 초록공명] 인생살이는 조용히 사라지는 미니멀리즘이 좋다?
 
우석훈   기사입력  2006/11/04 [13:41]
1.
 
요즘 드라마 <주몽>을 보다보면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예씨부인인가? 하여간 유리왕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는 그런 주몽의 원래 부인으로 나오는 사람이 대사가 거의 없고, 정말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다.
 
"네, 어마마마..."
 
내가 봤을 때에는 꽤 여러 장면에 나왔는데, 대사는 이거 하나였다.
그리고 다음 편에는 조금 긴 대사가 나왔는데, 뺨을 몇 대를 맞고나서,

"하고 싶은대로 하시지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다. 이 짧은 대사를 하는 데에도 이 여배우는 혀가 꼬인다.
 
불쌍했다... 아마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사실상의 왕자비인데도 맨날 감옥에 갇히고 진짜로 몇 대씩 얻어맞는 역할밖에 안 주어진다. 정말 불쌍하다. 자기도 잘 하고 싶을텐데, 이렇게 말이 안될까...
 
정말 미니멀리즘이다.
 
구강구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딱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2.
 
대사를 정말 못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은 홍금보 이후 동양 최고의 무술감독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정두홍이다.
 
정두홍도 자기가 대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어떻게든 잘 하려고 하는데, 잘 못한다. 그래서 대사 얘기만 하면 몇 년 동안 신경질을 내다가 요즘 인터뷰를 보면 그냥 웃는다. <장군의 아들>에서 무술대역으로 시작한 정두홍은 태권도를 영화예술의 경지로 올린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정말 정두홍표 액션은 그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도 대사는 미니멀리즘이다.
 
3.
 
주몽의 전투신은 미니멀리즘의 최고봉이다. 열 명과 열 명이 싸우면서 대전투신이라고 한다. 화살 몇 번 쏘고 나서, 수 천명의 절반이 죽었다고 하고, 다시 칼 몇 번 휘두르니까 전멸이라고 한다.
 
600억원이나 들였다고 하던데, 초절정 미니멀리즘이다.
 
4.
 
그래도 삶은 미니멀리즘이 좋다. 티나지 않고,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태어났다, 자기 공간을 차지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미니멀리즘이 좋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언제나 튀거나 드러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삶은 미니멀리즘이 최고이다.
 
착한 일 해서 천당가는 전략보다는 잘못된 일을 줄여서 지옥에 갈 확률을 낮추는 것이 낫다. 축생으로 환생하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 나쁜 전략은 아니다.
 
네이버 댓글 보지 말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댓글을 몇 개 읽었더니 분명 지옥 갈 사람이 꽤 많아 보였다.
 
좋은 일이다. 내가 지옥 갈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렇게 지옥 갈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면 나는 요번 대에는 지옥에는 안 가고 한 번 더 공덕을 쌓아서 다음 생을 노려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5.
 
지옥 가면 피곤할 것 같다. 마음에 화가 있을 때에 지옥갈 생각하고 잠깐 참는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드라마 주몽에 예씨부인으로 나온 미니멀리즘을 보면서, 저 사람도 나름대로 잘 하고 싶을텐데, 안스럽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저런 걸 왜 썼냐고 소리질러봐야 어차피 지옥 가는 길이 가까와질 뿐이다. 
 
미니멀리즘도 미학이냐고 그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자꾸 지옥 생각이 나면서 미니멀리즘 미학의 깊은 뜻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미니멀리즘 :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라는 minimal에 'ism'을 덧붙인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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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04 [13: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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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노루 2006/11/22 [21:37] 수정 | 삭제
  • 미니멀리즘이란 정말 무엇인가? 짧은 것만이 미니멀리즘인가?
    미니멀리즘은 결코 정말이지 결코 짧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닐까?
    참고 홈피: http://www.poemspac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