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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노대통령과 그들만의 나라
[우리힘의 눈] 한미FTA로 경제 식민체제 가속, 남은 1년 반 더 두려워
 
아찌   기사입력  2006/10/09 [10:49]
영국의 블레어가 한 때 부시의 푸들이란 조롱조의 비난을 샀지만 지금에 와서는 노무현을 부시의 푸들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분 없는 전쟁에 자국의 군대를 파병해 놓고는 철군보다는 파병 연장에 무게를 두고 밀어 부치면서 기정사실화 하는 것에 더해, 또 평화유지군을 편성하여 파병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기에 그렇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제국주의의 하수인 같은 이런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는 상식선에서 따져 묻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도 점잖은 국민들이다. 이래서 계속 대통령 마음대로 하는지도 모른다.

부시가 추진하는 그 모든 정책을 고분고분 따르고, 그에 따른 요구를 다 들어주고 수용하면서 철저하게 미국에 발맞추어 미국화를 추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에 비하면 고이즈미와 블레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고이즈미는 자위대 파병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하여 대외적인 비난꺼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정치를 잘못하여 국민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지도 않았고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저자세로 나가지도 않았다.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 참전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실패로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가운데 응당 자신이 받아야 할 책임을 추궁당해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블레어 이후 영국 경제가 급격히 하락한 것도 아니고 총리 한 사람의 독선으로 국정 혼란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부시 정권의 미국을 추종하는 세 나라 중 우리나라만큼 대미 종속적이고 부시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움직이는 나라는 없다.

총리가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 처지에 놓이더라도 국정 전반은 자체의 정상적인 운영 시스템에 의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영국과 일본의 시스템이 나는 부럽다. 이 나라들은 미국에 질질 끌려 다니지도 않고 경제적 종속의 길로도 가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국익을 도모하는 차원에서만 돈독한 유대를 강화시켜 가고 있을 뿐이기에 그렇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줄 것은 다 주어 놓고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하면서 자청하여 경제적 예속과 종속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성장 동력을 여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오직 이 길만이 살길이라고 하고 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준비된 밥상이란 말인가.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듯이 보이지만 국민을 위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미국과 FTA를 추진하지 않는 일본과 외부 의존적인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 문화와 농업에서 활로를 찾으면서 건실하게 경제가 안정되어 가는 영국이 나는 부럽다.

대통령의 잘못된 경제 진단에서 비롯된 졸속적인 한미FTA로 인해 총체적인 난맥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혼란의 늪에 빠져 방황하게 되더라도 이런 독주를 견제할 수 없는 허약한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분명히 너무 문제가 많다.

노무현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통령 한 사람이 결정하는 대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의 뜻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만용을 부리면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나라는 분명 문제가 있다. 노무현과 그 패거리들은 창조적인 소수가 아니다. 정치권의 주변부에서 소외를 당하다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발 빠르게 과거의 기득권 세력의 품에 안겨 새롭게 기득권 세력에 합류하였고 그들의 전위대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일단 권력을 쥐었으므로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으로 역사에 남는 가장 성공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려면 국가 경제의 견인차인 재벌을 밀어주면 되는 것이다.

양극화나 일부의 희생쯤은 국가의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현재의 낮은 지지율도 별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달성되는 순간 멋진 반전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죽은 박정희가 살아나서 날뛰는 형국이다. 세상을 앞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가 박정희보다 더 위험한 개발주의에 경도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오로지 경제적 실적을 올리기 위한 개발과 성장에만 앞장을 서니 문제인 것이다.

노무현 자신이 앞서가는 정치인이란 자부심은 자동차의 라이트를 켜고 보이는 앞을 볼 수 있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보기에 국민들은 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 캄캄한 밤길을 운전하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최우선 순위로 경제성장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개발과 성장만을 추구했을 때 오는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그 길로만 갈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진보적 대안 마련에 고심하면서 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설정해 갈 것인가를 놓고 국민적 논의를 거쳐 경제 정책의 틀을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현실 인식의 틀은 협애하기에 단지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에만 매달려 대세를 추종해 가는 것에 불과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전격적으로 국가의 틀을 대세에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위험이 있든 손에 잡히는 성과물만 있으면 모험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노무현은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다. 이미 도래하는 시대를 읽어 낼 줄도 모르는 정치인이다. 지배적인 사고의 축은 지체된 정치 환경 속에 있으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의 미래(곧 대세)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이끄는 세계 질서가 대세라고 보면서 친미 관료와 일치된 견해를 표명하며 칭찬 일변도로 구태에 찌든 관료들을 두둔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그대로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죽이 잘 맞는 가운데 한미FTA에 함께 올인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책임 정치를 실현하는 나라라면 임기 중에라도 대통령의 정책 실패에 대해 따져 묻고 국민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막나가는 판국에서도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조건반사적인 헐뜯기를 하거나 은근슬쩍 암묵적인 동의로 공동의 이익을 취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있고, 무조건적 지지라는 여당이 있기에 정치권 내에서는 사안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적당히 넘어가기 일쑤다.

노무현은 정당한 비판을 받아 본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할 줄 모른다.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거세게 문제 삼아야 할 사안들도 힘없는 일부에서나 문제를 삼았을 뿐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민주화 이후 시민 사회단체와 국민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국민을 배신하고 미국과 재벌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는 현 정권의 일탈적 정치 행태를 그냥 인내하면서 냉소하는 수준에서 넘어가주고 있다.

노무현과 그 일당들은 안티조선마저 비웃음 꺼리로 만들어 버렸다. 조선일보와 입씨름이나 하면서 기득권의 이익을 서로 챙기는 놈들이 어찌 한패이지 어떻게 반대 세력이란 말인가.

문규현 신부를 은연중에 씹어대는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이 독재자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국가 폭력은 군사 독재 권력이 집권하던 시대에서 한 치도 변화하지 않았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짓밟히고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가운데 생존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며, 온갖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어찌 침묵하라고 할 수 있는가.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분을 욕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라 해도 그러지 말자.

세계화로 갈수록 농업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서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조금만 이치를 따져 보면 분명한 답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존경받아야 할 농업의 마지막 세대들에게 나라를 살릴 수 있는 농업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농업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세대를 이어갈 방안을 강구하고, 농민의 희생 속에 현재의 발전을 구가해 왔으므로 잘 살게 된 지금에 와서는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생명과 직결된 먹거리의 주권을 포기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나라의 근본은 지켜져야 한다.

외국 순방 때마다 어딜 가나 외국의 공항에 대문짝만하게 나붙은 삼성광고가 대통령을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감동을 주기에 나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삼성이라 재벌을 추앙하는 것까지는 좋다.

재계와 수시로 만나 긴밀히 협조하면서 경제 발전을 논하기에 그들과 정부만이 주역이라서 재벌의 활약상만 보이고, 자신의 눈에는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자 이제는 없애야 할 농업과 농민은 보이지도 않고 거들떠보기도 싫은 존재란 말인가.

이렇게 국민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나라가 어찌 공동체를 지향하는 나라라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기득권층에게는 그 어떤 행위를 하였든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무한대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없는 놈에게는 평생을 없는 서러움을 당하면서 사는 것도 모자라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을 심어주는 사회가 사람 사는 사회인가.

이 나라의 교육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 경제에 통합되어 살아가야 하므로 영어가 필수가 되기 때문인지 모국어는 내팽개치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배우게 하겠단다. 삼성은 영어에 능통한 사람만을 선발하여 쓰겠단다. 이 나라의 국민은 국가를 위한 경제적 도구의 하나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전 국민이 영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가득이나 부담스러운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추가적으로 늘어나면서 교육에서의 양극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민 이외에는 달리 생각할 방도를 허용하지 않는 이 사회가 어찌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노무현은 국민을 상대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를 사실 자신이 온 몸으로 실천해 왔다. 기득권은 영원한 기득권이므로, 이제는 대통령이 됨과 동시에 기득권으로서의 영원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으므로 국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국민은 정치적 이벤트의 동원 대상에 불과할 뿐이므로 정치의 계절이 올 때마다 멋진 이벤트를 연출하여 표를 긁어모으기만 하면 되는가보다. 국민을 배신하고 마음껏 대통령 혼자 원맨쇼를 할 수 있는 자유가 5년 동안 보장되는 나라로 나라를 이용해 먹는 데야 당장은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무능과 한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도 여전히 당당한 노무현의 독단적 국정 운영 속에 추진되는 한미FTA로 인한 경제 식민지체제를 생각하면 나는 앞으로 남은 1년 반이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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